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삶

‘의사결정이 곧 존재의 무게가 되는’ 어른의 현실이었다.

어른의 삶
Photo by Romain Dancre / Unsplash

생애 첫 집을 샀다. 우리 둘 다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기쁨보다 먼저 밀려든 감정은 압도적인 스트레스였다. 대출을 받긴 했지만, 가용 가능한 현금의 큰 부분이 집에 투입되었고, 양가의 도움 없이 전적으로 우리의 자력으로 진행한 일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복잡한 일이나 힘 쓰는 일은 남자의 몫’이라는 신념을 내면화한 채 살아왔다. 행정 처리나 숫자 계산은 내 영역이 아니며, 여자로서 비교우위가 있는 다른 가치에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하기에, 관련된 준비는 전무했다. 하지만 외국인 배우자를 만나면서 그 역할이 나에게로 이양되었다. 결국, 내가 해야만 했다.

물질적 지원이나 정서적 지지가 있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부담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지만, 막상 현실과 마주하자 심리적 방어기제가 거의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예민해졌다. 대출을 얼마나 받아야 할지, 유동성은 어느 정도 확보해야 할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은 단순한 실행을 넘어 지속적인 판단과 책임이 수반되는 인지적 과업이었다.

기댈 수 있는 구조가 없는 상황에서, 단 하나의 오류조차 생존 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은, 비록 이성적으로는 터무니없는 상상이었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 실질적인 위기로 감지되었다.

내가 길에 나앉는 다는 것은 객관적으로는 발생 확률이 희박한 시나리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공포에 전신이 잠식당하는 경험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불안의 근원을 탐색하는 계기는 내게 있어 또 한번의 성장 기회가 되었다.

계약을 마치자마자, 마치 연쇄 반응처럼 후속 과제들이 쏟아졌다. 전세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몇주 밤을 뒤척였고, 가까스로 세입자를 구했을 때는 잠시 안도했으나, 새로운 걱정거리들은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본래 외부 스트레스에 대해 회복력이 높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존 그 자체에 대한 원초적인 불안이 내부에서 떠올랐다.

“이 와중에 대출이 거절되면? 혹은 내가 사고로 일을 못 하게 되면? 이미 구입한 가전과 가구는 어떻게 하지? 계약이 사기였다면, 이 많은 짐을 들고 어디로 가야 하나?” 의식은 끊임없이 재난 시뮬레이션을 반복했다.

어릴 때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어른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바로 그 어른이었다. 모른 척 잠들어도, 아침에 눈을 뜨면 현실은 그대로였다.  심지어 도망치고자 하는 충동조차도 절차와 비용을 동반했다. 이 시점에서 모든 걸 포기한다면, 수천만 원의 계약금은 물론 시공비와 배송비, 각종 설비 설치 일정까지 전면 재조정하고, 단기간에 새로 들어갈 곳을 구해야 했다. 진행은 막막하고, 중단은 더 막막했다.

이것은 단순한 불편이나 번거로움을 넘어, ‘의사결정이 곧 존재의 무게가 되는’ 어른의 현실이었다. 마치 늪에 빠진 느낌이었다. 정지하면 가라앉고, 버둥거리면 지치는 어른의 늪 속에서, 나는 무거운 걸음을 끊임없이 옮겨야 했다.

단지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이 이토록 벅찬 일일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 하면서도 그 결과를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일종의 실존적 긴장감을 유발한다. 때로는 설명 불가능한 불안이, 합리적 사고의 배후를 지속적으로 압박하기도 한다. 내가 일상을 철저하게 통제하려는 이유 또한, 어쩌면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심리적 조치일 것이다.

다행히 나는 삶에서 몇 차례의 중요한 고비를 지나오며 운이 좋은 편이라는 자각을 해왔다.

“저 아무것도 모르는데,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이것은 내 생존 전략이자, 관계 맺기의 방식이다. 이러한 태도로 많은 이들의 선의를 경험했고, 나 역시 기회가 될 때마다 선의를 실천하며 그 흐름을 강화했다. 아마 그것이 지금까지의 나를 지탱해온 보이지 않는 구조였을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예상하지 못한 도움과 조언 덕분에, 결국 일은 흘러갔다.

물론, 이것이 내가 상상하던 ‘정상적인 어른의 삶’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복잡한 행정 업무를 회피하고 싶고,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아웃소싱할 계획을 품고 있다.

어른의 삶이란, 어느 날 명확히 선언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불안을 안고 닥치는 일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타인이 대신해줄 수 없는 선택의 순간들 앞에서, 스스로를 신뢰하고 견디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