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걸릴 언어를 50년 만에 만든 집념의 언어 이야기
제가 전공하지도 않은 네덜란드어 책을 두 권 번역할 수 있었던 데에는 많은 우연이 작용했습니다.
사실 소수 언어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탓에, 독일어 전공자로서 유리한 입장에 있으면서도 회피했던 언어 목록에 네덜란드어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에서 가장 신생어이자 네덜란드어의 크레올에 속하는 소수 중의 소수 언어 아프리칸스어를 할 줄 알았던 것이 번역의 매개가 됐습니다. (물론 독일어 전공을 했다는 것이 더 근본적인 이유긴 하지만요.)
까다로운 언어 취향을 가진 제가 매력을 느낀 아프리칸스어는 오해도 많이 받는 언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아프리칸스어의 역사를 훑어보며 몇 가지 오해를 풀고, 흥미로운 지점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원과 특징
아프리칸스어는 17세기 네덜란드어에서 출발한 언어입니다. 유럽 국가들이 항해술을 익혀 새로운 무역로를 개척하고 식민지를 만들던 시기, 아프리카 최남단에 네덜란드인들이 정착하면서 시작됐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문법이 상당히 단순화되고 형태가 크게 변형됐습니다. 동사 변화가 거의 사라지고, 성(性) 구분이 없어지는 등 구조적으로 훨씬 가벼워졌죠. 이 과정을 크레올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안 그래도 복잡도 순으로 독일어 >>>> 네덜란드어였는데, 이제 그보다 한층 쉬운 아프리칸스어가 된 셈입니다.

노예로 유입된 말레이·인도네시아 계열 언어, 그리고 현지 코이산어 등과 섞이면서 유럽 본토 네덜란드어와는 꽤 다른 특징도 생겼어요. 예를 들어 ‘바나나’는 대부분 언어에서 banana(🇬🇧), Banane(🇩🇪), banane(🇫🇷), banaan(🇳🇱), banana(🇮🇹), plátano(🇪🇸) 식으로 비슷하게 생겼지만, 아프리칸스어로는 piesang입니다. 말레이어 pisang에서 왔어요. ‘satay’도 sosatie 같은 형태로 쓰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기존 네덜란드어와는 별개의 독립적인 언어로 자리 잡게 됩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 하나를 짚고 넘어가려 해요. 점차 이곳으로 이주해 정착한 유럽인들, 즉 아프리카너(Afrikaner, 남아프리카에 정착한 네덜란드계 백인과 그 후손들을 가리키는 말)들은 유럽 본토로부터 점점 외면당했습니다. 당시엔 지금 같이 비행기도 없었고, 네덜란드 본국은 이미 쇠락한 상태라 제대로 된 지원을 해줄 형편이 아니었어요.
조상이 유럽인이고 피부색이 백인이지만, 남아프리카 땅에 정착한 이들의 정체성은 아프리카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그러면 “여기 살던 네이티브 아프리카인들을 쫓아낸 거 아니냐?”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 생각보다 아프리카 종족들끼리도 치열하게 싸워 왔습니다. 다양한 그룹들이 이주해 온 역사라서 피부색 하나만으로 ‘주인’을 따지기는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