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읽히는 글은 무엇이 다른가 — ‘글의 밀도’에 대하여
현대 사회에서 글쓰기는 쉽지 않습니다. 분량 자체야 토큰을 쏟아내면 얼마든지 늘릴 수 있지만, 오늘날의 글쓰기는 독자의 집중력이라는 희소 자원을 두고 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라디오 드라마가 성행하던 시절, 사람들은 소리만으로도 등장인물의 미묘한 심리와 희로애락에 깊이 몰입했습니다. 반면 지금은 어떤가요. HD 화면 속에서 화려한 CG와 천재지변이 펼쳐져도, 현대인은 쉽게 감흥을 느끼지 못합니다.자극의 역치는 높아졌고, 인지 자원은 희귀해졌습니다. 독자는 자신에게 효용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미련 없이 떠납니다.
그래서 제가 글을 쓸 때 가장 집요하게 붙잡는 편집자적 기준은 바로 ‘글의 밀도’입니다.헐렁한 문장들이 모여 있는 글은 밀도가 낮습니다. 시간을 들여 읽어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글의 밀도를 높이는 과정을 종종 ‘스티브 잡스의 엘리베이터 해고’에 비유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직원에게 업무 내용과 기여도를 묻고, 답변이 설득력이 없으면 바로 해고했다는 일화처럼 말이죠.
제가 글을 편집할 때 사용하는 판단 방식과 정확히 닮아 있습니다.
첫째, 모든 단어는 문장 안에서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합니다. 불필요한 조사나 관성적으로 반복되는 수식어부터 과감히 덜어냅니다.
둘째, 모든 문장도 글 전체에서의 존재 가치를 치열하게 증명해야 합니다. 이 문장은 정보를 전달하는가, 논리를 잇는 가교인가, 논지를 강화하는 근거인가, 아니면 정서적 울림을 주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문장은 남길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독자에 따라 의도가 100% 전달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 자신은, 각 문장이 왜 그 자리에 존재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글을 다듬다 보면 공들여 쓴 비유나 단어에 애착이 생겨 놓기 힘든 순간도 옵니다. 저 역시 통번역을 전공하며 자주 겪었던 고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흐름을 끊는다면, 대의를 위해 버리는 것이 AI 시대의 내러티브 편집자가 갖춰야 할 핵심 역량입니다.
결국 끝까지 읽히는 글을 만드는 것은 문장을 추가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판단함으로써 글의 밀도를 끌어올리는 식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