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넷플릭스가 나을 뻔했다

활자가 고상하다는 착각에 대하여

나는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 자기계발서, 심리학 책, 외국어 학습용 텍스트가 내 독서의 대부분이다. 취향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선택된 편식이다. 예전엔 음악을 틀어놓고 책장을 넘기던 ‘순수 독서’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행동에 목적이 붙는다. 실용성 없는 독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나마 프랑스어나 독일어 소설을 가끔 펼치는 건 언어 학습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예외였다. 소설 한 권을 집어 들었고, 그 결과는 예상과 아주 달랐다. 도파민은 분출됐지만, 남은 건 피로감과 불쾌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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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본문과 상관 없는 책_

지난주, 그 강박을 조금이나마 흔들어보려 지인에게서 빌린 소설을 읽었다. 뜻밖에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몰입됐고, 독서를 하긴 했다. 그런데 이게 과연 ‘마음의 양식’일까?

소설은 중세 농노제 사회를 배경으로, 극단적 고통과 결핍 속에서 성장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다. 어머니는 근친 강간으로 임신을 하고, 낙태 시도 끝에 온갖 신체적 결함을 가진 주인공을 낳은 뒤 도망친다. 주인공은 미신적 신앙에 사로잡힌 아버지 밑에서 일상적인 폭력을 받으며 자란다. 당시 팽배했던 신앙관은 창조주의 무한한 사랑보다는 공포와 자기 처벌로 점철된 원시적 요소가 지배적었고, 말 그대로 중세적이었다. 주인공 또한 고통을 매개로 신과 타협하려 하며 정신승리를 일삼고, 산에 들어가 사는 눈먼 주술사 여성에게서 정서적 안정을 구한다. 그러나 결국 억압된 열등감은 폭발적 충동으로 이어지고, 그는 군주의 아들을 살해한다. 이후 군주의 입양으로 호화로운 삶을 누리지만, 점차 타락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문제는 대부분의 묘사가 지나치게 적나라하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신체적 결함과 노쇠한 할머니의 육체에 대한 불필요할만치 집요한 서술은 말초적 불쾌감을 불러 일으킨다. 정말 알고 싶지 않은, 13살이 되어도 빈 젖을 빠는 당혹스러운 장면이 반복되고, 그들의 괴상한 애정 교환 묘사는 거의 유사 성행위에 가깝다. **문명 사회의 금기를 다방면으로 정성스럽게 침범한다.** 읽으며 느낀 감정은 혐오, 당혹, 몰입, 그리고 죄책감이었다. 도대체 이걸 끝까지 읽고 있는 나란 인간은 뭐지?&nbsp;

등장인물의 내면 묘사도 내가 가진 상상력의 범위를 벗어난다. 예컨대 주인공은 잘생기고 건강한 군주의 아들을 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 “젖을 빠는 건 평온을 준다. 얘가 이렇게 멀쩡한 걸 보면, 얘 엄마 젖은 더 좋았겠지.”

그리고 그를 절벽에서 밀어 죽인다. 군주 아들의 시체 묘사도 눈알, 살점까지 그대로 이어진다.&nbsp;&nbsp;

군주의 신체적 특징 또한 누구도 알고 싶지 않은 은밀한 주름 단위로 이루어지며, 시종을 괴롭히는 장면 또한 아무런 억압 없이 펼쳐지고, 마치 ‘문학’을 핑계 삼아 가학성의 경계를 실험하는 듯했다. 현대 표현의 자유가 여기까지 와야 했는지는 잠시 생각하게 된다. 모두 인간의 낮고 억압된 본능을 악의 없이, 그러나 의도적으로 펼쳐 보인다.&nbsp;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감정적 소진을 유발했다. 비록 몰입은 잘 된다 한들, 이는 저질 도파민 때문이고, 글로 된 고어물과 다를 바 없는데 과연 몇 시간 틱톡을 보는 것과 결과적으로 무슨 질적인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 글을 읽으며 내 심리 상태를 예민하게 관찰해야 했다.

‘독서가 무조건 좋다’는 환상은 이 책에서 무너졌다. 고상한 양식도, 성장의 발판도 아니었다. 오히려 철저히 _중세적인 감각의 회귀_였다. 독서란 도피처이긴 하다. **하지만 어떤 책은 도망쳤던 현실보다 더 끔찍하다.**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것은 몇 단어—_alabaster_, _ewe_, _crag_ 정도, 그리고 노쇠한 인물의 육체를 묘사하는 방식에 대한 이상한 통찰.

앞으로 누가 “소설 즐겨 읽어요”라고 말하면, 무슨 책을 읽는지 꼭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당분간, 21세기에 쓰여진 소설을 피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