{"version":"https://jsonfeed.org/version/1.1","title":"Jiwon","description":"Things worth making, and the notes behind them.","language":"en","home_page_url":"https://jiwonkwak.co/","feed_url":"https://jiwonkwak.co/feed.json","items":[{"id":"https://jiwonkwak.co/thai-beauty","url":"https://jiwonkwak.co/thai-beauty","title":"태국 여행기 2: 이민하고 싶은 이유","content_html":"<p>태국은 인구의 90%가 불교를 믿는 나라이며, 도시 곳곳에 불상을 볼 수 있고, 그 앞에 꽃, 향, 붉은 음료수를 공양하는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다. 사당 앞에 높인 붉은 환타, 지나가다가 멈춰 서서 합장을 하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굉장히 자주 볼 수 있다.&nbsp;</p><p>그 광경을 바라보며 불교 경전이나<strong> </strong>설화에서 자주 들었던 내용이 생각났다. 전생에 부처님이나 사리탑에 꽃을 정성껏 올리거나, 남이 올린 꽃의 먼지를 털어낸 공덕으로 다음 생에 '위덕을 갖춘 아름다운 외모'를 얻었다는 이야기.</p><p>그렇다면 태국인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유난히 아름다운 것은, 단순한 유전적 우연이 아니라 오랜 공덕의 축적일까. 실제로 태국 사회에서 아름다운 외모는 전생에 쌓은 '탐분(Tham Bun, 공덕)'의 결과물로 여겨지기에, 치장은 단순한 허영을 넘어 자신의 업을 돌보는 긍정적인 행위로 존중받기도 한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https://images.unsplash.com/photo-1663075039782-59a2330a2ec1?crop=entropy&amp;cs=tinysrgb&amp;fit=max&amp;fm=jpg&amp;ixid=M3wxMTc3M3wwfDF8c2VhcmNofDR8fHRoYWklMjBhbHRhcnxlbnwwfHx8fDE3Nzg3MDcyNTN8MA&amp;ixlib=rb-4.1.0&amp;q=80&amp;w=2000\" alt=\"a group of candles\" loading=\"lazy\" width=\"5251\" height=\"7872\"><figcaption>Photo by Norbert Braun / Unsplash</figcaption></figure><p>반면, 내가 나고 자란 한국의 미는 청순, 순수, 절제에 있다. 하얗고 가느다란 몸, 여리여리한 실루엣이 미의 표준이며 종종 그에 벗어나는 여성에게는 ‘섹시’, ‘건강미’라는 레이블이 별도로 붙는다. 몸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 패션을 선호한다.</p><!--members-only--><p>나는 어려서부터 이 기준과 명백히 어긋났다. 한국적 미의 질서가 허용하는 이른바 ‘건강미’라는 수사조차 선에서조차 나의 추구미를 수용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청소년기부터 주변인들의 검열에 노출되며, 스스로를 계속 축소시켜야 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옷장을 타협시켜왔다.</p><p>이러한 상황에서 태국 여성들과 느낀 동질감이 얼마나 큰 해방구였을 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내가 소속될 곳을 찾았구나’는 감격이 물밀듯 밀려왔다.</p><p>그곳의 여성들은 XS부터 XL에 이르기까지, 신체 스펙트럼 상 모양과 크기에 구애 받지 않고 자신의 실루엣을 과감히 드러내고 있었다. 정말 다양한 체형들을 볼 수 있었는데, 길쭉한 팔다리를 가진 하이패션 체형, 작고 마른 요정 체형, 심미적인 근육 데피니션이 드러나는 체형, 풍만한 곡선형 등 다양성 그 자체였다. 이들은 각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 없이, 각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심미적 상태를 구현하는 수행 주체였다.&nbsp;</p><p>일원화된 미적 규범에 억눌려 있던 나의 감각이 비로소 확장되는, 형언하기 어려운 인류학적 동질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물론 <a href=\"https://jiwonkwak.co/thai-food/\" rel=\"noreferrer\">밤 거리의 쥐와 바퀴벌레와의 조우</a>가 이 고양된 감격을 어느 정도 조정시켰지만 말이다.)</p><p>한국 중장년 여성의 경우, 스스로 ‘여자로서의 정체성’과의 단절을 겸허히 수용하고 '무성적(Asexual) 존재'로 규정하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아줌마 파마 머리’는 그 결의의 표현이자 통과 의례이다. 반면 태국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과감한 컷의 드레스와 굽 높은 구두를 통해 여전히 매력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 해방적인 광경 앞에서, 나는 비로소 이곳을 내 삶의 터전으로 삼기로 결심했다.</p><p>이곳은 남자들 조차 아름다웠다. <strong>태국의 상좌부 불교는 성별을 고정된 실체가 아닌 전생의 업에 따라 잠시 머무는 상태로 보기에, 제3의 성(Kathoey)에 대해서도 유독 관용적인 문화를 지닌다.</strong> 소년의 마른 근육질 몸에 정교한 의술과 탐미적 집착이 결합된 이들의 신체는, 때로 생물학적 여성성을 압도하는 고혹적인 아우라를 뿜어내며 젠더 퍼포먼스의 극치를 보여주었다.</p><p>방콕 길거리는 강남의 의료 자본주의를 연상케 하는 피부과와 성형외과로 빼곡하며, 친숙한 시술의 이름들이 메뉴판에 적혀있었다. 편의점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소비 공간조차 한국과는 그 위계가 다르다. 화장품과 스킨케어 섹션은 단순한 구색 맞추기를 넘어 생활 필수재로서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 파운데이션과 콜라겐, 각종 미백 성분들이 일용품의 형태로 유통되는 이 현상은, 태국인들에게 ‘미(美)’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향유하고 갱신해야 할 보편적 권리이자, 현생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자기 수행적 공덕’임을 방증하는 것이다.</p>","date_published":"2026-05-13T21:24:19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id":"https://jiwonkwak.co/thai-food","url":"https://jiwonkwak.co/thai-food","title":"태국 여행기 1: 음식에 대하여","content_html":"<p>이미 태국 여행을 가기 전부터 ‘태국은 음식이 맛있다’는 말은 살면서 지겹도록 들어왔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결과 '태국 음식이 맛있다'는 발언은 '한국은 김치가 맛있다'는 말만큼이나 그 의미가 퇴색되어 버렸다. </p><p>언어를 연구하던 비트겐슈타인은 결국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태국 음식에 대해 고작  '맛있다'고 평할 거라면, 그냥 말을 아끼는 편이 낫다.</p><p>그것은 누군가 수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 소설을 보고 겨우 '재밌다'고 갈음하거나,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을 누군가 ‘착하다’고 정의해 버리는 것과 같다. 이토록 쉽게 뱉은 안일한 가치 판단은 실상에 대한 중대한 모욕이다.&nbsp;</p><p>사실 어느 나라든 음식을 잘 찾아보면 맛은 있다. 식욕은 인류 보편적인 욕망이기에, 인간은 어떤 기후와 풍토 속에서든 기어코 미식을 구현해낸다. 그러니 '맛있다'는 말은 특정 식문화의 개성을 표현하기에 지나치게 진부화<em>trivialize</em>된 표현이다.</p><p>특히 '태국 과일이 맛있다'는 말에는 속이 뒤집어진다. 과일은 본래 자연이 선사한 선물이자 그 자체로 완성된 맛이다.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태국의 식재료와 음식의 실체는 단순히 ‘맛있다’는 일차원적인 언어적 프리즘을 통해 전달될 수도, 전달되어서도 안 된다.</p><p>잠깐 태국에서 시선을 돌려보자. 남아공에서 먹은 것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다름 아닌 아보카도였다. 아보카도 이야기를 꺼내면 다들 흘려듣곤 하지만, 한국에서 유통되는 것과는 질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한 손에 기분 좋게 쥐어지는 넉넉한 크기, 돌기 없이 매끄러운 표면. 저항 없이 미끄러지며 들어가는 칼날과 한 치의 미련도 없이 껍질에서 분리되는 과육. 게다가 이런 아보카도 한 바구니가 고작 3,000원(비록 농장에서 도난된 장물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지만)이었다는 사실은, 그것을 단순히 ‘맛있다’고 평하기엔 질적인 우월함이 너무나 압도적이었음을 방증한다.</p><p>다시 태국 얘기로 돌아와 보자면, 팟타이든 카오팟무쌉이든 특정 메뉴의 맛을 따지는 것은 본질이 아니다. 태국 음식을 다른 세계와 구분 짓는 진정한 요소는 다름 아닌 <strong>작지만 농축된 생명력</strong>, 그리고 <strong>무자비한 풍요</strong>다.</p><h2 id=\"%EC%83%9D%EB%AA%85%EB%A0%A5\">생명력</h2><p>한 주먹에 꼭 쥐어지는 아담하고 매끄러운 사과. 유럽에서 운 나쁘게 마주치던 퍼석한 사과에 대한 우려를 단숨에 불식시킬 만큼, 과육은 아삭하고 달콤했다. 얇은 초록 껍질 속에 단단히 응축된 귤은 입안에서 터지는 순간 새콤달콤함의 파편을 흩뿌렸다. 반으로 갈린 패션프루트는 한 방울의 잔여물도 허락지 않겠다는 듯 스푼 위로 소복이 올라앉았고, 씨앗 사이사이 맺힌 과즙의 농도 짙은 상큼함을 수류탄처럼 터뜨리며 미뢰 위에서 화려한 난장을 벌였다. 그리고 태국의 작은 고추들. 그것들은 고농축 우라늄과 같은 폭발력을 품고 혀끝을 강타한 뒤 깔끔한 감칠맛만을 남기고 사라졌다.</p><p>작지만 농축되어 있다는 것. 그것은 비단 식재료에만 국한된 형용이 아니다. 이곳의 모든 생명은 작고 알차며, 어떤 자의식의 제약도 없이 모든 가능성을 펼치며 자유롭게 존재한다.</p><p>심지어는 쥐와 바퀴벌레까지도 말이다.</p><p>잠시 주제를 이탈하자면, 야간 비행 일정으로 인해 새벽 2시경 음료를 사기 위해 방콕 시내를 배회하던 날의 일이다. 나는 살면서 그렇게 건강미 넘치는 해충을 본 적이 없었다. 나의 모국인 한국은 내가 아는 가장 결벽에 가까운 위생을 지닌 민족의 나라다. 그 사이에 있을 때 나는 지극히 평균적 지위를 유지했으나, 그날 밤 방콕의 만난 어둠의 생물들이 방출하는 활력<em>vitality</em>과 생명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유난히 습했던 하수구 증기와 뒤섞인 그 생경한 에너지는 역류하는 구역질을 동반했고, 숙소로 돌아온 뒤에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까지 흘려야 했다. '자연'에 익숙한 로날드 조차, 꽉 잡은 손에서 본능적인<em>visceral</em> 혐오를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p><h2 id=\"%ED%92%8D%EC%9A%94\">풍요</h2><p>어쨌든 이렇게 식재료와 생태계에서 빛을 발하는 농축된 생명력에 더해, 오감에 쏟아져 들어오는 풍요로움은 나를 또 한번 감탄시켰다. (환율 하락으로 인해 더이상 크게 저렴하진 않다) 비슷한 가격으로 한국 기준 2인분 같은 1인분을 받는 것에 느끼는 감동은 사그러들지 않았고, 시각적 풍족함 또한 문화 충격을 줄 정도의 자극이었다. 한국에서 타코야키란 모름지기 인내하며 기다려 얻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곳엔 언제든 취할 수 있도록 산더미처럼 쌓인 채, 완벽한 온도로 준비되어 있었다. 자제력을 상실한 방문객이라면 필연적으로 탐식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무자비한 풍요였다.</p><p>그럼에도 태국 사람들은 외적인 관리와 정체성 구현에 거국적인 정성을 쏟는 듯했다.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 사실은 남성의 것이었음을 깨닫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p><p>이에 대해서는 다음 화에 이어서 쓰겠다.</p>","date_published":"2026-05-10T11:29:19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id":"https://jiwonkwak.co/must-in-sa","url":"https://jiwonkwak.co/must-in-sa","title":"남아공 필수 기념품","content_html":"<p>남아공에 가게 된다면, 아니면 영연방(Commonwealth) 국가를 방문했을 때 남아공 수입품을 발견한다면, 꼭 시도해보면 좋은 품목을 정리했다.</p><h2 id=\"%EB%B9%8C%ED%86%B5\">빌통</h2><p>빌통(Biltong)은 남아공을 방문했을 때 반드시 시도해봐야 하는 식품이다.&nbsp;</p><p>빌통은 육포가 아니다. <em>말린 스테이크다. </em>남아공 사람 앞에서 빌통을 육포(Jerky)에 비교하는 것은 문화적인 실례에 준하는 것이고, 상대에 따라 기분이 크게 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아공 사람은 이미 수많은 도발을 겪었기 때문에 정중하게 당신의 무지를 정정해줄 것이다. </p><p>빌통은 <em>생고기에 절대 열을 가하지 않고 찬 바람으로 건조하여 제조한다. </em>그리고 설탕이나 양념을 사용하지 않고 식초, 설탕, 후추로 큐어링하기 때문에 단순 육포에 비해 더 건강하고, 우월한 음식이라고 여겨진다.&nbsp;</p><p>‘육포류’라서 안타깝게도 한국 국내 반입이 금지되는데, 심지어는 수입도 안 된다. 대한민국 <a href=\"https://www.mfds.go.kr/brd/m_562/list.do\"><u>식품의약품안전청이 허용한 육포 수입 국가 목록</u></a>에 남아공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접 만드는 과정이 어렵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는 빌통을 먹어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많이 없다. 그래서 몇 안 되는 국내 빌통 판매자들도 자체 제조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nbsp;가짓수도 제한적이다.</p><p>언젠가 영연방 중 한 곳의 빌통이 국내에 들어온다면(왠지 남아공이 수입 허가를 받는 것 보다 더 현실적일 것 같다), 단순 와인 안주 취급을 할 것이 아니라 마트 정육 코너 옆에 작은 판매대를 하나 내어주는 것이 존중을 표하는 마땅한 방법이다. 실제 남아공 마트에서는 정육점내 큰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UzLCJwdXIiOiJibG9iX2lkIn19--c13474ebb831e3fe8f78a2bacb459bddca706271/Screenshot-2026-05-06-at-10.48.53---AM.png\" alt=\"\" loading=\"lazy\" width=\"2000\" height=\"983\"><figcaption>빌통 건조 시설. 출처: Biltong Depot</figcaption></figure><p>빌통의 국내 생산이 더 어려운 이유는, 한국의 기후가 빌통 제조에 이상적인 조건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em>차갑고 건조한 바람</em>이 필요한 빌통에게 일년 중 습한 날이 꽤 많은 한국은 결코 적합한 장소가 아니라고 한다. 나는 콰줄루나탈(KwaZulu-Natal)지역만 가봐서 그런지, 남아공이 훨씬 습하고 끈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여튼, 그렇다고 한다.</p><p>기후 뿐만이 아니다. 대량 생산할 시설도 갖춰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국내 빌통 생산자들이 이러한 수고를 들이면서까지 빌통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이익을 위해서라고 하기엔 감수해야하는 번거로움이 너무 크다. 대한민국 국민의 견문을 넓히고, 국내 거주 남아공 사람들의 향수를 달래주려는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p><h3 id=\"%EB%93%9C%EB%A3%A8%EC%96%B4%EB%B3%B4%EB%A5%B4%EC%8A%A4\">드루어보르스</h3><p>로날드와 친구였던 시절에도 종종 연락을 주고 받곤 했었는데, 언젠가 '이게 뭔지 맞춰보라'며 사진을 하나 보내온 적이 있다. 사진 속에는 나뭇가지로 보이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아프리카 부족들이 구강위생 도구로 사용하는 막대기인 치목(齒木)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것이 바로 드루어보르스(Droëwors)였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U0LCJwdXIiOiJibG9iX2lkIn19--e44a157cf0b0dcf4bdc3a1e6270e473ea7fa1928/KakaoTalk_Photo_2026-05-05-17-18-25-1.jpeg\" alt=\"\" loading=\"lazy\" width=\"960\" height=\"1280\"><figcaption>당시 나에게 보내온 사진.</figcaption></figure><p> 드루어보르스는 말린 소세지라는 뜻이다. 쉽게 건조되도록 얇게 잘랐다고 한다. 빌통을 취급하는 곳이라면 무조건 드루어보르스도 판매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마치 개껌 같이 생겼지만, 실제로는 소금 함량이 좀 높은 편이라 반려견 급여로는 적합하지 않다.</p><p>맛은 짭짤한 말린 고기. 건조 정도에 따라 촉촉하고 부드러운 것도 있고, 문방구에 팔던 ‘숏다리’같이 건조하고 딱딱한 것도 있다.&nbsp;촉촉할 수록 더 맛있다.</p><p>남아공 사람들의 건강 상식에는 '촉촉한 드루어보르스는 지방 함량이 높고, 건조한 것이 건강에 낫다'라는 내용이 있다. 무엇이 더 맛있을 지 짐작이 갈 것이다.</p><h3 id=\"%EA%B2%B0%EB%A1%A0\">결론</h3><p>모든 나라에는 자국만의 육포가 있다. 싱가포르의 비첸향(Bee Cheng Hiang), 달달하고 덜 자극적인 한국식 육포, 이탈리아의 살라미(Salami), 독일의 되르플라이쉬(Dörrfleisch), 그리고 남아공의 빌통. 나는 사실 육포를 자주 먹지 않기 때문에 어느 나라 말린 고기든 전부 거기서 거기지만, 빌통의 우월성에 대한 남아공인들의 자부심을 이해한다면 라포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기회가 될 때마다 선제적으로 존중을 표할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p><p><em>참고로 편의상 드루어보르스를 빌통의 하위 개념으로 배치했지만, 실제 위계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em></p><h2 id=\"%EB%9F%AC%EC%8A%A4%ED%81%AC\">러스크</h2><p>많은 사람들이 ‘러스크’라고 하면 튀겨서 설탕을 입힌 식빵 조각을 떠올릴 것이다. 아프리칸스어 이름은 <em>Beskuit</em>인데, 17세기에 네덜란드인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오랜 항해를 견딜 수 있도록 두 번 구워 딱딱하게 만든 빵 <em>Beschuit가 아프리카 기후에 맞게 현지화된 것이다</em>. </p><p>버터밀크(<em>Karringmelk)</em>를 넣는다는 특징도 있다. 참고로 버터밀크는 버터 생산의 부산물로, 이름과는 달리 저지방이며 영양적 가치도 높다. 남아공 마트에서는 항상 유제품 칸에서 볼 수 있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U1LCJwdXIiOiJibG9iX2lkIn19--f96e492d1f4721d5519398ca10f8350e57b52ebf/61TcytmFDZS._SY879_.jpg\" alt=\"\" loading=\"lazy\" width=\"627\" height=\"879\"></figure><p>그냥 먹으면 턱이 나갈 수 있지만, 일부러 딱딱하게 먹는 사람들도 있다(내 이야기다). 공식 레시피가 존재하는 라면을 생으로 부숴서 먹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어쨌든 커피에 적셔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U2LCJwdXIiOiJibG9iX2lkIn19--98e67ed984286d0e87f487df5fd76a6c7c118c36/Screenshot-2026-05-05-at-5.23.22---PM.png\" alt=\"\" loading=\"lazy\" width=\"1730\" height=\"996\"><figcaption>구글 검색 결과</figcaption></figure><p>작년 남아공 방문 당시 나는 아직 과잉 절제를 하던 중이었어서, 딱 봐도 설탕과 밀가루가 압축되어 칼로리 밀도도 높고 중독성도 강해보이는 러스크를 먹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참고로 나는 수년간 디저트라는 개념을 외면하며 살았고, 한때는 그 억압된 식욕이 컬리플라워와 브로콜리 과식으로 귀결되었을 정도로 보상 체계가 왜곡된 상태였다.</p><p><em>참고로 러스크는 디저트가 아니라 아침 식사지만, 나는 단맛이 나는 탄수화물은 무조건 디저트 취급을 한다.</em></p><p>디저트는 여성의 3대 본능 중 하나로, 아무리 외면하고 길들이더라도 수천년간 깊숙이 뿌리 내린 강력한 갈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슈퍼마켓에서 무설탕 &amp; 무밀가루 버전을 봤을 때 내가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근위대가 손 흔드는 어린이들을 무시하며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듯, 나 또한 러스크에 대한 본능적인 호기심을 힘겹게 외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p><p>그런데 이제 '건강한' 버전이 존재한다는 것은, 러스크에 대한 나의 호기심과 디저트 욕구를 해소시킬 수 있음을 의미했다. 건강 디저트는 오랫동안 '진짜 디저트'의 망령 취급을 받아 왔지만, 최근에는 퀄리티가 좋아져서 섭취했을 때 만족감이 결코 부족하지 않은 편이다. (물론 스테비아 등 감미료는 화학적 작용에 있어서 설탕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다행스럽게도 설탕을 오래 안 먹다보면 맛을 까먹기 때문에 대체 가능하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YyLCJwdXIiOiJibG9iX2lkIn19--a2923db035c53287ccbe164db1de2d0b750fc350/IMG_2257.jpeg\" alt=\"\" loading=\"lazy\" width=\"240\" height=\"320\"></figure><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YzLCJwdXIiOiJibG9iX2lkIn19--94e268b63d5e298463ceea21d71a631c21579ce3/IMG_2262.jpeg\" alt=\"\" loading=\"lazy\" width=\"240\" height=\"320\"></figure><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Y0LCJwdXIiOiJibG9iX2lkIn19--27fda74345f7ae8bb0406b10d183d76a45099071/IMG_2307.png\" alt=\"\" loading=\"lazy\" width=\"2000\" height=\"1500\"></figure><p>건조한 편인 시리얼 위트빅스(Weet-bix)를 기준으로 보자면 러스크는 더 촉촉하지만, 커피에 적셔서 먹는 목적으로 생산되었으므로 밀도가 높고 두께 자체가 묵직해서 씹는 데 상당한 노동이 요구된다. 굳이 적셔서 먹지 않더라도 커피와 잘 어울린다. </p><p>내가 고른 버전은 밀가루 대신 아마씨, 코코넛 등으로 만들어 섬유소도 훨씬 많고, 영양적으로도 더 밀도 높다. 요새는 키토제닉(Ketogenic) 식품의 품질이 너무 좋아서 밀가루의 수요탄력성이 많이 높아졌을 거라 예상이 된다. 한국에서도 점점 구하기 쉬워지고 있지만, 아직은 선택지가 제한적이다. 내가 해외 생활을 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다양한 키토제닉 및 대체 식단 식품에 대한 접근성이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U3LCJwdXIiOiJibG9iX2lkIn19--d75baec2f04f9580c89c29d6a4c091813281b98e/Screenshot-2026-05-05-at-4.38.41---PM.png\" alt=\"\" loading=\"lazy\" width=\"1842\" height=\"1160\"><figcaption>남아공에서도 구하기 힘들어졌나보다</figcaption></figure><p>혈당 관리를 하시지만 '건강 음식'에 의심이 있으신 로날드 아버지께도 드렸는데, 먹을만 하다고 놀라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 러스크를 현지에 있는 동안 세 번 정도 사 먹었다. 그렇다면 한국에도 사왔는가? 아니다. 회사에 기념품으로 가져갈 것을 제외하고, 개인 소비용으로는 사오지 않았다. </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U4LCJwdXIiOiJibG9iX2lkIn19--7ba58e477eca67a9e90f50c550c1f211953be7b9/IMG_9134.jpeg\" alt=\"\" loading=\"lazy\" width=\"2000\" height=\"1500\"><figcaption>회사에 가져간 것</figcaption></figure><p>다 먹고 나면 또 먹고 싶을 것이 분명한데, 한국에서는 와인을 제외하면 남아공 수입품은 구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일회성 소비에는 관심이 없다.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아예 가까이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p><h2 id=\"%EB%82%9C%EB%8F%84%EC%8A%A4-%EC%86%8C%EC%8A%A4\">난도스 소스</h2><p>난도스(Nando's)는 포르투갈인들이 남아공에 넘어와 만든 치킨 브랜드로, 영연방 국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닭을 튀기지 않아 패스트푸드 중에서는 나름 건강식으로 간주된다. </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U5LCJwdXIiOiJibG9iX2lkIn19--d1021117b0195fce46f3637f6d8c2ffaf2c74325/Screenshot-2026-05-05-at-5.34.48---PM.png\" alt=\"\" loading=\"lazy\" width=\"724\" height=\"814\"></figure><p>난도스는 식사 메뉴로도 유명하지만, 더 유명한 것은 바로 시그니처 소스. 한국에 사오면 좋은 것이 바로 이 소스다. 페리페리 칠리로 만들었으며, 설탕이 첨가되어 있지 않다.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지만, 현지가 더 저렴하기 때문에 기념품으로서의 정당성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YwLCJwdXIiOiJibG9iX2lkIn19--c53bb965cc28d126b0b37662de1264ecba16e6b1/Screenshot-2026-05-05-at-5.16.00---PM.png\" alt=\"\" loading=\"lazy\" width=\"766\" height=\"622\"><figcaption>매운맛도 별로 안 맵다.</figcaption></figure><p>우리도 작년에 남아공을 방문했을 때 한 병을 사왔는데, 나는 사실 1년이 넘도록 무슨 맛인지 알지 못했다. 사온 직후 닭가슴살과 같이 먹어보려 했지만, 로날드가 굉장히 소중하게 아껴 쓰는 것을 알고는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닭가슴살은 야채 취급을 받는 남아공 출신이다보니, 로날드는 내심 소스를 낭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로날드는 너무 착하기 때문에 절대 티를 내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선제적으로 안 건드렸다)</p><p>최근들어 처음으로 난도 소스를 제대로 맛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영연방 중 한 곳인 싱가포르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부기스(Bugis)의 몰에 자리한 난도스에서 점심을 먹었다. </p><p>소스가 무제한으로 제공되었는데, 신맛을 좋아하고 타바스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난도 소스가 정말 잘 맞을 것이다. 우리도 출국 전에 소스 세 병을 샀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로날드에게 전부 양보할 것 같다.</p><h2 id=\"%EC%95%84%EB%A7%88%EB%A3%B0%EB%9D%BC\">아마룰라</h2><p>코끼리 열매라고 불리는 마룰라(Marula)와 크림, 설탕으로 만든 남아공 리큐르. 이 제품은 국내에서도 가끔 발견할 수 있다. 설탕이 잔뜩 들어가다 보니 입에 착착 감기는 화사한 성인용 아이스크림에 가깝다. </p><p>작년 남아공 방문 당시에도 나는 설탕을 피하는 중이었지만, 외국을 방문한 손님이 된 입장에서 호스트가 권하는 것을 거절할 수는 없는 법. 아래 사진이 찍힌 날, 아마룰라는 많이 마셨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YxLCJwdXIiOiJibG9iX2lkIn19--6ff5c676a46c986a25fa64d29305c533488cb0ca/IMG_9109-1.jpeg\" alt=\"\" loading=\"lazy\" width=\"2000\" height=\"2256\"></figure><p>알코올이 함유된 굉장히 달콤하고, 짙은 농도 아이스크림을 녹여서 마시는 맛이다. 그런데 실제 아이스크림과도 잘 어울린다. 깔루아 밀크 같이 칵테일을 만들기에도 좋다.</p><p>나는 참고로 술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일년에 5회 이하로 마신다. 하지만 아마룰라는 그 5회 중 2회 정도는 내어줄 수 있는 특별한 술이다.</p><h2 id=\"%EA%B2%B0%EB%A1%A0-1\">결<strong>론</strong></h2><p>다음 번 남아공을 두 번째로 방문한다면, 더 새로운 것을 많이 경험하면서 이 목록을 더 확장할 계획이다.</p>","date_published":"2026-05-06T04:19:45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id":"https://jiwonkwak.co/translation","url":"https://jiwonkwak.co/translation","title":"AI 시대 번역에 대해…","content_html":"<p>저는 4개 국어 책을 번역했습니다. 개인적 바람으로는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나 아프리칸스어 번역도 해보고 싶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주어질 때까지 실력을 갈고 닦아 놓을 생각입니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Q3LCJwdXIiOiJibG9iX2lkIn19--83acaa8f4e6ebf30424e2e414719ba73413fc382/Screenshot-2026-04-21-at-8.05.13---PM.png\" alt=\"\" loading=\"lazy\" width=\"1680\" height=\"574\"></figure><p>독자 입장에서는 생각을 잘 안 하지만, 출판 프로세스는 사실 정말 길고 지루합니다. 원고를 넘긴 뒤 빠르면 몇 달, 때로는 1년 가까이 지나서야 책을 손에 쥘 수 있거든요.</p><p>이번에 제가 번역한 독일어 책 두 권이 드디어 세상에 나왔어요.</p><p>하나는<strong>《</strong><a href=\"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9616137\" rel=\"noreferrer\"><strong>일러스트로 보는 월드컵의 역사 1930~2026</strong></a><strong>》인데요. </strong></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Q4LCJwdXIiOiJibG9iX2lkIn19--5a624afcca47729ca33557091f8aae1e835666b5/9791124272121.jpg\" alt=\"\" loading=\"lazy\" width=\"458\" height=\"646\"></figure><p>아르헨티나 출신 세계적인 카투니스트 Aczel의 작품입니다. 1930년 우루과이 대회부터 2026년까지 역대 월드컵의 위대한 순간들을 생생한 일러스트와 깨알 같은 정보로 풀어낸 책이에요.</p><p>이런 책은 번역의 상당 부분이 <strong>검색 전쟁</strong>입니다. “Das Wunder von Bern(베른의 기적)”처럼 이미 고유명사화된 역사적 명장면은 한국어로 굳어진 표현이 무조건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축구 팬들에게 익숙한 용어를 쓰기 위해서 수없이 검색하고, 기존 번역·기사 등을 확인했습니다.</p><p>축구 선수 이름들도 만만치 않았어요.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발음 체계를 조금 아는 게 도움이 되긴 했지만, 결국 하나하나 확인해야 했습니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Q5LCJwdXIiOiJibG9iX2lkIn19--6f399d2f57057e1c444815b9c48b5c89288b0934/data-src-image-7a418a86-dbb4-4d6d-b57b-3ec193a25e79.png\" alt=\"\" loading=\"lazy\" width=\"1328\" height=\"1252\"><figcaption>체코어는 제가 하나도 모르는데요... 그래서 이름이 어려웠습니다.</figcaption></figure><p>이 책의 특징은 아무래도 일러스트레이션인 것 같습니다. </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UwLCJwdXIiOiJibG9iX2lkIn19--1859ce9da44dbb6bd0a64c4e007c4b8ee5deb835/IMG_0235.PNG\" alt=\"\" loading=\"lazy\" width=\"860\" height=\"572\"><figcaption>홀란드 얼굴 좀 보세요.</figcaption></figure><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UxLCJwdXIiOiJibG9iX2lkIn19--3a6b8213c0209c4ca9dff25bac8dea7a2ba40463/IMG_0827.gif\" alt=\"\" loading=\"lazy\" width=\"960\" height=\"1707\"><figcaption>펠레도 좀 너무합니다.</figcaption></figure><!--members-only--><p>다른 한 권은<strong>《</strong><a href=\"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9564496\" rel=\"noreferrer\"><strong>권력중독</strong></a><strong>》</strong>입니다. </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UyLCJwdXIiOiJibG9iX2lkIn19--6e1447da57e97e0fe4f57426aa57c9da92670142/9791124073285.jpg\" alt=\"\" loading=\"lazy\" width=\"458\" height=\"650\"></figure><p>원제는 &lt;Die Psychologie der Macht(권력의 심리학)&gt;이었는데, 출판사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더 강렬하게 다가오도록 현지화한 제목이에요. 권력자가 어떻게 변하고, 권력이 사람의 뇌와 행동을 어떻게 바꾸는지 날카롭게 파헤치는 책인데, 제 본래 관심사와 100% 맞아떨어져서 정말 재미있게 번역했습니다.</p><p>참고로 저는 번역 선택권이 거의 없어요. 언어 덕후로서 번역을 취미로 즐기는 입장이라, 출판사에서 주어지는 책을 랜덤 박스 뽑듯 받아서 합니다. 다만 “이건 도저히 못하겠다” 싶은 분야는 양심상 거절합니다. (미래 독자를 위해서라도요.) 물론 아직 그럴 일은 단 한 번 밖에 없었습니다.</p><h2 id=\"ai-%EC%8B%9C%EB%8C%80%EC%97%90-%EB%B2%88%EC%97%AD%EA%B0%80%EC%9D%98-%EC%9A%B4%EB%AA%85\"><strong>AI 시대에 번역가의 운명</strong></h2><p>요즘 ‘AI가 통번역사를 대체할까’ 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제 입장은 꽤 명확합니다.</p><p>솔직하게 말하면, 막연하게 “인간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유효기간은 거의 끝났다고 봅니다. 최신 LLM은 뉘앙스와 문맥까지 상당히 잘 잡아냅니다. 잘만 활용하면 근성장에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는 수준으로 폭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p><p>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여전히 <strong>사람의 감독과 판단</strong>이 핵심이라는 점입니다. AI가 드물지 않게 일으키는 환각(hallucination)을 잡아내려면 문화적 뉘앙스, 시대적 은유, 학제간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하니까요.</p><p>실제 사례를 하나 들면, 어떤 독일어 책 한국어 번역본에서 70년대 LSD 관련 단락에서 등장한 “Trip”을 단순히 “여행”으로 옮긴 것을 보고 경악한 적이 있어요. 번역하신 선생님을 제가 직접 알지는 못합니다만, 그분이 설사 독문학 박사라고 하더라도, 7~80년대 서구 문화·역사적 배경까지 알기는 어려웠던 거죠.</p><h2 id=\"%EB%B2%88%EC%97%AD%EA%B0%80%EC%97%90%EA%B2%8C-%EC%A0%95%EB%A7%90-%ED%95%84%EC%9A%94%ED%95%9C-%EC%97%AD%EB%9F%89\"><strong>번역가에게 정말 필요한 역량</strong></h2><p>제가 실제 번역 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번역가로서 정말 중요한 능력은 아래 세 가지입니다.</p><h3 id=\"sprachgef%C3%BChl-%EC%96%B8%EC%96%B4%EA%B0%90\"><strong>Sprachgefühl (언어감)</strong> </h3><p><strong>Sprachgefühl</strong>은 말 그대로 ‘언어에 대한 느낌’을 뜻하는 독일어인데, 사전적 의미를 넘어 그 단어가 그 문맥에서 어떤 뉘앙스를 풍기는지, 한국어로 옮겼을 때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직관적으로 아는 능력이에요. 저는 선천적으로 이 감이 좀 좋은 편이라 새로운 언어를 비교적 빠르게 익힙니다. 이건 코어 근육과 정말 비슷합니다. 코어가 없으면 운동 자체가 힘들고, 안 하면 더 약해지는 악순환… 하지만 꾸준히 훈련할수록 확실히 강해지죠.</p><p>AI가 여러 옵션을 던져줘도, 어떤 표현이 더 자연스럽고 정확하며 원문의 ‘맛’을 제대로 살리는지 판별하려면, 본인이 직접 수없이 읽고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해 본 경험이 필수입니다.</p><p>편법은 없어요. 무조건 <strong>많이 읽고, 많이 쓰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strong>이 답입니다. 최종 판단하는 건 결국 인간의 언어감이니까요.</p><h3 id=\"%ED%8F%AD%EB%84%93%EC%9D%80-%ED%95%99%EC%A0%9C%EA%B0%84-%EC%A7%80%EC%8B%9D\"><strong>폭넓은 학제간 지식</strong></h3><p>그런데 단순 언어 실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번역의 질을 좌우하는 건 연륜과 경험으로 쌓인 배경지식입니다. </p><p>예를 들어, 권력의 심리학 책을 번역할 때 권력자가 보이는 심리 패턴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역사적 사례(특정 독재자나 정치인)나 심리학 이론을 자연스럽게 연결지을 수 있었던 건 평소 국제 정치·철학·심리학에 관심을 가져온 덕분이었어요.</p><p>반대로, 문화적·시대적 맥락을 모르면 미묘한 오역이 나오기 쉽죠. (70년대 LSD ‘Trip’을 ‘여행’으로 번역한 사례처럼) 벼락치기는 통하지 않습니다. 장기적으로 꾸준히 쌓아온 호기심과 탐구가 복리 효과를 가져오고, 결국 번역의 깊이를 결정짓습니다.</p><h3 id=\"%EC%B5%9C%EC%86%8C-%ED%80%84%EB%A6%AC%ED%8B%B0%EB%A5%BC-%EC%A7%80%ED%82%A4%EB%A9%B4%EC%84%9C-%EB%82%B4%EB%8A%94-%EC%86%8D%EB%8F%84\"><strong>최소 퀄리티를 지키면서 내는 속도</strong></h3><p>속도도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실제로 저의 번역 의뢰가 반복되는 이유 중 하나가 “퀄리티를 유지하면서도 제때 끝낸다”는 평판이었으니까요.</p><p>하지만 엉망으로 빠른 건 의미가 없습니다. AI가 초안을 순식간에 뱉어내는 시대에, 진짜 경쟁력은 퀄리티를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판단력·실행력·손놀림이 뒷받침된 속도예요.</p><p>이건 타고난 성향도 어느 정도 작용하지만, 의식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한 뒤 바로 실행에 옮기는 추진력과 집중력이 핵심입니다.</p><h2 id=\"%EB%A7%88%EB%AC%B4%EB%A6%AC\"><strong>마무리</strong></h2><p>AI 발전 속도가 전례 없이 빠르다 보니, 솔직히 번역가로서 위기감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p><p>하지만 요즘 많은 사람들이 ‘AI 슬롭(AI slop)’에 피로를 느끼는 걸 보면, 오히려 진짜 사람의 손길이 담긴 진정성의 가치가 더 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꽤 낙관적입니다. </p><p>그 와중에 우리가 번역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조금 지루하더라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륜과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p><p>나만의 중심이 어느 정도 잡히면, AI와의 공존에 있어서도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p><p>가장 인상 깊었던 AI 성공담, 혹은 “이건 아직 AI가 못 잡아내는구나” 싶었던 순간, 아니면 다른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편하게 답장이나 댓글로 알려주세요!</p><p>오늘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p>","date_published":"2026-04-21T11:50:57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id":"https://jiwonkwak.co/ai-fatigue","url":"https://jiwonkwak.co/ai-fatigue","title":"AI 피로증후군 벗어나기","content_html":"<p>내가 코딩으로 이것저것 만들기 시작한 건 바이브 코딩이 아직 본격 유행하기 전이었다. 그리고 코딩 에이전트가 등장한 순간, 진짜 신세계가 펼쳐졌다. 그 열정의 절정은 작년 하반기였다. 매주 새로운 걸 만들며 “이게 진짜 미래구나” 하고 감탄하던 때. </p><p>올해 초에는 회사 동료 스무 명에게 1on1으로 ‘바이브 코딩’을 전도하기도 했다. </p><p><a href=\"https://vibing.jiwonkwak.co\" rel=\"noreferrer\">바이브 코딩 세션에서 사용한 자료 링크</a></p><p>그런데 최근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SaaS 시장은 더 치열해졌고, 비슷한 자동화 도구를 매일 보다 보니 만들고 싶은 욕구 자체가 사라졌다. 무엇보다 <strong>AI 슬롭</strong>에 대한 극심한 피로가 밀려왔다. AI가 생성한 글만 봐도 강한 반발심이 올라온다. 글을 쓰는 사람이자 언어 덕후인 나는 특히 더 민감했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QzLCJwdXIiOiJibG9iX2lkIn19--caa36eb5bdafd580257408856fbbe7872d4a7cb5/image.png\" alt=\"\" loading=\"lazy\" width=\"2000\" height=\"1012\"><figcaption>만든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몇 주 만에 조용히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유일하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2년 전 만든 AI 연동도 안 된 번역 트래커뿐이다. 5권 넘는 책을 함께 해왔다.</figcaption></figure><p>누군가의 소비로 돌아가는 경제 속에서, 본인조차 소비하지 않을 저품질 콘텐츠를 양산하고 자동 업로드하며 광고 수익을 인증하고, 그 과정까지 또 강의로 파는 끝없는 꼬리물기식 자동화 행태를 보면 마음이 심란해졌다.</p><p>그래서 과감히 알고리즘을 정리했다. AI 관련 수익화 콘텐츠와 슬롭은 최대한 내 피드에서 사라지게 했다.</p><p>AI고 뭐고, 이제 다 꼴 보기 싫어졌다.</p><p>지금은 동호회 일정 관리나 영어 뉴스 봇처럼 실제로 편리한 것들만 남겨두고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최소한으로 사용한다.</p><h2 id=\"%EC%9D%B8%EA%B0%84-%EB%A3%A8%ED%8B%B4%EC%9C%BC%EB%A1%9C%EC%9D%98-%ED%9A%8C%EA%B7%80\">인간 루틴으로의 회귀</h2><p>그리고 나는 방향을 틀었다:<strong> 인간으로서의 루틴의 고도화.</strong> </p><p>사실 원래도 루틴에 집착하는 사람이었지만, 한 단계 더 끌어올리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p><p>인간은 하루 활동의 상당 부분을 습관으로 처리한다. 최근 번역한 책에서 본 내용인데, 우리 일상의 60% 이상이 습관으로 돌아간다. 그 말인 즉슨, 일상의 중요한 부분들을 습관화시켜 놓으면 뇌의 부담은 줄고, 진짜 가치 있는 일에 에너지를 더 집중시킬 수 있다는 것.</p><p>습관을 하나 제대로 만드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흔히 21일이면 된다고들 하지만, 실제 연구에 따르면 평균 <strong>66일</strong> 정도, 사람과 행동에 따라 18일부터 250일 이상까지도 얘기한다.</p><p>그런데 나는 운동, 식단, 수면을 한 번에 최적화한 뒤 습관으로 박제했다. 상여자 다운 “한다면 한다”는 결심 하나로 생각보다 빠르게 자리 잡았다. 뭐든지 마음 먹기에 달렸다.</p><p>결국 삶의 질은 하루를 얼마나 잘 최적화하느냐로 결정된다. 그리고 그 핵심은, <strong>올바른 습관을 꾸준히</strong> 만들어가는 것이다.</p><p>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AI가 절대 대신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바로 <strong>하기 싫고, 하기 어려운 일들</strong>이다.</p><ul><li>실제로 사람을 만나 조리 있게 말하는 것</li><li>값싼 도파민 앞에서 자제력을 발휘하는 것</li><li>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li></ul><p>이것들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영원히 넘볼 수 없는, 인간 의지와 정신력의 영역이다.</p><h2 id=\"%EB%82%98%EC%9D%98-%EB%A3%A8%ED%8B%B4\">나의 루틴</h2><p>요즘 해가 일찍 뜨면서 기상 시간도 자연스럽게 앞당겨졌다. 알람 없이 새벽 4시 반~5시 사이에 눈이 떠진다. 주중에 집을 나서는 시간이 6시 20분이니, 이제 새벽 운동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새벽 러닝과 홈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p><p>운동을 하지 않는 날에는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는다. 16:8 간헐적 단식도 재개했는데, 몇 년 전보다 몸의 반응이 훨씬 좋다. HRV는 20% 이상 상승했고, 휴식기 심박수는 39까지 내려갔다. 수치가 증명해주니 습관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Q1LCJwdXIiOiJibG9iX2lkIn19--ecf580d79e92e901fcdd34bea2704253b2821b53/Screenshot-2026-04-15-at-4.07.11---PM.png\" alt=\"\" loading=\"lazy\" width=\"1179\" height=\"1777\"></figure><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Q2LCJwdXIiOiJibG9iX2lkIn19--d43b763635f2d33bed2fb8ac8e46f028396bc20f/Screenshot-2026-04-15-at-4.05.59---PM-2.png\" alt=\"\" loading=\"lazy\" width=\"1179\" height=\"1649\"></figure><p>행복하게 사는 가장 확실한 비결은, 결국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p><h2 id=\"%EC%96%B8%EC%96%B4-%EA%B3%B5%EB%B6%80\">언어 공부</h2><p>그리고 최근, 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면서 독서 루틴도 제대로 돌아왔다. 취미로 번역을 하면서 읽었고, 흥미 가는 책이 있으면 읽었지만 전체 독서량은 늘 부족하다고 자책해왔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어릴 적 몇 시간씩 책에 빠져들던 그 집중력이 돌아왔다.</p><p>특히 내 진짜 관심사인 외국어와 독서를 결합하는 순간, 열정이 폭발했다. AI 때문에 한동안 언어 공부에서 한눈을 팔았지만, 오히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더 강하게 ‘언어 덕후’라는 정체성을 확인했다.</p><p>관리해야 할 언어가 많을수록 시간적·정신적 부채가 커진다는 걸 알기에, 오래 해오던 독일어와 프랑스어는 ‘소설이든 뭐든’ 일단 무조건 읽기로 방향을 전환했다. (원래 소설은 잘 읽지 않는 편이었다.)</p><p>그 결과, 500 페이지가 넘는 코르넬리아 푼케의 독일어 원서 《Tintenherz》를 일주일 만에 읽어버렸다. 너무 재밌어서 바로 속편으로 넘어갔다. 추천해준 유경아, 고마워.</p><p>프랑스어로는 선물 받은《사랑의 역사》로 가볍게 시작 중이다. 원래 리슐리외 이전 시대에는 관심이 없어 미루고 미루던 책이었는데, “무조건 읽는다”는 결심을 하자 거부감이 싹 사라졌다.</p><p>샤를마뉴 대제에게 아이가 스무명이 넘게 있었다는 사실도 이 책에서 알게 됐다. 독서 자체가 다시 즐거워졌다. 선물해준 혜민아, 고마워.</p><p>예전 같이 태국어, 이탈리아어도 집중해서 공부하고 있다. 태국어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언어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쓸 예정이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Q0LCJwdXIiOiJibG9iX2lkIn19--b1fc0fc2eec4f3efd7f9a88f99b9276452a68953/IMG_1203.png\" alt=\"\" loading=\"lazy\" width=\"2000\" height=\"1500\"><figcaption>태국 초등학생이 이런 언어를 배운다니. 상상할 수 없다.</figcaption></figure><h2 id=\"%EB%8D%94-%EB%8B%A8%EB%8B%A8%ED%95%9C-%EC%9D%B8%EA%B0%84%EC%9D%B4-%EB%90%98%EC%96%B4\">더 단단한 인간이 되어</h2><p>진짜 언어를 느끼고,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그 순간은 실제 경험을 대체할 수 없다.</p><p>자제력을 발휘하며, 내 강점을 하나씩 확인하고, 스스로를 조금씩 최적화해 나갈 때, 진짜 행복이 조용히 스며든다는 걸 요즘 들어 깊이 느끼고 있다.</p><p>AI 피로를 통해 정신을 크게 차린 기분이다. 모든 선택을 더 의도적으로 하고, 더 단단하고 더 인간적인 내가 되어가는 이 과정이 생각보다 참 즐겁다.</p>","date_published":"2026-04-16T09:00:29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id":"https://jiwonkwak.co/afrikaans","url":"https://jiwonkwak.co/afrikaans","title":"200년 걸릴 언어를 50년 만에 만든 집념의 언어 이야기","content_html":"<p>제가 전공하지도 않은 네덜란드어 책을 두 권 번역할 수 있었던 데에는 많은 우연이 작용했습니다. </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M1LCJwdXIiOiJibG9iX2lkIn19--38ea6a7a06cf5d2d830914147be0c90c64c70530/76081743-E9B3-4092-B783-26CBE345DEE5-1.JPG\" alt=\"\" loading=\"lazy\" width=\"500\" height=\"375\"><figcaption>첫 네덜란드어 역서</figcaption></figure><p>사실 소수 언어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탓에, 독일어 전공자로서 유리한 입장에 있으면서도 회피했던 언어 목록에 네덜란드어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에서 가장 신생어이자 네덜란드어의 크레올에 속하는 소수 중의 소수 언어 <strong>아프리칸스어</strong>를 할 줄 알았던 것이 번역의 매개가 됐습니다. (물론 독일어 전공을 했다는 것이 더 근본적인 이유긴 하지만요.)</p><p>까다로운 언어 취향을 가진 제가 매력을 느낀 아프리칸스어는 오해도 많이 받는 언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아프리칸스어의 역사를 훑어보며 몇 가지 오해를 풀고, 흥미로운 지점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M2LCJwdXIiOiJibG9iX2lkIn19--feb020864c2d708279839a29b120d3bad7fe9fcf/IMG_8996-1-1.png\" alt=\"\" loading=\"lazy\" width=\"2000\" height=\"2667\"><figcaption>눈 돌아갔던 남아공 중고서점</figcaption></figure><h2 id=\"%EA%B8%B0%EC%9B%90%EA%B3%BC-%ED%8A%B9%EC%A7%95\"><strong>기원과 특징</strong></h2><p>아프리칸스어는 17세기 네덜란드어에서 출발한 언어입니다. 유럽 국가들이 항해술을 익혀 새로운 무역로를 개척하고 식민지를 만들던 시기, 아프리카 최남단에 네덜란드인들이 정착하면서 시작됐어요.</p><p>시간이 지나면서 문법이 상당히 단순화되고 형태가 크게 변형됐습니다. 동사 변화가 거의 사라지고, 성(性) 구분이 없어지는 등 구조적으로 훨씬 가벼워졌죠. 이 과정을 크레올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안 그래도 복잡도 순으로 독일어 &gt;&gt;&gt;&gt; 네덜란드어였는데, 이제 그보다 한층 쉬운 아프리칸스어가 된 셈입니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M3LCJwdXIiOiJibG9iX2lkIn19--240cdbfcdf56ed14131864f990fedca818d3816c/afrikaans.png\" alt=\"\" loading=\"lazy\" width=\"413\" height=\"169\"><figcaption>동사 변화가 없는 아프리칸스어 좀 보세요. 출처: https://zubindoshi.com/a-brief-history-of-languages-their-future/</figcaption></figure><p>노예로 유입된 말레이·인도네시아 계열 언어, 그리고 현지 코이산어 등과 섞이면서 유럽 본토 네덜란드어와는 꽤 다른 특징도 생겼어요. 예를 들어 ‘바나나’는 대부분 언어에서 banana(🇬🇧), Banane(🇩🇪), banane(🇫🇷), banaan(🇳🇱), banana(🇮🇹), plátano(🇪🇸) 식으로 비슷하게 생겼지만, 아프리칸스어로는 <strong>piesang</strong>입니다. 말레이어 pisang에서 왔어요. ‘satay’도 sosatie 같은 형태로 쓰입니다.</p><p>이런 과정을 거치며 기존 네덜란드어와는 별개의 독립적인 언어로 자리 잡게 됩니다.</p><p>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 하나를 짚고 넘어가려 해요. 점차 이곳으로 이주해 정착한 유럽인들, 즉 <strong>아프리카너</strong>(Afrikaner, 남아프리카에 정착한 네덜란드계 백인과 그 후손들을 가리키는 말)들은 유럽 본토로부터 점점 외면당했습니다. 당시엔 지금 같이 비행기도 없었고, 네덜란드 본국은 이미 쇠락한 상태라 제대로 된 지원을 해줄 형편이 아니었어요.</p><p>조상이 유럽인이고 피부색이 백인이지만, 남아프리카 땅에 정착한 이들의 정체성은 아프리카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그러면 “여기 살던 네이티브 아프리카인들을 쫓아낸 거 아니냐?”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 생각보다 아프리카 종족들끼리도 치열하게 싸워 왔습니다. 다양한 그룹들이 이주해 온 역사라서 피부색 하나만으로 ‘주인’을 따지기는 어렵습니다.</p><!--members-only--><h2 id=\"%EB%B3%B8%ED%86%A0%EC%97%90%EA%B2%8C-%EB%B2%84%EB%A6%BC%EB%B0%9B%EA%B3%A0-%EC%98%81%EA%B5%AD%EA%B3%BC-%EB%A7%9E%EC%84%A0-%EC%95%84%ED%94%84%EB%A6%AC%EC%B9%B4%EB%84%88%EB%93%A4\"><strong>본토에게 버림받고 영국과 맞선 아프리카너들</strong></h2><p>그런데 영국이 아프리카에 본격적으로 눈독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1886년 트란스발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금광이 발견되면서 경제적 욕심이 폭발했어요. 영국 정부와 세실 로즈, 알프레드 밀너 같은 제국주의자들은 “아웃랜더”(주로 영국 출신 이민자들)에게 투표권을 요구하며 압박을 넣었고, 결국 남아프리카 전체를 영국 통치 아래 하나로 묶으려는 야망으로 움직였습니다. 보어 공화국들(아프리카너들이 세운 두 개의 독립 국가, 즉 트란스발 공화국과 오렌지 자유국)이 독립을 유지하는 게 영국 제국의 확장에 큰 걸림돌이 됐던 거죠.</p><p>보어(Boer)는 네덜란드어로 ‘농부’를 뜻하는데, 남아프리카에 정착한 네덜란드계 아프리카너들을 부르는 말입니다<em>(참고로 아프리칸스어 발음으로는 '부르'입니다)</em>. 이들이 19세기 중반에 영국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 북쪽으로 이동(Great Trek)하면서 세운 독립 국가들이죠.</p><p>그래서 가족을 꾸리고 살던 아프리카너들은 본토의 지원 없이 본격적인 공격을 받게 됩니다. 많이 단순화해서 말하면, 이게 처칠이 처음 이름을 날렸던 <strong>보어 전쟁</strong>(제2차 앵글로-보어 전쟁, 1899~1902)입니다. 처칠은 당시 전쟁 특파원으로 갔다가 보어군에게 포로가 됐다가 극적으로 탈출하면서 영국 국민 영웅이 됐어요.&nbsp;</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M4LCJwdXIiOiJibG9iX2lkIn19--86bc24a7ccf85e03b6b3d6e21c0f76e631fb121a/2753147.jpg\" alt=\"\" loading=\"lazy\" width=\"335\" height=\"499\"><figcaption>처칠의 꽃미남 시절</figcaption></figure><p>참고로 저는 처칠이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인데, 남아공 사람들은 (당연히) 처칠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 역사는 관점에 따라 다르니까요.</p><p>게다가 영국 측에서는 보어 민간인(특히 여성과 아이들)을 ‘강제 수용소’에 몰아넣는 잔혹한 정책을 썼는데, 질병과 기아로 약 2만 8천 명의 보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흑인 수용소까지 합치면 총 사망자는 4만 명을 훌쩍 넘어요. 사실 ‘concentration camp’이라는 용어가 여기서 처음 쓰이기 시작했죠.)</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M5LCJwdXIiOiJibG9iX2lkIn19--a6521194faad37ee0395cd588a0329cc0a754bda/Concentration-camp---Boer-007.png\" alt=\"\" loading=\"lazy\" width=\"460\" height=\"276\"><figcaption>보어 전쟁 시 강제 수용소. 출처: https://www.theguardian.com/theguardian/from-the-archive-blog/2011/may/19/guardian190-south-africa-concentration-camps</figcaption></figure><p>어쨌든 유럽 출신 남아공인들은 아프리카너로서 결집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고, 아프리칸스어는 어느 순간부터 단순한 구어(口語)를 넘어 정체성을 위한 도구로 재정의됐습니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QwLCJwdXIiOiJibG9iX2lkIn19--438042574e71a04f18139767930ca6c80d6a7b7b/ive-searched-everywhere-for-this-fit-on-the-interweb-where-v0-viq7xgg3i5281.webp\" alt=\"\" loading=\"lazy\" width=\"606\" height=\"750\"><figcaption>짧은 바지는 아프리카너 \"부르(Boer)\" 남성들의 트레이트 마크입니다.</figcaption></figure><h2 id=\"%EC%96%B8%EC%96%B4-%ED%91%9C%EC%A4%80%ED%99%94%EC%9D%98-%EA%B8%B0%EC%A0%81\"><strong>언어 표준화의 기적</strong></h2><p>이들은 문법을 체계화하고, 사전을 만들고, 성경을 번역하고, 교육과 행정에까지 적극 도입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과학·의학 등을 전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언어로 자리 잡기도 했죠.</p><p>이게 자연스러운 언어 발전이라기보다, <strong>의도적인 표준화와 확산의 과정</strong>이었다는 점이 충격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보급한 것도 위대한 업적인데, 아프리카너들은 왕이나 정부의 지시 없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언어를 끌어올린 거거든요.</p><p>1875년에 ‘진짜 아프리카너 협회’가 결성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어요. 당시만 해도 아프리칸스어는 <strong>“부엌 네덜란드어”(Kombuistaal)</strong> 취급받던, 일상 구어(특히 부엌에서 쓰이는 ‘낮은’ 네덜란드어)였는데, 영국 식민 통치 아래서 영어화(anglicization)를 막고 아프리카너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문법책·사전·신문·문학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거죠.</p><p>그로부터 불과 <strong>50년 만</strong>인 1925년에 아프리칸스어가 공식 언어로 인정받았습니다. (네덜란드어를 완전히 밀어내고요.) 생각해 보세요. 17세기 네덜란드어에서 출발해 200년 가까이 <strong>자연스럽게</strong> 변형되던 언어를,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strong>단 50~100년이라는 눈 깜짝할 기간</strong>에 한 소수 민족이 체계적으로 ‘국가 언어’ 수준으로 끌어올린 거예요.</p><p>문법책을 만들고, 사전을 쓰고, 신문을 발행하고, 성경을 번역하고, 급기야 과학·의학 용어까지 새로 만들어 내는 일은 보통 <strong>수백 년</strong>이 훨씬 넘게 걸리는 엄청난 작업입니다. 그런데 인구 몇십만 명밖에 안 되는 아프리카너들이 영국 식민 통치 아래서, 그것도 의도적으로 계획하고 밀어붙여서 이걸 해냈다는 게 정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하죠.</p><p>이게 바로 아프리칸스어가 단순한 ‘소수 언어’가 아니라, <strong>정체성을 무기로 삼은 생존 전략</strong>이었던 이유입니다. 실제로 이들은 아프리칸스어를 일상어로 그치지 않고 과학과 의학 용어까지 체계적으로 만들어 냈어요. 1940년대에는 프리토리아 대학(1942년)에 이어 스텔렌보스 대학(1956년)에 아프리칸스어로 의학을 가르치는 학부가 설립되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영어·프랑스어 같은 식민지 언어가 아닌, <strong>자체 언어로 제대로 된 의학 교육</strong>을 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사례죠.</p><h2 id=\"%ED%99%9C%EB%B0%9C%ED%95%9C-%EB%AC%B8%ED%99%94-%EC%83%9D%ED%83%9C%EA%B3%84\"><strong>활발한 문화 생태계</strong></h2><p>이런 미친 속도와 의지로 문학·음악뿐 아니라 학술 분야까지 기반을 다진 거예요. 언어 하나를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만들다시피’ 끌어올린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뭅니다. 그런 애국심을 떠올리면 한국인으로서 가슴이 좀 뜨거워집니다.</p><p>약 600~700만 명 정도의 화자 수(최근 기준)에도 불구하고, 문학·음악·방송 등 자체적인 문화 생태계가 잘 형성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제가 남아공 시리즈를 꽤 봤는데, 인생 작품으로 꼽히는 것이《Koek》입니​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QxLCJwdXIiOiJibG9iX2lkIn19--76f0374666091229e0d84287b764d25a4c27d8a4/MV5BMmE5Y2JjZmMtNDcwNS00MTAwLWIyMmEtY2RhNzY4YWViOTc1XkEyXkFqcGc@._V1_FMjpg_UX1000_.jpg\" alt=\"\" loading=\"lazy\" width=\"1000\" height=\"893\"><figcaption>아프리칸스어로 된 제 인생 최고의 범죄물. 아직 시즌2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출처: https://www.imdb.com/title/tt31512108/</figcaption></figure><p>왠지 모르게 폐쇄적이어서 저도 VPN으로만 볼 수 있는데요, 높은 퀄리티에 비해 딱히 글로벌화할 의지가 강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소비자층이 그만큼 작을 텐데 연예계가 돌아가는 게 신기했고, 애국심이 상당히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p><p>언어를 중심으로 정체성을 결집시키는 방식이 한국과 꽤 닮아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한국 역시 한글을 중심으로 문화적 자의식을 강화해 왔고, 상대적으로 작은 인구 규모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인 문화 산업을 구축했으니까요.</p><p>참고로 최근에는 전세계에서 리메이크된《The Office》시리즈의 아프리칸스 버전《Die Kantoor》이 나왔는데요. 저는 10년 넘은 스티브 캐럴의 팬이지만, 미국 오피스보다 재밌습니다. 남아공 사람들이 참 재밌어요.</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QyLCJwdXIiOiJibG9iX2lkIn19--c76525cf66980c51f7905d1314c010018a85d42f/MV5BYjZhNzQ1MGQtMDM2Zi00MGY2LWI2MTQtMTkxYjM3OTcyNzllXkEyXkFqcGc@._V1_QL75_UX385_.jpg\" alt=\"\" loading=\"lazy\" width=\"385\" height=\"219\"><figcaption>출처: https://www.imdb.com/title/tt39019283/</figcaption></figure><h2 id=\"%EC%A7%91%EB%85%90%EA%B3%BC-%EC%95%A0%EA%B5%AD%EC%8B%AC%EC%9D%B4-%EB%8A%90%EA%BB%B4%EC%A7%80%EB%8A%94-%EC%A0%95%EC%9D%B4-%EA%B0%80%EB%8A%94-%EC%96%B8%EC%96%B4\"><strong>집념과 애국심이 느껴지는, 정이 가는 언어</strong></h2><p>물론 현재 아프리칸스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화자 수는 여전히 약 650~700만 명 정도지만, 백인보다 유색인종(특히 Coloured 커뮤니티)이 더 많아요.</p><p>아프리카너들의 강한 애국심 덕분에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아파르트헤이트 당시 집권층의 언어로 강하게 각인된 탓에 지금은 정책적으로도 환영받기 어려운 처지입니다.</p><p>남아공 사람들을 만나보면 대화가 정말 흥미로워요.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백인 남성들은 스스로 사회적 지위가 가장 낮아졌다고 자조하며 거의 단념한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고, 흑인들은 이에 동정심을 보이면서도 집권층 특유의 무심한 거리감이 느껴지곤 합니다. ‘흑인=항상 탄압받는 소수’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박힌 우리로서는 잘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지만, 생각보다 꽤 흔한 광경이에요.</p><p>이런 복잡한 현실을 알면서도, 제가 일주일에 3~4번씩 콘텐츠를 보며 연습하고 문화를 배우고 있는 언어가 바로 아프리칸스어입니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집념과 애국심, 강한 집단 의식이 한국인으로서 참 정이 가는 이유인 것 같아요.</p>","date_published":"2026-04-13T00:00:35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id":"https://jiwonkwak.co/project-hailmary","url":"https://jiwonkwak.co/project-hailmary","title":"언어라는 오만: 외계인을 인간처럼 이해하려는 착각 - <프로젝트 헤일 메리>를 통해","content_html":"<aside data-callout=\"grey\">“AI 시대의 언어와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br><br>이곳에서는 다국어 번역가이자, AI 반도체 분야 테크라이터, 그리고 언어 덕후로서 제가 생각해온 것들을 다룹니다.</aside><p>최근 영화 &lt;프로젝트 헤일 메리&gt;를 보고 왔습니다. 저는 영화관에 잘 가지 않는 편인데, 올해는 너무 집에만 있지 않는 것이 목표라 오랜만에 극장에 갔습니다. 한때는 공상과학물을 보며 세계관의 일관성과 디테일을 집요하게 따지는 재미를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런 감정 소모가 피곤해져서 이제는 해피 엔딩이면 그것만으로도 꽤 만족스럽습니다.</p><p>그런데 이런 저에게도, 언어 덕후로서 며칠 동안 계속 생각나는 부분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영화에서 묘사된 그레이스와 로키의 소통입니다. 두 인물이 각 종족을 대표할 만한 천재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우주라는 배경상 많은 과정이 생략되었다고 하더라도, 둘이 언어적으로 소통하게 되는 과정이 은근하게 거슬렸습니다.</p><p>물론 감동적인 서사입니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외계 지성체도 인간처럼 단어 단위로 생각하고 말할 것’이라는 강한 인류중심적 가정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언어’의 정의가 사실은 얼마나 좁은 틀인지, 다양한 사례와 언어학적 이론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MzLCJwdXIiOiJibG9iX2lkIn19--90c76bd0c8b8fbc3eb2065d19eea7addf7874e02/data-src-image-31ed056e-c541-4ce4-ad00-621c9de5c172.png\" alt=\"\" loading=\"lazy\" width=\"732\" height=\"502\"><figcaption>로키</figcaption></figure><h2 id=\"1-%EB%8B%A8%EC%96%B4%EB%9D%BC%EB%8A%94-%EA%B2%BD%EA%B3%84%EB%8A%94-%EC%9D%B8%EA%B0%84%EC%9D%98-%EB%B0%9C%EB%AA%85%ED%92%88%EC%9D%B4%EB%8B%A4-%EB%8F%8C%EA%B3%A0%EB%9E%98%EC%9D%98-%EC%82%AC%EB%A1%80\"><strong>1. 단어라는 경계는 인간의 발명품이다: 돌고래의 사례</strong></h2><p>인간은 언어를 '단어의 나열'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지능이 높은 생물 중 하나인 돌고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통합니다.</p><p>돌고래는 초음파를 쏘아 돌아오는 반사파로 물체를 인식하는 '에코로케이션(Echolocation)'을 사용합니다. 연구를 보면 돌고래는 에코로케이션을 통해 물체의 형태와 특징을 상당히 통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신호 체계 역시 인간의 ‘단어’와는 꽤 다른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을 가능성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p><p>만약 돌고래가 \"상어다!\"라고 신호를 보낸다면, 그것은 인간 기준의 단어 '상어'가 아니라 상어의 크기, 속도, 위협 수준을 포함한 하나의 입체적인 데이터 덩어리를 전송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p><p>로키의 음성이 인간의 귀에 '음절'처럼 들린다고 해서 그것이 단어로 쪼개질 것이라 믿는 것은, 마치 음악의 화음을 한 음 한 음 잘라내어 문장으로 해석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생물이 인간처럼 정보를 분절하여 소통한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우주에 투사한 결과입니다.</p><h2 id=\"2-%EB%B9%84%EC%84%A0%ED%98%95%EC%A0%81-%EC%82%AC%EA%B3%A0%EC%9D%98-%EA%B7%B9%EB%8B%A8-%EC%98%81%ED%99%94-%EC%BB%A8%ED%83%9D%ED%8A%B8%EC%9D%98-%ED%97%B5%ED%83%80%ED%8F%AC%EB%93%9C\"><strong>2. 비선형적 사고의 극단: 영화 &lt;컨택트&gt;의 헵타포드</strong></h2><p>오히려 제가 보기에는, 외계 언어를 상상할 때 헵타포드(Heptapod) 쪽이 더 설득력 있습니다. 언어는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라,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입니다. 인간의 언어는 '시간'의 흐름에 종속적입니다. 한 단어를 말해야 다음 단어를 말할 수 있는 선형적 구조이죠. 하지만 영화 &lt;컨택트(Arrival)&gt;에 등장하는 헵타포드는 이를 완전히 뒤집습니다.&nbsp;</p><p>헵타포드의 문자는 원형의 로고그램(의미 문자)으로 이루어진 비선형적 표의 문자 체계입니다. 시작과 끝이 동시에 존재하는 원형의 형태를 띱니다. 이는 그들이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인지하는 비선형적 사고 체계를 가졌음을 의미합니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M0LCJwdXIiOiJibG9iX2lkIn19--cc4a92aed1a99b76eb8fe4f337a4b3f3f20b357d/data-src-image-aefa0185-0957-4827-9047-7fb015559d45.png\" alt=\"\" loading=\"lazy\" width=\"946\" height=\"1200\"><figcaption>헵타포드 언어. 출처: Emma Hollen</figcaption></figure><p>만약 로키가 헵타포드처럼 시간을 입체적으로 인지하는 존재였다면, 그레이스의 단어별 대응 방식은 완전히 실패했을 것입니다. 언어는 단순히 정보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그 존재가 우주를 해석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인간과 동일한 언어 체계를 상정하는 것 자체가 약간의 무리수입니다.</p><p>하지만 그러면 로키가 농담도 던지고 애정을 표현하는 감동적인 장면은 구현될 수 없었을 겁니다. 30대인 저에게 이 정도의 옥의 티는 감성적인 요소를 위해 충분히 허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p><h2 id=\"3-%EA%B0%80%EB%B0%94%EA%B0%80%EC%9D%B4gavagai-%EB%AC%B8%EC%A0%9C-%EC%A0%80%EA%B2%83%EC%9D%B4-%EC%A0%95%EB%A7%90-%EA%B7%B8%EA%B2%83%EC%9D%BC%EA%B9%8C\"><strong>3. 가바가이(Gavagai) 문제: \"저것\"이 정말 \"그것\"일까?</strong></h2><p>영화에서 로키가 한 마디 음파를 뱉어낼 때마다 그레이스 박사가 컴퓨터에 입력하고 단어와 매칭시키는 인상적인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공통의 참조점이 비교적 분명한 지구인 언어 간에는 완전히 비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아닙니다.</p><p>하지만 영화 &lt;프로젝트 헤일메리&gt;에서는 상황이 다릅니다. 일단 로키의 종족이 어떤 방식으로 현실을 인지하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서로 공유하는 참조점 역시 존재하지 않습니다. 뭔가 통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더라도, 그것이 동일한 의미를 가리킨다고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p><p>언어학자 윌러드 콰인(Willard V. O. Quine)은 ‘번역의 불확정성’을 설명하며 ‘가바가이’라는 가상의 단어를 제시했습니다. 원주민이 지나가는 토끼를 보고 “가바가이!“라고 외쳤을 때, 외부인은 이를 ‘토끼’라고 번역합니다. 하지만 원주민의 머릿속에서 그 말은 ‘귀가 긴 짐승’, ‘점심 식사’, 혹은 ‘움직이는 흰색 상태’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nbsp;</p><p>콰인의 핵심은, 관찰 가능한 증거만으로는 하나의 번역만이 정답이라고 확정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동일한 대상을 보고 있어도, 그것이 어떤 개념으로 분절되고 지시되는지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진화 과정을 거친 인간과 에리디언 사이에서는, 같은 대상을 보고 있더라도 무엇을 단위로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p><p>예를 들어 그레이스가 ‘물’이라고 가리킨 것이 로키에게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생명 유지용 용매’라는 전혀 다른 개념적 범주로 묶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p><p>이런 점을 고려하면, 둘이 농담까지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 과연 얼마나 현실적인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전개를 위해 그레이스의 컴퓨터 번역 시스템은 차곡차곡 쌓여갑니다.</p><h2 id=\"4-%EC%99%9C-%EC%88%98%ED%95%99%EA%B3%BC-%EB%AC%BC%EB%A6%AC%ED%95%99%EB%A7%8C%EC%9D%B4-%EC%9C%A0%EC%9D%BC%ED%95%9C-%EC%A7%95%EA%B2%80%EB%8B%A4%EB%A6%AC%EC%9D%B8%EA%B0%80\"><strong>4. 왜 수학과 물리학만이 유일한 징검다리인가?</strong></h2><p>광학적 시각이 없는 로키가 인간의 시계를 소리로 '스캔'하자마자 그 용도를 파악하고 자신의 측정 도구를 제시하는 장면은 서사적 쾌감을 줍니다. 하지만 이는 두 종족이 '시간'을 동일한 물리적 눈금으로 분절하고 있다는 거대한 전제가 성립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아울러 두 인물이 각 종족을 대표하는 비상한 천재라는 사실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너그러이 허용할 수 있습니다.</p><p>이처럼 자의적인 '언어'와 달리, 시계의 작동 원리나 진동수 같은 물리적 수치는 종족의 특수성을 넘어선 공통의 규격입니다. 언어학적으로 소통이 불가능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SF에서 항상 수학과 물리를 첫 번째 악수로 선택하는 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를 '객관적 참조점’이라고 합니다.</p><p>“사과”라는 단어는 인간의 약속이지만, 원주율 π나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 선처럼 문화와 무관하게 기술 가능한 값들은 훨씬 안정적인 참조점입니다. 우리가 '빨강'을 어떻게 느끼는지는 서로 다를 수 있지만, 빛의 특정 파장(lambda)이 가지는 물리적 값은 변하지 않습니다.</p><p>지성체가 도구를 만들고 행성 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면, 에너지 보존이나 열역학적 제약과 같은 물리적 규칙성에는 어떤 형태로든 도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수학과 물리는 적어도 인간의 언어보다 훨씬 덜 임의적인, 비교적 안정적인 참조점입니다.</p><h2 id=\"%EA%B2%B0%EB%A1%A0-%ED%95%B4%EC%84%9D%EC%9E%90%EA%B0%80-%EB%94%94%EC%9E%90%EC%9D%B8%ED%95%9C-%EC%9D%98%EB%AF%B8%EC%9D%98-%EC%84%B8%EA%B3%84\"><strong>결론: 해석자가 디자인한 의미의 세계</strong></h2><p>엄밀히 말하자면, &lt;프로젝트 헤일 메리&gt;에서 우리가 본 것은 외계 언어의 완벽한 해독이 아니라, 인간의 해석 시스템이 외계의 신호를 인간의 규격에 맞게 재구성한 결과물에 가깝습니다.</p><p>하지만 아주 공교롭게도 에리디언 종족 역시 인간과 상당한 정도로 호환 가능한 인지적 특징을 가진 존재로 설정되어 있었고, 그 덕분에 둘 사이의 눈물 나는 우정이 펼쳐질 수 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이 이야기는 과학적 엄밀함을 일부 포기하는 대신, 서로 다른 두 지성이 필사적으로 서로의 궤도에 진입하려 했다는 서사적 숭고함을 얻습니다. </p><p>저는 그래서 좋았습니다.</p><p></p>","date_published":"2026-04-04T05:35:33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id":"https://jiwonkwak.co/why-your-english-sucks","url":"https://jiwonkwak.co/why-your-english-sucks","title":"당신의 외국어가 제자리걸음인 이유","content_html":"<p>운동장에 몸만 던져놓는다고 근육이 생기지 않듯, 책상 앞에 앉아만 있다고 언어가 늘지는 않는다.</p><p>스쿼트를 할 때도 힙 힌지(Hip hinge)를 제대로 잡지 않고, 타겟 근육에 자극을 느끼지도 않으면서 그저 '숫자 채우기'식으로 몸만 움직이다 오면 몇 달을 해도 근육은 늘지 않는다. 무릎만 상할 뿐이다.</p><p>영어 공부, 혹은 외국어 공부도 이와 정확히 일치한다. 공부하는 '기분'만 내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세 가지를 짚어보고자 한다.</p><h3 id=\"1-%EA%B3%B5%EB%B6%80%ED%95%98%EB%8A%94-%EA%B8%B0%EB%B6%84%EC%9D%B4%EB%9D%BC%EB%8A%94-%ED%95%A8%EC%A0%95\">1. 공부하는 '기분'이라는 함정</h3><p>일주일에 몇 번 영어 스터디에 나가거나 학원에 등록하는 것은 훌륭한 '시작점'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그것이 단지 시작점일 뿐이라는 사실이다.</p><p>몸만 덜렁 와서는 절대 실력이 늘지 않는다. 지적 성장을 위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p><ul><li><strong>모르는 지점을 정확히 파악하기</strong></li><li><strong>새로 알게 된 것을 기록하기</strong></li><li><strong>집요하게 복습하기</strong></li></ul><p>이 과정이 빠진 공부는 아무 소용이 없다. </p><p>최근 유행하는 듀오링고 같은 앱의 맹점도 여기 있다. 게임화(Gamification) 전략은 훌륭하지만, 어느 순간 '연속 학습 일수'를 지키기 위해 뇌를 뺀 채 손가락만 움직이는 행위가 되어버린다. 남는 것 없이 매너리즘에 빠지는 전형적인 코스다.</p><h3 id=\"2-%EC%A7%91%EC%9A%94%ED%95%9C-%ED%98%B8%EA%B8%B0%EC%8B%AC%EC%9D%98-%EB%B6%80%EC%9E%AC\">2. '집요한 호기심'의 부재</h3><p>나는 외국어로 된 콘텐츠를 볼 때 병적으로 메모한다. 최근 즐겨보는 남아공 시리즈 Die Kantoor(The Office의 남아공 버전)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p><p><em>참고로 나는 스티브 카렐의 열혈 팬이지만, 단언컨대 남아공 버전이 10배는 더 재밌다.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하는 소수 언어권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고퀄리티의 드라마를 만들어내는지 경이로울 따름이다.</em></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MxLCJwdXIiOiJibG9iX2lkIn19--02963d79308a8abb7c9838d963319cab2d78f94e/image.png\" alt=\"\" loading=\"lazy\" width=\"2000\" height=\"1136\"></figure><p>당장 블로그에 이 글을 쓰면서 기억나는 표현들은 아래와 같다.</p><ul><li><strong>Kruip jy weg?</strong> (Are you hiding? 너 숨어 있니?)</li><li><strong>Bel my rêrig!</strong> (Call me really! 진짜 전화해!)</li><li><strong>Kom haal my!</strong> (Come fetch me! 날 데려가세요!)</li></ul><p>현재는 일주일에 에피소드가 하나씩 나오는데, 조만간 주말을 비워 'Kantoor 마라톤'을 할 예정이다. </p><p>어쨌든 나는 모르는 단어나 좋은 표현을 보면 메모해 놓고, 기억하기 위해 계속 찾아보고, 입에 붙을 때까지 혼잣말을 반복한다. 뉴욕 타임즈를 읽든, 프랑스어나 독일어 영상을 보든 주옥같은 표현은 수십 개씩 쏟아진다. 한창 공부할 때는 그 표현들을 받아 적고 복습하는 데 하루의 대부분을 썼다.</p><p><strong>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모르는 표현이 나와도 궁금해하지 않는다.</strong> 그냥 넘어가거나, 모르는 것을 인정하기 부끄러워서 덮어버린다. </p><p>공부할 동기에 불을 지피는 연료는 호기심이어야 한다. 호기심이 없으면 집요함도 생기지 않는다.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일찌감치 극복하는 것이 좋다.</p><h3 id=\"3-%EA%B8%B0%EB%B3%B8%EC%9D%84-%EB%AC%B4%EC%8B%9C%ED%95%98%EB%8A%94-%ED%83%9C%EB%8F%84\">3. '기본'을 무시하는 태도</h3><p>주어와 동사 수 일치도 맞지 않는 엉망진창인 문장 구조에, 어디서 본 고급 어휘를 섞어 쓰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건 상대방에게 인지 부조화를 일으켜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할 뿐이다.</p><p>사람들은 쉬운 문법을 우습게 본다. '내가 다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독해는 누구나 하겠지만, 직접 말을 뱉을 때 문장이 망가지는 이유는 그 문법이 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p><ul><li><em>기본 동사 100개 정도를 인칭대명사 별로 올바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em> </li><li><em>기본 전치사와 형용사의 정확한 쓰임새와 발음을 숙지했는가? </em></li><li><em>기본 문법 오류를 스스로 찾고 검열할 수 있는가?</em></li></ul><p>이 단계를 넘어서야 어려운 단계로 갈 자격이 생긴다.</p><p>영어는 동사 변화가 양반이다. 다른 언어에서 동사는 고통의 근원이며 정체성 혼란을 유발하기도 한다. 겨우 영어의 동사 변화 정도에서 귀찮음을 느낀다면, 다른 언어는 꿈도 꾸지 않는 게 좋다.</p><hr><h2 id=\"%EB%A7%88%EC%B9%98%EB%A9%B0\">마치며</h2><p>스쿼트의 핵심이 근육의 자극을 느끼는 것이듯, 공부의 핵심은 뇌의 자극을 느끼는 것이다. 오늘 당신의 공부는 '뇌를 뺀 행위'였는가, 아니면 '집요한 추적'이었는가?</p><p>만약 후자가 아니라면, 지금 당장 듀오링고를 끄고 기본 동사 변화표부터 다시 펼치길 권한다.</p>","date_published":"2026-03-15T02:18:06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id":"https://jiwonkwak.co/south-africa","url":"https://jiwonkwak.co/south-africa","title":"남아공 때문에 심난한 이야기","content_html":"<p>나는 남아공을 좋아한다. 아프리카너(Afrikaner) 특유의 투박한 억양과, 불과 백 년 만에 아프리칸스어를 학문적 수준으로 격상시킨 그 광기 어린 의지력에 경외감을 느낀다. 육식에 진심인 성향과 은근히 보수적인 면모도 내 취향에 닿아 있다. </p><p>한편으론 지독한 현실 속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흑인 여성들의 지적 잠재력과 회복탄력성에서 이 나라의 희망을 엿보기도 한다. 먹방을 보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남아공 흑인 여성의 먹방이다. 그녀의 성공이 다른 여학생들에게 희망이 되면 좋겠다. </p><p>하지만 개별 존재의 반짝임과는 별개로, 이 국가의 시스템은 형용할 수 없는 괴사 상태에 놓여 있다. 내가 목격한 남아공은 인적 자원의 풍요와 구조적 파멸이 공존하는 기묘한 공간이다.</p><h2 id=\"%EA%B0%95%EC%A0%9C%EB%90%9C-%ED%8F%89%EB%93%B1-b-bbee%EC%99%80-%EA%B3%A0%EC%9A%A9-%EC%BF%BC%ED%84%B0%EC%A0%9C%EC%9D%98-%EC%97%AD%EC%84%A4\">강제된 평등: B-BBEE와 고용 쿼터제의 역설</h2><p>남아공에는 B-BBEE(Broad-Based Black Economic Empowerment)라 불리는 흑인 경제 육성법이 존재한다. 단순히 권장하는 수준이 아니다. 기업의 소유권, 경영진 구성, 심지어 공급망까지 흑인 비율에 따라 '점수(Scorecard)'를 매긴다. 점수가 낮으면 정부 사업 입찰은 물론, 민간 기업 간의 거래에서도 후순위로 밀려난다.</p><p>2024년부터 강화된 고용 평등법(EEA)은 숙련직군에서 흑인 비율을 최대 90%까지 요구하며, 위반 시 매출의 10%를 벌금으로 부과한다. 의도는 선했으나 결과는 냉혹하다. <strong><em>숙련된 기술자나 경영진이 인종 쿼터에 밀려 현장을 떠나고, 그 자리를 충분한 훈련을 받지 못한 이들이 채우면서 국가 기간망이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em></strong></p><h3 id=\"%EA%B0%9C%EB%85%B8%EB%8B%B5-%EC%82%AC%EB%A1%80-1-%ED%9E%90%EB%B8%8C%EB%A1%9C%EC%9A%B0\">개노답 사례 1: 힐브로우</h3><p>70-80년대 요하네스버그의 중심이었던 힐브로우(Hillbrow)는 이제 범죄와 오물의 상징이 되었다.</p><p>아파르트하이트가 끝나고 부유한 사람들은 샌튼(Sandton)으로 넘어갔고, 힐브로우는 점점 황폐화되었다. </p><p>갱단이 점거한 고층 빌딩에는 상하수도가 끊겼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변기를 사용한다. 지하실에 수백 명분의 인분이 쌓여가는 풍경을 상상할 수 있는가? </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IzLCJwdXIiOiJibG9iX2lkIn19--333e932b64c44a776161a23ba7890b605aaa0876/image-3.png\" alt=\"\" loading=\"lazy\" width=\"750\" height=\"563\"></figure><p>말티즈 한 마리가 사용하는 배변 패드도 악취가 생기는데, 수백명 사람들에게서 나온 오물이 지하실 전체를 덮고 있는 사실은 말문이 막힌다. </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I0LCJwdXIiOiJibG9iX2lkIn19--30da13185bbe04edb40de5387f3dd5a4f10fcf3b/image-4.png\" alt=\"\" loading=\"lazy\" width=\"1000\" height=\"563\"><figcaption>힐브로우 전과 후</figcaption></figure><p>화려했던 근대 건축의 껍데기 속에서 도시의 기능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p><h3 id=\"%EA%B0%9C%EB%85%B8%EB%8B%B5-%EC%82%AC%EB%A1%80-2-%EC%A0%84%EA%B8%B0-%EA%B5%AD%EC%98%81%ED%99%94\">개노답 사례 2: 전기 국영화</h3><p>남아공에 있다보면 종종 전기가 끊기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Load Shedding이다. 그래서 태양열 발전기가 있는 집이 많다.</p><p>이 전력난은 단순한 에너지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 효율적이었던 전력사 에스콤(Eskom)이 국영화 이후 부실 경영, 부정부패의 온상이되어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게 된 결과이다.</p><p>이를 개혁하려던 전 CEO 안드레 드 루이터(André de Ruyter)는 커피에 청산가리 투척을 당해 결국 사임하고 잠깐 나라를 떠나야 했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I1LCJwdXIiOiJibG9iX2lkIn19--e339d88f7aeba4bd08302845560e5556f95354cc/Screenshot-2026-02-19-at-8.00.31---PM.png\" alt=\"\" loading=\"lazy\" width=\"872\" height=\"904\"></figure><p>정의를 바로잡으려는 지식인은 목숨을 걸고 개인 경호원에 의지하거나 망명을 택해야 하는 것이 남아공의 문법이다. </p><p>실제 현지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p><blockquote><strong>\"Snitches get stitches, and end up in ditches.\"</strong> (밀고자는 꿰맬 상처를 입고, 결국 도랑에 처박힌다.)</blockquote><h3 id=\"%EA%B0%9C%EB%85%B8%EB%8B%B5-%EC%82%AC%EB%A1%80-3-%ED%83%9D%EC%8B%9C-%EC%A1%B0%ED%8F%AD\">개노답 사례 3: 택시 조폭</h3><p>남아공의 택시 산업은 태생부터 비극적이다. 70~80년대 아파르트하이트 시절, 인종차별 정권은 흑인들을 일터에서 먼 변두리로 몰아넣고도 어떠한 이동 수단도 제공하지 않았다. 국가가 외면한 이 거대한 공백을 메운 것이 바로 민간 미니버스 택시였다.</p><p>초기엔 불법이었으나 생존을 위해 자생했던 이 산업은 1987년 규제 완화와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버스와 기차를 불태우고, 전문 킬러(Izinkabi)를 고용해 정적을 제거한다. 택시에서 총을 쏘고 유유히 사라지는 청부 살인 장면은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I2LCJwdXIiOiJibG9iX2lkIn19--1e866388b817ca586afbad7343f1697d737eb819/image-5.png\" alt=\"\" loading=\"lazy\" width=\"465\" height=\"279\"><figcaption>택시 기사들과 우버 기사들 간의 폭력 사태</figcaption></figure><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I3LCJwdXIiOiJibG9iX2lkIn19--7aa66e771423510e8fade3dd81a837815819aa59/image-6.png\" alt=\"\" loading=\"lazy\" width=\"1000\" height=\"725\"></figure><p>과거 흑인 인권을 위한 유일한 발이었던 조직이, 이제는 대낮에 정적을 제거하고 국가 인프라를 불태우는 '그림자 국가'가 된 것이다.</p><h3 id=\"%EA%B0%9C%EB%85%B8%EB%8B%B5-4-%EA%B2%BD%ED%98%B8-%EC%97%85%EC%B2%B4%EB%8F%84-%EC%97%B0%EB%A3%A8%EB%90%9C-%EB%86%8D%EC%9E%A5-%EC%84%9C%EB%A6%AC\">개노답 4: 경호 업체도 연루된 농장 서리</h3><p>남아공 길거리에서 타조알 만한 아보카도 5개를 3천 원에 샀을 때, 나는 그것이 아프리카 대지의 축복인 줄로만 알았다. 순진한 오판이었다. </p><p>수확까지 8년이 걸리는 아보카도 나무를 뿌리째 뽑아가거나, 농장 보안 업체와 결탁해 조직적으로 훔친 장물이었다. 무지한 소비자가 누린 저렴한 가격의 배후에는 생산자의 절망이 깔려 있었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I4LCJwdXIiOiJibG9iX2lkIn19--c2f5d88e8a09563cccfd6c57858e408e1898b564/Screenshot-2026-03-02-at-2.28.48---PM.png\" alt=\"\" loading=\"lazy\" width=\"1700\" height=\"352\"></figure><p></p><p>물어보는 사람마다 '축복받은 남아공의 아보카도' 얘기를 하고 다녔는데, 알고보니 마트에서 사면 한국과 크게 다른 가격은 아니다.</p><h2 id=\"%EA%B2%B0%EB%A1%A0\">결론</h2><p>개개인을 보면 여전히 이 나라의 미래를 믿고 싶어진다. 어떻게 해야 이 비극이 멈출 수 있을지 혼자 머리를 싸매며 고민에 잠기기도 한다. 오프라 윈프리처럼 사재를 털어 학교를 지으면 해결될까? 하지만 문제는 파편화된 시설이 아니라 붕괴된 공교육 시스템 그 자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백을 메운 사교육 시장은 기형적일 만큼 비대해졌다.)</p><p>개인이 시스템 차원의 개혁을 시도하기엔 대가가 너무나 가혹하다. 부패를 척결하려 하면 지나가던 택시에서 날아오는 총탄에 맞거나, 아침 커피에 든 청산가리를 마주해야 할 것이다. 정의감은 목숨과 맞바꿔야 한다.</p><p>위와 같은 사례를 접할 때마다 짙은 무력감이 든다. 개노답 사례는 언급한 것 외에도 더 많다. </p><p>시스템이 머리부터 부패한 이 곳에서, 축복 받은 자연과 자원이 구조적 어둠에 먹혀버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몹시 괴롭다.</p>","date_published":"2026-02-19T11:42:29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id":"https://jiwonkwak.co/discipline","url":"https://jiwonkwak.co/discipline","title":"자제력","content_html":"<p>최근 나는 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는 외적인 성취뿐 아니라, 스스로를 통제하는 능력인 ‘자제력(Discipline)’을 포함한다. 특히 기술이 즉각적인 보상을 설계하고 제공하는 시대일수록, 본능을 거스르고 보상을 지연시키는 능력은 점점 희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p><hr><p>비만은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중대한 사회적 문제였다. 풍족의 시대 속에서 우리의 미각은 설탕과 지방에 길들여졌다. 하지만 위고비(Wegovy) 같은 GLP-1 수용체 효능제의 등장으로 체중 관리는 이전보다 훨씬 쉬워지고 있다. ‘자기 수용(Body Positivity)’을 외치던 유명인들이 하나둘 날씬해진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그간의 담론의 진실성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p><p>물론 몸을 조형하는 일에는 여전히 고통이 따른다. 삼두근의 데피니션을 살리거나 유전적 한계를 넘어 중둔근을 키우는 과정은 고되다.</p><p>하지만 기술은 이 지점마저 파고들고 있다. 미주와 남미에서 성행하는 브라질리언 엉덩이 리프트(BBL) 란 게 있다. 한국에서는 미감과 맞지 않아 비교적 드물지만, 신체의 굴곡을 극대화시켜주는 수술이다. </p><p>저속노화에 수백만 달러를 쓰는 브라이언 존슨은 $5,700 수준의 EMS 장치로 30분 만에 복근 운동 20,000회의 효과를 낸다고 한다. (물론 그도 매우 엄격한 운동을 한다.) </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I5LCJwdXIiOiJibG9iX2lkIn19--9780245e83e7aaf6efc392aa080c9e28b4b0ada1/Screenshot-2026-02-18-at-11.28.41---AM.png\" alt=\"\" loading=\"lazy\" width=\"748\" height=\"498\"></figure><blockquote>이제 날씬해지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앞으로도 점점 쉬워질 것이다. </blockquote><p>식욕 억제제, 근육 형성 기기, 신체 재구성 수술. 이제 '노력'이라는 지루한 과정을 건너뛰고 결과에 도달하는 것이 점점 쉬워지고 있다.</p><p>인간은 운동을 안 하고 안 좋은 식습관을 유지하면 몸이 망가지고, 살이 찐다. 과거에는 이를 거스르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본능과 싸워야 했다. 그런데 이제 그 '인내'의 영역이 점차 자본과 기술로 대체되고 있다.</p><p><strong>그런데 기술이 노력의 과정을 자동화한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strong></p><p>위고비를 통해 식욕이 사라진 상태에서 나는 굶을 것인가, 술을 마실 것인가, 고단백 영양 밀도가 높은 식단을 선택할 것인가?</p><p>누가 시키지 않아도, 몸이 아프지 않아도, 당장 불편하지 않아도, 나는 스스로 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p><p>기술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지만, 그 자유가 방종과 구분되지 않으면 삶은 금방 붕괴한다. 신체 대사를 약물에 맡기고 근육 형성을 기기에 의존하더라도, 매일 정해진 일과를 수행하고 식단을 결정하는 주체성은 결국 개인의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p><hr><p>인간의 동물적 본능은 여전히 저항이 적은 편안한 길을 찾는다. 몸은 부드러운 이불 속에서 게으르길 원하며, 입은 달고 기름진 것을 찾으며, 우리의 정신은 즉각적인 보상 반응을 좇는다. 기술이 우리를 본능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빈자리를 채울 '의식적인 선택'의 무게를 더 무겁게 만들 뿐이다.</p><p>현시대에 자제력이 진정한 가치를 드러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외부의 유혹 속에서도 정신적 명징함과 몰입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불편함'을 수용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자제력은 동물적 본능을 이겨내는 인간다움의 핵심 요소이며, 이를 통해 쌓은 가치는 복리로 축적된다.</p><hr><p>머지않아 날씬함 그 자체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규율을 세우고 지켜내는 자제력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 더욱 강력한 지적 신호가 될 것이다.</p>","date_published":"2026-02-18T02:33:18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id":"https://jiwonkwak.co/pseudowork","url":"https://jiwonkwak.co/pseudowork","title":"타인의 신경계를 빌려 쓰는 무례함, ASAP","content_html":"<blockquote>대부분의 ASAP은 상대가 게으르다는 불신을 전제로, 인위적인 위급함을 동원해 결과물을 쥐어짜내는 비합리적인 방식이다.</blockquote><p>“ASAP” 요청을 받으면 내 중추신경은 즉각 과잉 각성 상태에 돌입한다. 나의 뇌는 ‘맥락도 모른 채 내일까지 넘겨야 하는 문서’와 ‘당장 출산을 앞둔, 병원으로 데려가야 하는 강아지’의 위급함을 변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모든 일을 제쳐두고 주말을 반납해서라도 마감을 맞췄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며 기이한 패턴을 발견했다. ‘급하다’던 그 문서가 정작 요청자에 의해 열람된 건 열흘 뒤인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p><p>진짜 위급한 상황에서 함께 속도를 내는 경험은 팀워크를 강화한다. 그런데 ‘일단 급하다고 말해두는’ 무분별한 ASAP 요청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strong>일단 상대가 느릴 것이라는 편견을 전제로, 타인의 에너지를 자기중심적으로 탈취하여 상황을 통제하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strong></p><p>도대체 왜 이런 부조리함이 지식 노동의 현장에서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진 것일까?</p><h2 id=\"1-%ED%8C%8C%ED%82%A8%EC%8A%A8-%EB%B2%95%EC%B9%99-%EC%8B%9C%EA%B0%84%EC%9D%98-%ED%8C%BD%EC%B0%BD%EC%9D%B4-%EB%A7%8C%EB%93%A0-%EA%B3%B5%EA%B2%A9%EC%A0%81-%EB%B0%A9%EC%96%B4-%EA%B8%B0%EC%A0%9C\">1. 파킨슨 법칙: 시간의 팽창이 만든 공격적 방어 기제</h2><p>최근 덴마크 학자들이 쓴 『가짜 노동』을 읽으며 이 실체 없는 귀신을 비로소 언어화할 수 있었다. 산업혁명 이후 화이트칼라 직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바쁨’이 성과와 무관하게 구조적으로 유지되는 현상을 다룬 책이다.</p><p>저자들은 ‘파킨슨 법칙(Parkinson's Law)’을 인용한다. 업무는 그것을 위해 주어진 시간만큼 팽창한다는 법칙이다. 같은 일이라도 3일이 주어지면 3일을 쓰고, 10시간이 주어지면 10시간을 쓴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MwLCJwdXIiOiJibG9iX2lkIn19--7fab3fa0479c9fc616d0962d29d367704a5c7fb5/image-2.png\" alt=\"\" loading=\"lazy\" width=\"1234\" height=\"720\"></figure><p>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일을 늘어뜨려 ‘바빠 보이는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그리고 ASAP은<strong> 바로 이 ‘팽창하는 시간’에 대한 공격적인 방어 기제</strong>였던 것이다. 상대가 시간을 허비할 것이라는 가정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데이터로 쌓여온 결과다.<strong> </strong>결국 ASAP은 개개인의 조급함 때문이라기보다, 이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내놓은 기형적인 부산물인 셈이다.</p><p>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바쁨'에 집착하게 된 것일까?</p><!--members-only--><h2 id=\"2-%ED%85%85-%EB%B9%88-%EC%9C%A0%EB%8A%A5%ED%95%A8-%EB%B0%94%EC%81%A8%EC%9D%B4%EB%9D%BC%EB%8A%94-%EC%9D%B4%EB%A6%84%EC%9D%98-%EC%95%8C%EB%A6%AC%EB%B0%94%EC%9D%B4\"><strong>2. 텅 빈 유능함: 바쁨이라는 이름의 알리바이</strong></h2><p>이 책은 ‘바쁨’이 성과와 무관하게 구조적으로 유지되는 현상을 ‘텅 빈 유능함(Empty Competence)’이라 명명한다. 우리가 ASAP을 던지고 받는 행위는 종종 실제 업무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나는 이만큼 긴박한 시스템의 중심에 있는 유능한 인재다\"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strong>실존적 알리바이</strong>가 아닐까?</p><p>결국 ASAP이라는 요청은 타인의 신경계를 빌려 쓰는 무례함인 동시에, 조직 내에 ‘가짜 바쁨’을 전염시키는 촉매가 된다. 누군가 무리하게 ASAP을 던지면, 받은 사람은 이를 처리하기 위해 다른 유의미한 업무를 뒤로 미루거나, 정작 결과물이 방치되는 것을 보며 ‘의미 없는 속도전’에 냉소하게 된다. 실질적 의미 없이 '바쁨'의 외형만 제공하는, 소모적인 ‘가짜 노동’의 굴레다.</p><h2 id=\"3-%EA%B0%80%EC%A7%9C-%EB%85%B8%EB%8F%99%EC%9D%98-%EB%B2%88%EC%95%84%EC%9B%83-%E2%80%98%EC%97%B0%EA%B8%B0%E2%80%99%EA%B0%80-%EC%86%8C%EB%AA%A8%ED%95%98%EB%8A%94-%EC%97%90%EB%84%88%EC%A7%80\"><strong>3. 가짜 노동의 번아웃: ‘연기’가 소모하는 에너지</strong></h2><p>꼭 마감 직전에 과제를 제출하는 친구들. 낮에 할 일을 굳이 밤에 하는 사람들. 1시간이면 끝날 일을 4시간 걸렸다고 말하던 사람들. 어떤 모양의 글머리 기호를 사용할지 미팅을 10분 넘게 이어지는 광경. 이 파편화된 기억들이 뇌리를 스쳤다. 그 아득한 어지러움의 정체가 바로 ‘가짜 노동(Pseudo-work)’이었던 셈이다.</p><p>가짜 노동이 우리를 번아웃으로 몰아넣는 이유는 노동의 절대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strong>아무 가치 없는 일을 가치 있는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 쏟아야 하는 '연기'의 에너지가 본질적인 노동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strong> 내가 과거에 느낀 공허함은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싶다는 직업적 본능이 시스템의 무의미함과 충돌하며 발생한 파열음이었다.</p><h2 id=\"4-%EB%B3%B8%EB%8A%A5%EC%A0%81-%EC%A0%80%ED%95%AD-%EC%9D%98%EB%AF%B8%EC%9D%98-%EB%B0%95%ED%83%88%EC%97%90%EC%84%9C-%EC%A1%B4%EC%97%84%EC%9D%84-%ED%9A%8C%EB%B3%B5%ED%95%98%EB%8A%94-%EB%B2%95\"><strong>4. 본능적 저항: 의미의 박탈에서 존엄을 회복하는 법</strong></h2><p>저자들은 가짜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으로 ‘진짜 삶으로의 회귀’를 제안한다. 의미 없는 보고서를 붙들고 앉아 시간을 죽이는 대신, 차라리 일찍 퇴근해 지역 사회에 기여하거나, 진정한 자기 계발에 몰입하라는 것이다. 조직이 요구하는 ‘바쁜 척’이라는 연기를 거부하고, 한 인간으로서의 실질적 효능감을 회복하라고 조언한다.</p><p>나 역시 그랬다. 의미 없이 시간을 늘어뜨리는 행위는 단순한 지루함을 넘어 자괴감을 일으킨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시스템이 요구하는 '바쁨을 위한 바쁨'에 매몰되는 대신, 남는 에너지를 조직과 동료에게 실질적인 가치를 더하는 활동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사내 영어 동호회를 운영하고 코딩 세션을 연 것은 고과 평가나 보상을 바란 일이 아니다.</p><p>이는 저자들이 말하는 ‘공허한 유능함’에 대한 거부이자, 박탈된 ‘기여의 기쁨’을 스스로 복원하려는 주도적인 노력이다. 타성적인 관행에 내 시간을 저당 잡히지 않고, 내가 선택한 가치에 에너지를 쏟는 것. 이러한 정체성 지키기가 나의 직업적 존엄을 지탱해주고 있다.</p><h2 id=\"5-ai-%EC%8B%9C%EB%8C%80%EC%9D%98-%EB%85%B8%EB%8F%99-%EC%8A%A4%EC%8A%A4%EB%A1%9C-%EB%A7%8C%EB%93%A0-%EB%B3%91%EC%97%90%EC%84%9C-%EB%B2%97%EC%96%B4%EB%82%98%EA%B8%B0\"><strong>5. AI 시대의 노동: 스스로 만든 병에서 벗어나기</strong></h2><p>파킨슨 법칙은 인간의 본성일까, 시스템의 결함일까. 기술의 발전은 여가를 약속했지만, 인류는 관료주의적 헛짓거리를 발명해 그 빈칸을 메웠다.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시간을 때우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만든 병’인 번아웃을 얻는다.</p><p>AI가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여도, 우리가 ‘바빠 보여야 산다’는 가짜 노동의 윤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자유는 오지 않는다. 기술은 시간을 벌어주지만, 관료주의는 그 빈칸을 다시 ASAP과 무의미한 보고서로 채울 것이다.</p><p>나의 시간만큼은 가짜 노동이 아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보람 있는 일에 온전히 쓰고 싶다. 한 회사에 소속된 정체성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타인에게 기여할 것인가. 이 고민만이 가짜 노동 사회의 공허함에서 나를 건져줄 유일한 밧줄이라 믿는다.</p>","date_published":"2026-02-16T06:55:21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id":"https://jiwonkwak.co/on-dating","url":"https://jiwonkwak.co/on-dating","title":"남자를 위한 구조적 연애론","content_html":"<p>남성 집단의 우정은 종종 상호 파괴적 결속을 '의리'라 부른다. 장염에 걸린 친구에게 불닭볶음면을 사다 주거나, 비위생적인 습관을 공유하며 서로를 비웃는 행위가 친밀함의 척도가 된다. 이러한 문화권 내에서 개인의 성장을 향한 진지한 피드백은 '진지충'이라는 멸칭 아래 거세된다.</p><p>성인 남성이 자신의 결함을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경로가 차단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부모와의 대화는 단절되어 있고, 친구들은 서로를 방치하거나 하향 평준화한다. 결국 20대 후반을 넘어서는 순간, 이들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외적 경쟁력에 대해 누구에게도 정직한 비평을 듣지 못하는 '<strong>피드백 진공 상태</strong>'에 놓이게 된다. 구조적인 지지 시스템 없이 홀로 남겨진 남성은 '왜 나는 연애를 못 할까'라는 질문 앞에서 좌절과 자존감 하락을 반복할 뿐이다.</p><h3 id=\"%EC%9D%B8%EC%84%BC%ED%8B%B0%EB%B8%8C%EC%99%80-%EC%9E%A5%EA%B8%B0%EC%A0%81-%EC%9E%90%EC%82%B0%EC%9D%98-%ED%98%BC%EB%8F%99\"><strong>인센티브와 장기적 자산의 혼동</strong></h3><p>하루는 평상시 반바지와 슬리퍼를 고수하던 개발자가 긴바지를 입고 출근한 모습을 보고 “소개팅이 있냐고” 장난삼아 물어본 적이 있다. 이때 \"맞다\"고 답하는 것을 보고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nbsp;</p><p>이성애자 남성의 자기 관리는 극도로 효율 중심적이다. 즉각적인 인센티브, 즉 확정된 보상(소개팅, 데이트)이 존재할 때만 자원을 투입한다.&nbsp;</p><p>매력은 이벤트로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적층된 구조의 결과물이다. 소개팅 전날 구입한 셔츠는 옷장에 남겠지만, 6개월간의 운동으로 만들어진 프레임과 피부 상태는 정체성에 귀속된다. 전자는 구매 가능한 소모품이고, 후자는 감가상각이 낮은 자산이다. 대다수 남성은 이 자산 형성에 투입되는 시간을 '비효율'로 간주하며 기꺼이 포기한다.</p><p>물론 예외는 있다. 피부 관리, 눈썹 정리, 체형에 맞는 핏까지 탐구한 남성들. 이는 자기 객관화가 선행되었음을 증명한다. 이들은 잘 보일 상대의 유무와 상관없이 '디폴트 값' 자체를 상위권으로 유지하며, 연애 시장에서 큰 부침을 겪지 않는다. 이들에게 관리는 이벤트가 아니라 시스템이다.</p><h3 id=\"%EC%A1%B0%EA%B1%B4%EC%9D%B4%EB%9D%BC%EB%8A%94-%ED%95%91%EA%B3%84-%EC%9C%A0%EC%A0%84%EC%9E%90-%EC%9E%AD%ED%8C%9F%EA%B3%BC-%EA%B7%B8-%EC%99%B8%EC%9D%98-%EA%B2%83%EB%93%A4\"><strong>조건이라는 핑계: 유전자 잭팟과 그 외의 것들</strong></h3><p>\"잘생기고 키가 커야 한다\"는 명제는 연애 시장의 절대 진리처럼 통용된다. 물론 유리한 조건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 타고난 조건을 결핍의 원인으로 둘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피터 딩클리지(Peter Dinklage)는 132cm의 키로도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 내가 관찰한 경우만 하더라도, 키가 작거나 평범한 외모의 남성들이 자신의 다른 매력을 십분 발휘해 연애를 잘만 하고 다니는 사례는 수두룩하다. 당신의 주변만 둘러봐도 즉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p><p>'그래도 그 사람들은 특별하다'는 정당화는 본인에게만 손해다. 유전자 잭팟을 맞은 0.1%와 자신을 비교하며 노력을 거부하는 벽을 깨부수지 못하면 삶의 질은 정체된다. 키와 얼굴을 바꿀 수 없다면, 바꿀 수 있는 나머지 80%의 변수(체형, 청결도, 문해력, 경제적 기초)에 집중하는 것이 지적으로 정당한 태도다.</p><h3 id=\"%EC%9D%B4%EC%83%81%ED%98%95%EC%9D%B4%EB%9D%BC%EB%8A%94-%EB%A7%9D%EC%83%81%EA%B3%BC-%EC%9E%90%EA%B8%B0-%EA%B0%9D%EA%B4%80%ED%99%94\"><strong>이상형이라는 망상과 자기 객관화</strong></h3><p>'눈이 높다'는 고백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기준이 높은 것은 남녀 불문 권장할 일이다. 문제가 생기는 지점은, 자신이 원하는 대상의 기준과 현재 자신의 상태 사이의 격차를 정밀하게 측정하지 않는 상태에 놓인 것이다. 현재 상태에서 당신 상상 속의 완벽한 상대가 당신을 선택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이유가 없다면 그것은 이상이 아니라 일방적 기대다.</p><p>자기 관리와 심리적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채 높은 기준만을 고수하는 것은, 마치 <strong>자본 없이 고수익 자산을 매입하려는 시장 교란 행위</strong>와 같다.&nbsp;</p><h3 id=\"%EC%B7%A8%ED%96%A5%EC%9D%98-%EB%B6%80%EC%9E%AC%EC%99%80-%EC%A7%80%EB%A3%A8%ED%95%A8%EC%9D%98-%EA%B5%AC%EC%A1%B0\"><strong>취향의 부재와 지루함의 구조</strong></h3><p>'취미를 가지라'는 조언은 단지 이성을 만날 접점을 넓히기 위함이 아니다. 이는 데이터 입력을 다양화하라는 구조적 명령이다. 즐거운 대화는 모든 관계의 시작이며, 유전자 잭팟 없이도 연애를 지속하게 만드는 핵심 동력이다. 상대가 지루할 틈 없이 재치 있게 대화할 수 있다면 게임의 양상은 달라진다.</p><p>대부분 대화의 지루함은 화술의 부족이 아니라 콘텐츠의 빈곤에서 기인한다. 선호하는 음악, 영화, 사진작가, 브랜드에 대한 주관이 전무한 상태에서 상대와의 교집합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입력값이 없으니 출력값은 언제나 본인의 커리어나 업무 상세 내용 같은 '안전하고 지루한' 데이터로 수렴한다.&nbsp;</p><p>자신의 전공 분야나 박사 연구 주제를 초면에 1분 이상 늘어놓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정보 송출이다. 만약 이를 흥미롭게 들어주는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매력 때문이 아니라 상대의 인내심이나 지적 호기심이 경이로운 수준임을 인정해야 한다.</p><h3 id=\"%EC%9D%B8%EC%85%80incel-%ED%98%84%EC%83%81-%EC%9E%90%EA%B8%B0-%EA%B0%9D%EA%B4%80%ED%99%94-%EC%8B%A4%ED%8C%A8%EC%9D%98-%EC%A2%85%EC%B0%A9%EC%A7%80\"><strong>인셀(Incel) 현상: 자기 객관화 실패의 종착지</strong></h3><p>자기 객관화 없이 이상형만 노래하다가 반복적인 거절을 당하면, 정신 건강은 오염되기 시작한다. 남성은 사회적 거절을 시스템의 문제나 타인의 탓으로 돌리며 고립되기 쉽다.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인셀(Incel)의 극단적인 소외 현상은 상당 부분 이러한 '자기 객관화의 실패'에서 시작된다. '자산 형성의 게으름'을 '사회적 피해'로 치환하는 것이다.</p><p>이들은 자신의 지루함, 눈치 없음, 관리되지 않은 신체를 개선하는 대신 시스템을 비난하며 고립을 자처한다. 2014년 엘리엇 로저(Elliot Rodger) 사건이나 2020년대 영미권 및 한국에서 발생하는 혐오 범죄들의 기저에는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세상이 나를 거부한다\"는 거대한 인지 부조리가 깔려 있다. 발전 없는 상태에서 누적된 거절감이 분노로 변질될 때, 개인은 연애 실패를 넘어 사회적 부적응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급행열차를 타게 된다.</p><h3 id=\"%EA%B2%B0%EB%A1%A0-%EB%A7%A4%EB%A0%A5%EC%9D%98-%EC%84%A4%EA%B3%84\"><strong>결론: 매력의 설계</strong></h3><p>존 햄(Jon Hamm)이나 조지 클루니(George Clooney)가 방출하는 중년 이후의 매력은 시간의 흐름이 준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상호작용과 관계의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시스템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한 결과물이다.</p><p>당신이 상정하는 이상적인 파트너가 어떤 남자를 원하는지 역설계(Reverse Engineering) 해보라. 높은 기준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 기준에 도달하기 위한 구조적 노력이 결여된 상태는 지질함이 아니라 지능의 문제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자만이 쟁취할 수 있다.</p><p>원하는 것이 높다면, 그에 상응하는 자산을 먼저 설계하라.</p>","date_published":"2026-01-31T23:35:49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id":"https://jiwonkwak.co/working-together","url":"https://jiwonkwak.co/working-together","title":"협업의 공식에는 항상 ‘인간 변동성’ 상수를 넣어야 한다.","content_html":"<p>협업의 공식에서 가장 흔하게 누락되는 값은 '인간'이라는 변동성이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완결된 설계라 해도, 실행의 단계에서 그 공식은 반드시 사람이라는 필터를 통과한다.</p><p>학습의 속도, 집중의 밀도, 특정 유인에 반응하는 성향. 이 무궁무진한 차이와 천태만상의 변수들은 어느 조직에서든 불가피하게 마주하는 상수다. 이를 계산에서 제외하는 순간, 설계는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가설에 머문다.</p><p>한때는 '나만 완벽하게 제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는 논리가 유효하다고 믿었다. 내가 빠르고 정확하게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전체의 속도 또한 비례하여 상승할 것이라는 착각이었다. 이는 시스템 전체가 아닌 부분 최적화에 매몰된 시각이었다.&nbsp;</p><p>1인 기업이 아닌 이상, 정교한 논리도 타인의 해석 체계를 통과하는 순간 그 궤적이 뒤틀리고, 한 부품이 뛰어나도 그것이 전체 공정의 속도를 보장하지 않는다. <strong>개별 주체가 스스로의 완결성에만 몰입할 때, 시스템 전체의 구조적 결함은 ‘타인의 역량 부족’이라는 개인의 문제로 은폐된다. </strong>시스템적 보완책(예: 가이드라인의 정교화, 확인 절차의 재설계)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상대의 무능’이라는 쉬운 결론에 안주하게 만든다.</p><p>협업의 좌절은 많은 경우 시스템 설계 단계에서 '인간'의 변동성을 상수가 아닌 오차로 간주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역량의 척도는 본질적으로 상대적이며, 시스템의 맥락에 따라 가변적이다. 개인의 자질을 심판하는 행위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구조적 개선의 기회를 포기하게 만든다.</p><p>'저 사람은 왜 일머리가 없을까'라는 분노는 결국 관찰자 본인의 설계 역량이 타인의 변동성을 포용할 만큼 확장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진정한 의미의 실행력은 진공 상태에서의 속도가 아니라, <strong>타인의 변동성과 정보의 비대칭성을 구조 안에 포함시킨 상태에서도 목표를 달성해내는 복원력</strong>이라고 할 수 있다.</p><p>채용이 까다로운 이유 또한 단순히 '우수한 인재'를 찾기 위함이 아니라 조직이라는 구조물 안에서 발생할 마찰계수를 예측하고,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변동폭을 가진 인물을 선별하는 고도의 리스크 관리 과정이기 때문이다.</p><p>훌륭한 리더십은 타인의 모난 부분을 깎아내는 것이 아니라, 휜 소나무를 분재의 재료로 삼듯, 그 굴곡을 설계의 재료로 삼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직선적인 결과물만을 고집하는 이는 혼자 일할 때 가장 빠르겠지만, 거대한 구조물을 세우는 이는 비틀린 재료들을 맞물려 견고한 아치를 만든다.&nbsp;</p><p>협업은 개인의 유능함을 과시하는 무대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상수를 포함하여 시스템의 복원력을 설계하는 구조적 엔지니어링의 영역이다.</p><p></p>","date_published":"2026-01-18T23:39:06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id":"https://jiwonkwak.co/writing-in-the-age-of-ai","url":"https://jiwonkwak.co/writing-in-the-age-of-ai","title":"AI가 보편화될수록, 글쓰기 실력의 격차는 더 잔인하게 벌어집니다.","content_html":"<p>저는 현업에서 타인의 글을 번역, 편집, 재작성하는 일을 오래 해왔습니다. 최근 AI를 활용한 글들을 마주하며 내린 결론이 하나 있습니다.</p><p>LLM(거대언어모델)은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어줄 수는 있어도, 인간의 '내러티브 구성 능력'과 '메타인지'까지는 대체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가 결여된 상태에서 AI를 활용해 글을 쓰면, 결과물은 필연적으로 ‘속 빈 강정’이 됩니다.</p><h3 id=\"1-%ED%91%9C%EB%A9%B4%EC%A0%81-%EC%8B%A0%ED%98%B8surface-signals%EC%9D%98-%EA%B0%80%EC%B9%98-%ED%95%98%EB%9D%BD\">1. 표면적 신호(Surface Signals)의 가치 하락 </h3><p>과거에는 세련된 어휘와 전문 용어가 작문 실력의 중요한 지표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AI가 몇 초 만에 휘황찬란한 비유와 유창한 표현을 생성해냅니다. 누구나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피상적인 작문 신호들은 급격히 가치를 잃었습니다.</p><h3 id=\"2-%EB%82%B4%EB%9F%AC%ED%8B%B0%EB%B8%8C%EB%9D%BC%EB%8A%94-%EC%83%88%EB%A1%9C%EC%9A%B4-%EA%B2%A9%EC%B0%A8\">2. 내러티브라는 새로운 격차 </h3><p>이제 진짜 실력은 '글의 흐름과 맥락을 설계하는 능력'에서 갈립니다. 사용자는 자신이 담을 수 있는 그릇만큼 AI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용자의 '내러티브 구성 능력' 및 '메타인지'가 AI의 성능을 결정짓습니다.</p><p>예를 들어 제가 지난 주 흥미롭게 본 연쇄 살인마 제프리 다머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감상문을 쓴다고 해보겠습니다.</p><ul><li>일반적인 접근: \"그는 잔혹했다, 정신 이상자였다\"는 식의 단편적 감상 나열.</li><li>설계된 내러티브: 재판의 핵심 쟁점인 '법적 정신 이상'의 정의를 화두로 잡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을 통해 법적 용어와 일상 용어의 괴리를 짚고, 미셸 푸코의 광기 담론을 빌려 사회적 맥락을 분석합니다.</li></ul><p>당장 생각나는 예를 든 것이지만, 머릿속에 뼈대가 잡혀 있는 사람은 AI에게 던지는 프롬프트의 수준부터 다릅니다. 결과물의 진정성과 몰입력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p><h3 id=\"3-ai-%EC%8B%9C%EB%8C%80%EC%9D%98-%ED%8E%B8%EC%A7%91%EC%9E%90editor%EA%B0%80-%EB%90%98%EB%8A%94-%EB%B2%95\">3. AI 시대의 편집자(Editor)가 되는 법 </h3><p>AI가 뱉어내는 장식적 문장에 현혹되지 않으면서, 내용을 어떻게 조합하고 무엇을 살릴지 결정하는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p><p>개념의 차이와 맥락을 읽어내는 비판적 사고 능력,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연결하는 학제간 지식(Interdisciplinary Knowledge),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한 자각, 즉 메타인지를 갖추어야 합니다.</p><p>문장력이 '공짜'가 된 AI 시대의 글쓰기는 오히려 더 본질적인 역량을 요구합니다. 도구에 의존하기 전에, 나만의 지식 지평을 넓히는 독서와 사고의 훈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입니다.</p>","date_published":"2026-01-09T23:49:24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id":"https://jiwonkwak.co/dense-writing","url":"https://jiwonkwak.co/dense-writing","title":"끝까지 읽히는 글은 무엇이 다른가 — ‘글의 밀도’에 대하여","content_html":"<p>현대 사회에서 글쓰기는 쉽지 않습니다. 분량 자체야 토큰을 쏟아내면 얼마든지 늘릴 수 있지만, 오늘날의 글쓰기는 독자의 집중력이라는 희소 자원을 두고 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p><p>과거 라디오 드라마가 성행하던 시절, 사람들은 소리만으로도 등장인물의 미묘한 심리와 희로애락에 깊이 몰입했습니다. 반면 지금은 어떤가요. HD 화면 속에서 화려한 CG와 천재지변이 펼쳐져도, 현대인은 쉽게 감흥을 느끼지 못합니다.자극의 역치는 높아졌고, 인지 자원은 희귀해졌습니다. 독자는 자신에게 효용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미련 없이 떠납니다.</p><p>그래서 제가 글을 쓸 때 가장 집요하게 붙잡는 편집자적 기준은 바로 ‘글의 밀도’입니다.헐렁한 문장들이 모여 있는 글은 밀도가 낮습니다. 시간을 들여 읽어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p><p>저는 글의 밀도를 높이는 과정을 종종 ‘스티브 잡스의 엘리베이터 해고’에 비유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직원에게 업무 내용과 기여도를 묻고, 답변이 설득력이 없으면 바로 해고했다는 일화처럼 말이죠. </p><p>제가 글을 편집할 때 사용하는 판단 방식과 정확히 닮아 있습니다.</p><p>첫째, 모든 단어는 문장 안에서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합니다. 불필요한 조사나 관성적으로 반복되는 수식어부터 과감히 덜어냅니다.</p><p>둘째, 모든 문장도 글 전체에서의 존재 가치를 치열하게 증명해야 합니다. 이 문장은 정보를 전달하는가, 논리를 잇는 가교인가, 논지를 강화하는 근거인가, 아니면 정서적 울림을 주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문장은 남길 이유가 없습니다.</p><p>물론 독자에 따라 의도가 100% 전달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 자신은, 각 문장이 왜 그 자리에 존재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p><p>글을 다듬다 보면 공들여 쓴 비유나 단어에 애착이 생겨 놓기 힘든 순간도 옵니다. 저 역시 통번역을 전공하며 자주 겪었던 고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흐름을 끊는다면, 대의를 위해 버리는 것이 AI 시대의 내러티브 편집자가 갖춰야 할 핵심 역량입니다.</p><p>결국 끝까지 읽히는 글을 만드는 것은 문장을 추가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판단함으로써 글의 밀도를 끌어올리는 식견입니다.</p>","date_published":"2026-01-09T23:40:45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id":"https://jiwonkwak.co/power-changes-people","url":"https://jiwonkwak.co/power-changes-people","title":"갑질에 관하여","content_html":"<p>대학원 졸업 후, 학부 시절 교수님을 캠퍼스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다. 안부를 나누다가 통번역대학원이라는 것을 알고 번역 일을 맡기고 싶다며 연락처를 물어보셨다. 처음에는 논문 초록 같은 소소한 작업이었고, 이후에는 꽤 이름이 알려진 국제학자의 저서를 번역할 수 있겠느냐는 제안으로 이어졌다.</p><p>다만 조건이 하나 있었다. 책은 교수님 본인 명의로 출간되고, 나는 ‘역자의 말’에 이름이 추가된다는 것이었다. </p><p>그 시절의 나는 경험을 쌓는 데 급급했다. 게다가 꽤 저명한 학자 책이어서 재밌어보였다. 그래서 알겠다고 했다.</p><p>번역이 거의 마무리될 즈음, 교수님에게서 “얼마를 주면 되겠느냐”고 문자가 왔다. 교수님의 평소 행색이 궁색해 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기회를 준 것이 고맙다는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시세보다 훨씬 낮은 금액을 제시했다. 계산 근거까지 덧붙여, 대략 100만 원 정도라고 보냈다.</p><p>그날 저녁, 완전 잊고 있던 상태에서 교수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고 정적이 잠시 흘렀고,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p><p>“내가 기분이 좀 상했다”</p><p>\"...?\"</p><p>​차마 돈 때문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교수님한테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 당황했다. 그는 곧 화를 내기 시작했다. </p><!--members-only--><p>\"너 어디서 사회생활을 그렇게 해?\"<br>\"다른 누구는 20만 원에 하고, 내가 장학생으로 유학도 보내줬다\"<br>\"어디서 싸가지 없게 그런 돈을 불러?\"<br>\"번역도 잘하지 못하더만...\"</p><p>나는 오히려 내가 배려했다고 믿고 있었던 상태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격을 받은 것이었다. 지금이라면 훨씬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겠지만, 그때의 나는 많이 순수했다. 충격을 받아 거의 울음을 참아야 했다. 그는 그렇게 한참을 몰아붙인 뒤, 더 낮은 금액으로 하자는 암시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p><p>이런 식으로 사람을 시험하고 우위를 확인하는 행위가 명백히 지위를 활용한 가스라이팅인 것은 알겠는데, 약간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나는 이미 학부도 졸업했고, 학부 전공 관련 진로를 선택할 마음도 없었고, 그 교수님의 박사과정에 진학할 계획도 없었으며, 그의 전공 분야에 전혀 관심도 없었다. <strong>다시 말해, 그가 나에게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력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strong>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믿고 이런 방식의 갑질을 시도한 것일까?</p><p>답은 단순하다. <strong>학생들을 대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이 너무 오랜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strong></p><p>다음 날 다시 전화가 왔다. 여태까지 번역한 파일을 보내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는 여전히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지만, 다행히도 파일은 이미 삭제한 뒤였다. 나는 삭제했다고 말했다.</p><p>잠시 정적이 흘렀고,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p><p>“지원이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의외구나.”</p><p>그 말은 더 이상 가스라이팅이 통하지 않는 대상임을 인지했다는 신호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이후, 그는 나에게서 관심을 거두었다.</p><p>그리고 몇 개월 뒤 안부 전화가 왔는데, 뭔지 궁금해서 받아보니 상당히 과장된 밝은 목소리로 잘 지내냐고 물었다. 내가 별로 안 반갑게 답하자 \"아직 삐졌구나\"라며 끊고, 그 뒤론 지금까지 연락이 없으시다. <em>(\"삐졌다\"는 단어 선택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em></p><hr><p>권력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과정은 대개 서서히 진행된다.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어느 순간부터 온도가 올라가 있는지도 모른 채 익숙해진다. 그렇다면 이것은 과연 특정 개인의 인격 문제일까.</p><p>특히 학생 시절을 돌아보면, 갑질의 구조를 유지시키는 데에는 주변의 역할도 분명히 존재했다. 이득을 기대하며 불필요하게 몸을 낮추는 사람, 노골적으로 아첨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았다. ​그리고 반복되는 아첨은 결국 권력을 가진 쪽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낸다. <strong>이 정도의 무례, 이 정도의 요구는 ‘허용 가능하다’는 신호 말이다.</strong></p><p>나도 종종 ‘윗사람’과 대화할 때,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특별 대우를 기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반드시 악의적이어서가 아니다. <strong>그런 대우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왔기 때문이다.</strong> </p><p>그들 역시 뉴스에 나오는 갑질 사례를 보며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약간의 영향력을 손에 쥐는 순간,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진다. 웃음이 많아지고, 눈치를 보고, 듣고 싶은 말을 해주기 시작한다. 그 변화에 저항하지 않는 순간, 권력은 자연스럽게 ‘기대’가 된다. 그렇게 이 구조는 재생산된다.</p><p><strong>그래서 이 악순환에는 아첨하는 쪽의 책임도 분명히 존재한다.</strong></p><p>아첨은 약자의 생존 전략, 불가피한 사회 생활처럼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권력을 비대하게 만들고 기준을 무너뜨리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아첨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권력자는 자신의 판단이 옳고, 자신의 방식이 정당하다고 착각한다.</p><p>개인적으로 아첨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성장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일단 아첨에 넘어가는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소인배의 증거다. 남의 호의에 기대어 이득을 취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편할지 몰라도, 결국 멀리 가지 못한다.</p><p>게다가 상대가 유난히 그릇이 큰 사람이 아니라면 그의 버릇만 더 망치게 되고, 본인은 속에 분노와 원한만 쌓이게 된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태도 자체가 이 더러운 권력 구조를 지속시키는 데 일조한다는 사실이다.</p><p>그래서 이 고리를 끊으려면 질문의 방향부터 바꿔야 한다. 저 사람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strong>‘내가 상대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가.’ </strong>결국 기회를 만드는 것은 아첨이 아니라 실력과 태도다.</p><p>그러니 빌어먹으려는 마인드는 떠오를 때마다 버려야 한다. 그게 가장 현실적인 선택처럼 보일 때조차.</p>","date_published":"2025-12-14T09:34:11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id":"https://jiwonkwak.co/relatioship-with-food","url":"https://jiwonkwak.co/relatioship-with-food","title":"음식과의 관계","content_html":"<p>나는 음식에 있어 기준이 매우 단순하다. <strong>'영양의 균형'</strong> 그리고 <strong>'편의성'</strong>. </p><p>타인을 대접할 때를 제외하면, 비싸고 예쁘고 맛있는 미식에는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 현 삶의 단계에서는 설탕이 없고, 단백질이 충분하며,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으면 된다.</p><p><strong>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 단순함이 상당한 까다로움으로 변모한다.</strong> 단백질은 지방이 적어야 하고, 탄수화물은 GI 지수가 낮아야 하며, 지방은 불포화지방이어야 하고, 전체적인 '탄단지' 비율도 맞아야 하며, 설탕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준을 만족하는 후보군만 남기면 일단 고추장, 간장 베이스인 한식은 95% 소거되고, 외식의 선택지는 좁아진다. <strong>결국 '영양의 균형'과 '편의성'을 동시에 만족하는 가장 효율적인 선택지는 하나로 수렴된다.</strong> 그래서 일년에 300일 이상 점심은 샐러드만 먹는다.</p><p>집에서는 구성이 상당히 단순하다. 단백질은 닭가슴살과 무설탕 비건 보충제, 무설탕 그릭 요거트. (붉은 육류는 지방 함량 때문에 한 달에 두세 번만 먹는다.) 탄수화물은 렌틸콩, 병아리콩, 단호박, 고구마, 무설탕 순수 호밀빵처럼 흡수가 느린 <strong>‘서방형 탄수화물’</strong>. 지방은 견과류, 아주 가끔 아보카도. 밀도 높은 불포화지방이 필요하면 연어를 찾아 먹는다.</p><hr><p>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질리는 순간이 온다. 그런데 그래서? <strong>'질리는 것'이 무엇인가?</strong> 그것은 그저 쾌락의 역치가 높아진 감각의 어리광이 아닌가. 이성적인 성인으로서 삶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아이를 길들여야 하지, 여기에 끌려다니면 안 된다. <strong>‘아, 오늘은 좀 질리네’</strong> 하고 그냥 먹으면 어차피 바쁘다 보니 곧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p><p>간식도 앞서 말한 것과 동일한 항목으로 구성되는데, 설탕과 포화지방만 없다면 종종 다른 선택지도 추가된다.</p><p>처음 사회생활을 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성인이 과자를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작은 <strong>관찰자적 충격</strong>을 받은 적이 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출근을 하기 시작하니 사무실에는 항상 과자가 구비되어 있었고, 실제 사람들이 과자를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p><p>나는 그 전까지 과자는 어린이와 학생들만 먹는 건줄 알았다. 과자뿐 아니라 달달한 음료, 떡볶이, 라면, 튀김 같은 음식은 성인이 되면 대체로 멀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절대 이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왠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p><p>심지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성인 남성은 초코 우유 같은 것을 먹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존경하는 리콴유가 마일로를 즐겨 마셨다는 말을 듣고는 생각을 바꿨고, 사회에 나와 수 많은 남성들이 딸기 우유부터 토피넛 라떼까지 <strong>액상당 음료</strong>를 즐겨 마시는 것을 목도하였고, 이 관찰에 근거해 <strong>세계관을 조정했다.</strong></p><hr><p>주제로 돌아오자면, 그러면 회식 자리에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면 어떻게 하는가? 약속이 있는 날에 먹기 힘든 메뉴가 예상되면, <strong>미리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먹고 간다.</strong></p><p>어차피 타인과의 식사는 음식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strong>대화와 교류가 핵심</strong>이다. 나는 음식을 미리 통제함으로써 확보한 정신적 에너지와 집중력을 상대에게 100% 몰입하는 데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적극적 경청\"의 신봉자다. 이는 사람 만나는 횟수를 대폭 줄인 덕에 개별 만남의 질이 높아져서 가능한 것이다.</p><p>물론 나에게도 예외가 있다. 예컨대 친구의 할머니가 손수 만든 음식을 내주신다면 설탕이든 콜레스테롤이든 당연히 감사하게 먹을 것이다.</p><p>“건강”은 사회적으로도 무난한 명분이지만, 나는 요청 받지 않은 쓸데없는 조언을 하지 않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쓴다. 사실 건강은 부차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먹으면 건강할 확률이 높아지기야 하겠지만, 시칠리아에는 매일 파스타, 와인, 초콜렛을 먹고 담배를 태우는 정정한 100세 노인도 있을 것이고, 햄버거와 콜라를 잘만 먹고도 장수하는 워렌 버핏도 있다. 인간의 몸은 단순하지 않다.</p><p>즉, 나는 남의 식단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내 방식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남에게 권하지 않는다. (나는 사실 가끔 과자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는 것이 더 건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p><hr><p>그럼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strong> 나 자신을 다루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strong> </p><p>나는 최선의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 내면 작업(Inner Work)을 중시하는 편이다. 20년이 넘게 축적된 상처, 감정, 트라우마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봉인할 강력한 위력을 찾은 곳이 바로 <strong>통제의 힘</strong>이었다. 이는 내면이 어느 정도 단련되어 강해진 정신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던 결과다.</p><p>통제하고 있을 때 비로소 안정감을 느끼고, 심리적으로 안정되어야만 비로소 자아 실현을 위해 다른 생산적인 일에 몰입할 수 있다. 사실 이 세상에서 통제하기 가장 만만한 대상이 바로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 그리고 나의 시간이다. <strong>음식 통제를 통해 얻은 성공 경험은 곧 '나를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이는 더 어려운 내면 통제와 외부 목표 달성에 필요한 강력한 기반이 된다.</strong></p><p>여기서 반문할 수 있다. <strong>‘통제 성향’ 자체가 강박이니, 고쳐야 하는 것 아닌가?</strong> 물론 정공법으로 해결하자면 정신 분석을 받거나 내면 탐구를 통해 강박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서 과거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하나하나 치유하는 것이다. 맞긴 한데, 지금 나는 아주 절묘한 균형점에 도달해서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다.</p><p>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어쩔 수 없이(?) 돈가스를 먹었다고 하더라도 바로 뱉으러 뛰어가거나, 자책감으로 우울하거나, 돈가스를 제공한 자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준의 병리적 강박의 스펙트럼도 아니다. 인생의 최종 목표가 '건강한 자아로서 자기 실현을 하며 사는 것'이라고 했을 때, 지금의 통제는 결과적으로 내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말이다.</p><p>종종 디저트를 안 먹는 것을 보고 “절제력 대단하세요”라는 말을 듣는데, <strong>절제가 아니다.</strong> 절제는 먹고 싶은데 참는 것이고, 안 먹다보면 생각이 안 난다. 먹고 싶은 것을 참는 것 보다는, 오히려 같은 음식을 몇 년째 먹는 것이 종종 힘들 뿐이다. 일반적으로 치팅 데이가 필요한 이유도 너무 억압했을 때 터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인데, 애초에 억압이 없으면 이 또한 필요 없다.</p><p>반대로 드물지만 뭔가가 정말 먹고 싶으면 먹는다. 예를 들어 작년 5월 3일에는 스콘 3개를 먹었다. 9월 어느 날에는 서브웨이 샌드위치 30cm를 먹었고, 발렌타인 때는 벨벳 케이크를 먹었다.</p><p>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어릴 때의 나였다면 ‘오늘 망했다’며 굶거나 운동으로 스스로를 벌했을 것이지만, <strong>억압이 터진 것이 아니라 완전히 주체적으로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strong> 지금은 드물게 일탈을 하더라도 자책하지 않고 그저 ‘잘 먹었다’, ‘오늘 재밌었다’ 하고 넘긴다. 다소 시시한 일탈일지라도 말이다.</p>","date_published":"2025-12-08T09:00:26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id":"https://jiwonkwak.co/dont-hurt-feelings","url":"https://jiwonkwak.co/dont-hurt-feelings","title":"미세한 사회적 텐션 관리의 기술","content_html":"<p>내가 아끼는 동생이 강남 한복판에서 낯선 남성에게 번호를 물어봐 차갑게 거절했다는 무용담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아마도 쿨하고 당당한 여성처럼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p><p>하지만 이 지점에서 잠시 멈춰서, 진정한 멋진 여성이라면 상황을 종결하고 불필요한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어떻게 접근할지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p><blockquote class=\"kg-blockquote-alt\">남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데에서 오는 이점은 웬만한 손해를 상회한다.</blockquote><p>이 문장은 심리학적으로 접근할 때, 단순히 도덕적인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제3자로서 관찰자의 시선으로 한 발짝 물러서서 이런 상황을 지켜볼 때면, 불필요한 마찰을 회피하는 것이 가장 실용적이고 영리한 생존 전략임을 깨닫게 된다.</p><hr><h3 id=\"%EC%9E%90%EA%B8%B0-%EC%9D%B8%EC%8B%9D-%EB%8F%84%ED%8C%8C%EB%AF%BC%EC%9D%98-%EB%AF%B8%EC%84%B8%ED%95%9C-%ED%8C%8C%EB%8F%99%EC%9D%84-%EC%9D%B8%EC%A7%80%ED%95%98%EB%9D%BC\">자기 인식: 도파민의 미세한 파동을 인지하라</h3><p>일단 스스로에게 정직해야 한다. 모르는 사람이 내 번호를 물어봤다. 나는 지금 얼마나 들떴는가? 이를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소크라테스도 자신을 알라고 하였다. 감정이 얽히다보면 결국 상대의 페이스에 말리기 때문이다. 남의 인정에 동요하지 않으면 정서적 안정감을 유지하며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처신할 수 있다.</p><p>도파민이 분비되며 순간적으로 기분이 고양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특히 진화심리학적으로, 이성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기에 약간의 쾌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도파민의 파동을 인지하되, 그것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 된다.</p><p>문제는 감정의 잔여가 오래 남아 자기 통제력을 흐리게 만들 때다. 평소 자존감을 높이는 행동들을 꾸준히 쌓아두면, 남의 평가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기반이 생긴다.</p><p>과도하게 ‘싫은’ 반응을 하는 것도 본질적으로 비슷한 메커니즘이다. 기분이 좋아진 사실이 스스로 의식되어 불편해질 때, 일부러 더 차갑게 구는 방어적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반동 형성(Reaction Formation)’이다. 내면의 긍정적 감정이나 인정 욕구를 부인하기 위해 오히려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이조차도 “아, 지금 내가 인정 욕구를 부인하는 중이구나”라고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p><h3 id=\"%EC%A7%84%EC%8B%AC%EC%9C%BC%EB%A1%9C-%EB%B6%88%EC%BE%8C%ED%95%A0-%EB%95%8C\">진심으로 불쾌할 때</h3><p>반면, 상대가 정말 취향에 정반대이고 본인의 기준에 ‘완전 미달’인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 순간적으로 “내가 우스워 보이나?”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욱하는 감정이 들 수 있다.</p><p>하지만 모욕을 주는 것이 현명할까?</p><p>여기서 우리는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잠재적 위험성을 따져봐야 한다. 생판 모르는 상대에 대한 정보가 '제로'라는 것은, 그가 분노 조절 장애를 갖고 있는지, 열등감 컴플렉스로 가득한지, 아니면 더 극단적으로 위험한 것–장기 밀매 등–에 연루되었는지 등의 여부도 전혀 모른다는 뜻이다. 정보가 비대칭적인 상황에서, 상대를 자극하는 것은 불필요한 '돌발 위험(Idiosyncratic Risk)'을 감수하는 행위가 된다. </p><hr><h3 id=\"%EA%B8%B4%EC%9E%A5-%EC%99%84%ED%99%94%EB%A5%BC-%EC%9C%84%ED%95%9C-%EC%A0%84%EB%9E%B5\">긴장 완화를 위한 전략</h3><p>우리가 결국 이루고자 하는 것은 '최대한 빨리, 상호 기분 좋은 상태로 각자 갈 길을 가는 것'이다.</p><p>서로에 대한 정보가 없는 이 전형적인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돌발 상황을 방지하려면, 일단 무조건 긴장의 기류를 없애는 것이 우선이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감사나 칭찬과 같은 '긍정적 쿠션어'는 상대방의 수용 의사를 높이는 기능을 한다.</p><p>경계성 인격 장애, 나르시시스트 모두 거절에 격하게 반응한다는 특징이 있다. 모두를 이렇게 취급하자는 뜻은 아니다. <strong>다만 친절은 인류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인 동시에, 위험을 현저히 낮춰주는 기술이기도 하다. 거의 잃을 것이 없는 접근이다.</strong></p><p>\"싫은데요?\"라는 직설적인 거절 대신, 처음에는 감사의 말을 담아 긴장도를 낮출 수있다. 쿠션어는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긴장을 낮추는 가장 쉬운 기술이다. </p><p>그 뒤에는 상대가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외부 귀인(External Attribution)'이 가능한 사유를 하나 추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p><blockquote>\"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 좋으신 분이라 확신하지만, 제가 지금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blockquote><p>지금은 혼자 다닐 일이 없지만, 작년에만 나는 실제 두번 이렇게 말 했다. &nbsp;“좋으신 분”이라는 말이 도저히 안 나오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는 최소한 거절의 이유를 ‘상대방의 가치 부족’이 아니라, ‘나의 현재 상황(마음의 여유 없음)’에 귀인시켜, 상대의 자존감 손상을 줄일 수 있다.</p><hr><h3 id=\"%EA%B8%8D%EC%A0%95-%EC%8B%A0%ED%98%B8%EC%9D%98-%EB%AF%B8%EB%81%BC%EB%A5%BC-%EB%8D%98%EC%A7%80%EC%A7%80-%EC%95%8A%EB%8A%94-%EC%99%B8%EC%A4%84%ED%83%80%EA%B8%B0\">긍정 신호의 미끼를 던지지 않는 외줄타기</h3><p>상대가 넉살 좋게 “제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같은 질문을 던질 때가 가장 곤란한 순간이다. 거짓말을 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긍정 신호를 줘서 착각을 유발해도 안 되며, 동시에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싶지도 않다. 말 그대로 ‘사회적 외줄타기(Social Tightrope Walk)’에 가깝다.</p><p>상대가 착각을 해버리면 상호작용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진다. 끝까지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되, ‘시간적 제약’이라는 명백한 외부 요인을 근거로 재빨리 자리를 뜨는 것이 최선이다. 이는 대화의 맥락을 급하게 종료시키고, 여운을 남기지 않으며, 상대에게 더 이상 ‘사회적 단서(Social Cues)’를 해석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다.</p><p>여운은 해석을 부른다. 해석은 착각을 부른다. 착각은 리스크다.</p><hr><h3 id=\"%EB%AC%B4%EA%B4%80%EC%8B%AC%EC%9C%BC%EB%A1%9C-%EC%83%81%EB%8C%80%EC%9D%98-%ED%9D%A5%EB%AF%B8%EB%A5%BC-%EC%86%8C%EB%A9%B8%EC%8B%9C%ED%82%A4%EB%8B%A4\">무관심으로 상대의 흥미를 소멸시키다</h3><p>20대 초반, 프랑스의 리옹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중년 남성이 오토바이를 타고 끈질기게 쫓아왔다. 처음엔 긴가민가했지만, 내가 멈추자 그도 멈춰섰다. 배가 볼록 나왔고, 뾰족한 요정 구두를 신고 있던 그는 마침내 나를 붙잡고 난데없이 청혼을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집도 있고 돈도 많다고 했다. </p><p>다들 바캉스를 떠나 여름 리옹의 거리는 한산하다. 이에 위기감과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나는 철저한 포커 페이스를 유지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공포의 에너지를 읽을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단 한 치의 '역겨움'이나 '불쾌함'의 감정도 전달하지 않았다. </p><p>일부러 생각 자체를 깊게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em>눈만 더럽게 높네?</em>와 같은 생각에 빠지게 되면 불쾌함이 얼굴에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절함의 가면을 쓴 채 시종일관 미지근한 태도로 시간을 끌었다.</p><p>이것이 심리학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strong>인간의 '추구 행동(Pursuit Behavior)'은 상대의 반응, 즉 '강화물(Reinforcer)'에 의해 유지된다.</strong> 상대방이 거부하면 '정복욕'이 자극되어 추구가 강화되고, 상대방이 호응하면 '긍정적 만족감'이 충족되어 추구가 지속된다.</p><p>하지만 나의 전략은 둘 다 아니었다. 거부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흥미를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상황에 대한 ‘지루한 중립’을 유지하며 몇 시간을 끌었다. 일종의 '소거(Extinction)' 과정이다. 흥미를 잃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상대의 노력이 아무런 감정적 보상도 가져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p><p>결국 그 남성은 지쳤다. 그가 내게 던진 마지막 말은 \"Tu es difficile (너 정말 까다롭구나).\"였다. </p><p>'까다롭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내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태워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쾌함이 아닌 '지루한 까다로움'으로 인식되자, 그의 추구 동기는 소멸되었고, 그는 폭발이나 원한 없이 스스로 흥미를 잃고 돌아갔다. 결과적으로 최소한의 감정적 손실로 상황을 종결한 것이다.</p><hr><p>결론적으로,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건 고매한 인품의 문제가 아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불필요한 사회적 마찰과 잠재적 위험을 줄이는, 가장 비용 대비 효율 좋은 전략에 가깝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냉정한 전략이 결국 서로의 평화를 지키는 가장 온건한 방식이 되기도 한다.</p><p></p>","date_published":"2025-12-04T23:13:49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id":"https://jiwonkwak.co/pathologic-lying","url":"https://jiwonkwak.co/pathologic-lying","title":"허언증","content_html":"<p>요즘 범죄 다큐멘터리를 집중 시청하고 있다. 단순히 자극을 좇는 게 아니라, 이론으로 배운 인간 심리를 실제 사례에 대입해보기 위해서다.</p><p>수많은 케이스 스터디를 거치며 깨달은 한 가지는, 욕망은 늘 단순하고, 인간은 그걸 포장하느라 복잡해진다는 것. 그 본질은 언제나 '결핍된 욕망'이다. 사이비 교주는 권력을 위해 세뇌하고, 치정 살인범은 욕망을 위해 가족을 제거한다. (물론 개중에는 아무 이유 없이 동물을 죽이는 등 완전히 고장난 인간들도 있다.)</p><p>이 수많은 범죄자들 사이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발견되는 공통된 존재가 있다. 바로 공상 허언증(Pseudologia Fantastica). 거짓말이 인격의 뼈대를 대신하는 사람들이다.</p><p>허언증 자체는 보다 보면 진부하다. 정말 숨 막히는 건 그 주변 사람들이다. “설마”로 시작해 “여기까지 왔는데…”로 끝나는 <strong>매몰비용 오류</strong>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거짓말에 끌려다니다가 어느 순간 “무엇이 진짜였는지” 감각 자체를 잃는다. 이미 쏟아부은 감정과 자원이 아까워, 허언증 환자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답답해진다.</p><p>그러다 문득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허언증 지인, 초등학교 동창, 혜수.</p><h3 id=\"%EB%96%A1%EC%9E%8E%EB%B6%80%ED%84%B0-%EB%8B%A4%EB%A5%B4%EB%8B%A4\"><strong>떡잎부터 다르다</strong></h3><p>혜수는 사실 지금 혜수가 아니다. 2021년, 그녀는 돌연 개명 소식을 전해왔다. 물론 나는 그 사실을 믿지 않지만, 그녀의 주장에 예의를 갖추는 차원에서 안심하고 그녀의 구명(舊名)을 사용하겠다.</p><p>우리는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혜수는 처음 만난 사람과 금세 친해지는 재능이 있었다. 문제는 관계 유지력이 하루살이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돈을 빌리면 안 갚고, 금방 탄로날 거짓말은 숨 쉬듯 하고, 약속은 예고 없이 증발했다. 평판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몇 년간 그녀를 곁에 허용했던 이유는 단 하나다. 애초에 혜수가 하는 말을 전혀 믿지 않았고, 그래서 나에게 영향력 행사를 못했기 때문이다.</p><p>보통 사람의 발언 신뢰도를 1.0으로 둔다면, 혜수에게는 0.2 정도를 적용했다. 물론 혜수의 말에 진실이 섞여 있을 때도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거짓말을 빚는 재료’ 역할을 하느라 곧 힘을 잃었다.</p><p>그렇다고 내가 혜수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혐오도 아니고, 우정도 아니고… 그냥 적당한 측은함과 적당한 거리감이 공존하는 관계. 오는 길은 열어두되, 가는 길은 잡지 않는 방식. 다만 돈을 빌려 달라하면 거절했다. 내가 먹을 것은 자주 줬던 것 같은데, 절대 금전 거래를 하지 않고, 딱히 정서적 깊이를 기대하지 않으니 감정 소모가 거의 없는 관계였다.&nbsp;</p><p>나의 유년기 시절 인간관계란 대체로 그랬다. 기준도 없고, 분별력도 약하고, 그냥 자연스럽게 방치하며 흘러갔다.</p><h3 id=\"%EC%82%AC%EA%B1%B4-1-%EC%9D%B8%EC%84%9C%EC%9A%B8-%EB%8C%80%ED%95%99%EA%B3%BC-%EB%82%98%EB%A5%B4%EC%8B%9C%EC%8B%9C%EC%A6%98%EC%A0%81-%EA%B2%A9%EB%85%B8\"><strong>사건 1: 인서울 대학과 나르시시즘적 격노</strong></h3><p>고등학교 진학 후 자연스레 소거되었던 혜수가 다시 등장한 건 입시가 끝난 직후였다. <em>\"나 성신여대 붙었어!\"</em></p><p>혜수의 지적 능력과 학업 성취도를 수년간 관찰해온 나로서는, 그녀가 3개월 넘게 알바를 했다고만 했어도 장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성신여대라니. 감동적이었다. 솔직히 말해 잠시 믿었다. 입시라는 거대한 생애 과업 앞에서 거짓말을 할 리 없다는, 나의 안일한 휴리스틱 탓이었다.</p><div class=\"kg-card kg-signup-card kg-width-wide \" data-lexical-signup-form=\"\" style=\"background-color: #2b4438; display: none;\">\n            \n            <div class=\"kg-signup-card-content\">\n                \n                <div class=\"kg-signup-card-text \">\n                    <h2 class=\"kg-signup-card-heading\" style=\"color: #FFFFFF;\"><span style=\"white-space: pre-wrap;\">Sign up for Jiwon's Writings</span></h2>\n                    <p class=\"kg-signup-card-subheading\" style=\"color: #FFFFFF;\"><span style=\"white-space: pre-wrap;\">에세이, 인사이트, 배움의 기록</span></p>\n                    \n        <form class=\"kg-signup-card-form\" data-members-form=\"signup\">\n            \n            <div class=\"kg-signup-card-fields\">\n                <input class=\"kg-signup-card-input\" id=\"email\" data-members-email=\"\" type=\"email\" required=\"true\" placeholder=\"Your email\">\n                <button class=\"kg-signup-card-button \" style=\"background-color: #ba63c5;color: #FFFFFF;\" type=\"submit\">\n                    <span class=\"kg-signup-card-button-default\">Subscribe</span>\n                    <span class=\"kg-signup-card-button-loading\"><svg xmlns=\"http://www.w3.org/2000/svg\" height=\"24\" width=\"24\" viewBox=\"0 0 24 24\">\n        <g stroke-linecap=\"round\" stroke-width=\"2\" fill=\"currentColor\" stroke=\"none\" stroke-linejoin=\"round\" class=\"nc-icon-wrapper\">\n            <g class=\"nc-loop-dots-4-24-icon-o\">\n                <circle cx=\"4\" cy=\"12\" r=\"3\"></circle>\n                <circle cx=\"12\" cy=\"12\" r=\"3\"></circle>\n                <circle cx=\"20\" cy=\"12\" r=\"3\"></circle>\n            </g>\n            <style data-cap=\"butt\">\n                .nc-loop-dots-4-24-icon-o{--animation-duration:0.8s}\n                .nc-loop-dots-4-24-icon-o *{opacity:.4;transform:scale(.75);animation:nc-loop-dots-4-anim var(--animation-duration) infinite}\n                .nc-loop-dots-4-24-icon-o :nth-child(1){transform-origin:4px 12px;animation-delay:-.3s;animation-delay:calc(var(--animation-duration)/-2.666)}\n                .nc-loop-dots-4-24-icon-o :nth-child(2){transform-origin:12px 12px;animation-delay:-.15s;animation-delay:calc(var(--animation-duration)/-5.333)}\n                .nc-loop-dots-4-24-icon-o :nth-child(3){transform-origin:20px 12px}\n                @keyframes nc-loop-dots-4-anim{0%,100%{opacity:.4;transform:scale(.75)}50%{opacity:1;transform:scale(1)}}\n            </style>\n        </g>\n    </svg></span>\n                </button>\n            </div>\n            <div class=\"kg-signup-card-success\" style=\"color: #FFFFFF;\">\n                Email 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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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모르겠다. 거짓말로 점철된 관계이다보니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그녀의 실체인지를 전혀 알 수 없다.&nbsp;</p><p>하지만 이해와 허용은 별개의 문제다. 병적 허언증은 예후가 좋지 않다. 타인의 에너지를 숙주 삼아 기생하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최선의 전략은 미움도, 연민도 없이 '완전한 거리두기'다.</p>","date_published":"2025-11-27T09:13:46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id":"https://jiwonkwak.co/testosterone","url":"https://jiwonkwak.co/testosterone","title":"파워 부스터: 테스토스테론?","content_html":"<p>최근 The New York Times에서 흥미로운 <a href=\"https://www.nytimes.com/2025/10/22/magazine/testosterone-women-health-sex-libido-menopause.html\"><u>기사</u></a>를 읽었다. 기존에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위주로 이루어지던 폐경기 호르몬 대체요법(HRT: Hormone Replacement Therapy)에서 <strong>테스토스테론 사용</strong>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여성들에게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한다는 얘기다.</p><p>대학생 때 이탈리아인 리코가 자신의 시칠리아의 고향집은 바닥재가 돌이라 춥다고 설명하던 중, “추워죽겠는데 엄마가 덥다고 자꾸 창문을 연다”라고 덧붙인게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아들만 있는 여성이라면 폐경기가 도래했을 때 공감과 돌봄을 받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p><p>리코의 어머니가 더위를 호소한 것은 폐경이행기 증상이다. 폐경기에 근접할 수록 난소에서 생성하는 에스트로겐이 점점 감소하다가 결국 급감한다. 에스트로겐은 성호르몬이지만, 시상하부에서 체온 조절에도 관여하고 관절 연골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부족해지면 열감(hot flashes)과 골다공증이 나타나는 것이다. 성욕 감소, 기분 변화도 수반된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EwLCJwdXIiOiJibG9iX2lkIn19--05ac16eb4aebb01ed11a8180729d6f9a1f48874f/data-src-image-09773831-9dc1-45cd-a495-d268d1f0e2bb.png\" alt=\"\" loading=\"lazy\" width=\"940\" height=\"788\"><figcaption>출처: Access Medical Labs</figcaption></figure><p>이러한 폐경기 증세를 완화하기 위해 HRT(Hormone Replacement Therapy, 호르몬 대체 요법)가 사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에스트로겐만 단독으로 투여할 경우 자궁내막이 두꺼워져서 암으로 발전할 수 있으므로, 자궁내막 성장을 억제해주는 프로게스테론을 함께 사용한다. </p><p>그런데 여자도 테스토스테론이 있고, 남자도 에스트로겐이 있다. 청소년기엔 남녀 호르몬 구성에 큰 차이가 없다가, 2차성징을 겪으면서 남성은 여성의 30배가 넘는 테스토스테론을 생성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평균적으로 여성의 10배-20배의 테스토스테론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남자의 호르몬 변화는 점진적이어서, 여성의 폐경 증상과 같은 불편함이 덜한 편이다. </p><p>아래는 여성 및 남성의 시기별 에스트로겐 수치 변화 테이블(Mayo Clinic의 <a href=\"https://www.mayocliniclabs.com/test-catalog/overview/81816#Clinical-and-Interpretive\">자료</a>),  연령대별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 변화를 보여주는 차트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E1LCJwdXIiOiJibG9iX2lkIn19--cd19e66e02cf51481cd3d8fe26d9d78a4dacfc80/data-src-image-f163fe91-dc63-4d73-82b9-ee18854deded.png\" alt=\"\" loading=\"lazy\" width=\"1206\" height=\"372\"></figure><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E2LCJwdXIiOiJibG9iX2lkIn19--d8064e21fc15b54aa2eb8a80aa99d06cf4793ea9/data-src-image-fda78b5e-9c3d-4447-be57-793922e7f435.png\" alt=\"\" loading=\"lazy\" width=\"980\" height=\"300\"></figure><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ExLCJwdXIiOiJibG9iX2lkIn19--5db987eabd328d1580f29d08d65384a3d4876cda/image.png\" alt=\"\" loading=\"lazy\" width=\"1100\" height=\"600\"></figure><p>남성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럽게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하고, 상대적으로 에스트로겐의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한때 큰소리치며 살았으나 전세가 역전되어 매일 구박받는 할아버지, 혹은 눈물이 많아진 중년의 아버지 같은 원형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는 것도 과학적 근거가 있는 현상이다.</p><!--members-only--><p>폐경 여성의 호르몬 치료에서 테스토스테론이 사용될 때는, 일반적으로 여성의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가장 활발한 30대의 평균 수치를 기준으로 삼는다. 참고로 대체 요법에 사용되는 호르몬 자체는 Food and Drug Administration(FDA)의 승인을 받은 것이지만, <strong>여성용 테스토스테론 치료제는 아직 승인된 제품이 없다.</strong> 따라서 대부분의 일반 의사들은 처방을 꺼리며, 보험 적용도 되지 않는다.</p><p>여성이 테스토스테론을 처방받으려면 대체 요법에 개방적인 웰니스 센터나 폐경 전문 클리닉을 찾아야 한다. 이때 사용하는 호르몬 제제는 일반 약국이 아닌 <strong>컴파운딩 약국</strong>(compounding pharmacy, 환자의 상태에 따라 맞춤형으로 용량과 성분을 조정하는 약국)에서 제조된다. 한 번 시술에 약 $350(한화 약 50만 원) 정도가 들며, 3~4개월에 한 번씩 주입해야 하므로 1년에 약 2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p><p>규제가 느슨한 법적 회색지대인 만큼, 권장량의 몇 배에 달하는 고용량을 주입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제형은 <strong>피부에 바르는 크림 형태</strong> 또는 <strong>펠렛(pellet)</strong> 형태가 일반적이며, 펠렛은 작은 원통형 알약처럼 생겨 피하에 삽입된다. 현재 테스토스테론 제제 중 FDA 승인을 받은 것은 Endo사의 <strong>Testopel</strong>이 유일하나, Testopel은 명시적으로 여성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실제로 여성에게는 주로 <strong>BioTE</strong>나 <strong>SottoPelle</strong> 등 브랜드의 제제가 처방되는 것으로 보인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EyLCJwdXIiOiJibG9iX2lkIn19--0e0eab4c8fbb511ee645f514e67a19aadabc7a64/data-src-image-736045d6-c8df-4d96-8b5e-cce3cd11d6fc.png\" alt=\"\" loading=\"lazy\" width=\"1130\" height=\"558\"><figcaption>물고기 밥 같이 생긴 테스토스테론 펠렛</figcaption></figure><p>펠렛은 피부에 작은 절개를 한 후 피하 지방에 바늘을 통해 주입된다. 한번 들어가면 꺼내지 못하므로,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약효가 다 할 때까지 3-4개월을 기다려야 한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EzLCJwdXIiOiJibG9iX2lkIn19--f43fbe0ab5535bc148bba20a724f1b88829e0125/data-src-image-d5e4022e-531e-47c7-894e-116fa1ed16af.png\" alt=\"\" loading=\"lazy\" width=\"780\" height=\"169\"><figcaption>출처: Endo사의 Testopel 웹사이트</figcaption></figure><p>그렇다면 효과는 어떨까?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치료를 받은 여성들의 후기를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폭발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매일 힘이 나고, 머리가 맑아졌으며, 우울함이 사라지고, 의욕이 생기고, 근육이 더 잘 붙고, 살이 빠지고, 성욕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정신적·신체적으로 자기 실현이 가능해져 행복하다는 반응이 압도적이었고, “젊음의 샘”이라고 묘사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p><figure class=\"post-media\"><img src=\"/rails/active_storage/blobs/redirect/eyJfcmFpbHMiOnsiZGF0YSI6MTE0LCJwdXIiOiJibG9iX2lkIn19--51a7a647c15eb285ac11ef86a8ae706bc9e10403/Screenshot-2025-11-09-at-12.19.27---PM.png\" alt=\"\" loading=\"lazy\" width=\"1328\" height=\"532\"><figcaption>New York Times 기사 제목</figcaption></figure><p>이 간증들을 보고 있자면 의문이 들 것이다. \"아니, 이렇게나 많은 여성들이 거의 전설의 엘릭서급 효과를 증언하는데, 도대체 왜 아직도 음지에서만 처방되는 것이며, FDA는 당장 승인하지 않고 뭐 하는 거야?\" (여성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남자들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었다.)</p><p>현 시점에서 폐경기 여성용 테스토스테론 처방이 공식적으로 승인된 국가는 호주,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뉴질랜드 등 일부 영연방 국가에 불과하다.</p><p>그 이유는 아마 <strong>임상 연구의 부족</strong>, 그리고 <strong>의학계에서 폐경기 증상이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다뤄져온 역사적 배경</strong>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호르몬 치료는 본질적으로 매우 민감한 분야다. 실제로 여성들의 후기를 보면 부작용에 대한 언급도 자주 등장한다. “턱에 수염이 난다”, “공격성이 높아졌다”, “언쟁이 잦아졌다”, “목소리가 굵어졌다”, “머리가 많이 빠진다” 등.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용자는 이런 부작용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 태도를 보였다. (‘그야 수염은 제거하면 되는 거니까...’)</p><p>한 40대 후반의 캘리포니아 사업가 여성은 아이들도 육아와 사업 3개를 병행 하면서 매일 너무 힘들었는데, 기준치 3배 이상 테스토스테론을 주입 받고 약효를 즉시 느꼈다고 한다. “마치 제2의 심장이 생긴 듯 했고, 활기가 넘친다”라고 말했다. 덕분에 박사 학위 과정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머리가 40% 빠졌는데, 현재는 30대 여성의 수치로 용량을 낮췄음에도 빠진 머리는 회복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후회는 없다고 한다.</p><p>경제활동 욕구가 강하고 구매력이 있는 중년 여성들이 테스토스테론을 찾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으며,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수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트랜스젠더 이슈와도 맞닿아 있고, 여성의 성욕이라는 주제도 기존 보수 집단에서는 금기시되어 왔지만, 여성의 자기실현 욕구만큼은 어쩌면 초당파적인지도 모르겠다.</p><p>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듯, 기존에 다소 보수적이던 FDA의 태도도 변하고 있는 듯하다. 올해 7월에는 ‘폐경 및 호르몬 대체요법’에 대한 전문가 패널을 개최했고, 트럼프가 지명한 FDA 위원장 마틴 매커리(Martin Makary)는 꽤나 <a href=\"https://www.politico.com/news/2025/07/27/fda-womens-health-funding-00477061\"><u>적극적인 관심</u></a>을 보이고 있다.&nbsp;</p><p>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공식 승인된 약이 신속히 나와 이 법적 공백을 메워야 할 것이다. 근시일 내에 보험 적용도 되고, 부작용이 없는 테스토스테론 제제가 나올 수 있을까? (그러면 여성이 실제 세상을 지배하게 될까?)</p><p></p>","date_published":"2025-11-09T03:43:25Z","language":"en","authors":[{"name":"Jiwon Kw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