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와의 커뮤니케이션

엔지니어와의 커뮤니케이션
Photo by Bennie Bates / Unsplash

본인에게는 바쁜 사람의 시간을 뺏는 것을 매우 불편해하는 특성이 있다. '폐를 끼치지 말자'는 생각이 어린 시절부터 심어진 탓일 수도 있고, 대학원생 시절 스스로 과도한 시간 강박을 가져봤던 경험 탓일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테크니컬 라이터로 일하며 가장 익숙해져야 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바쁜 엔지니어분들의 시간을 뺏는 일이었다. 초반에는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까지 더해져 사소한 질문을 하나 하는 데에도 안절부절못하며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결 수월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상대의 시간을 최대한 절약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항상 업무를 위한 소통 방식의 최적화를 위해 신경쓰고 있다. 아래에 이와 관련한 몇 가지 사항을 정리하였다.

*실제 만나 본 수십명의 엔지니어들은 국적, 성별, 나이, 전공 불문 단 한명도 빠짐없이 세상 친절하셨으며, 이 모든 노력은 본인의 평정심 유지를 위해서임을 밝힌다.

엄밀함의 정도

라이프니츠가 집필한 하노버 가문 연대기는 지구의 탄생에서 시작된다. 학자의 집요하고 엄밀한 세계관에서는 일가의 족보를 쓸 때조차 지질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엔지니어분들도 어떤 것을 설명하시는 데 있어서 비슷한 엄밀함을 지닌 경우가 많은데, 이를 전부 그대로 수용하다보면 결국 남는 것은 사용성이 떨어지는 정직하고 건조한 팩트 뿐이다. 이런 경우 설명 시간에 비해 수확이 적어 시성비가 떨어지게 된다. 대화가 너무 깊은 영역으로 빠지지 않도록 요구 사항을 전달하는 것이 좋다.

독자 수준 설정 

내가 만난 엔지니어분들은 대체로 선량한 문과인의 눈높이를 가늠하지 못하신다. 특히 이공계 박사 학위를 소지하신 분들이 그런 경우가 많다. (한번은 그런 분께서 정말 악의 없이 '그것은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학부 전공부터 해야 알 수 있는 것'이라 답해주셨는데, 좀 더 어린 신입 엔지니어분은 답을 주셨다.)

불필요한 시간 낭비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예상 독자 수준과 글의 깊이를 미리 생각해서 전달해야 한다. 선량한 문과인의 대변자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되뇌곤 한다.

구체적인 질문하기

이것은 초반에 파악한 사실인데, 입력값이 있어야 출력값이 나오듯 최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답변하는 엔지니어분들 입장에서도 편하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엔지니어분께 바로 질문하기 위해 미팅을 진행하는 경우도 봤는데, 조악하더라도 글의 구조는 갖춰 놓고 논리적 공백이나 결여된 정보 등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질문을 준비해야 마음이 한결 편하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내용이 필요한지, 무엇이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등을 파악해야 하는데, 질문자가 완전한 백지 상태라면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이라도 잡기 위해 준비를 하고 최대한의 메타 인지력을 발휘해야 한다.

비대면 및 비동시적 소통

회의를 하고 나면 본래 업무로 돌아갈 때 문맥 전환Context Switching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이므로 불필요한 미팅은 가급적 지양하고자 한다. 반드시 대면 회의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라면 비대면으로 자료를 전달하고, 상대방이 편리한 시간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결론

테크니컬 라이터로 일한 몇 년 동안 눈치가 늘었고, 주체적인 정보 획득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으며, 시간을 뺏어도 항상 친절하게 협조해주신 엔지니어분들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인 선입관이 생겼다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