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무형의 이득에 대하여: 미세한 사회적 텐션 관리의 기술

친절

굳이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무형의 이득에 대하여: 미세한 사회적 텐션 관리의 기술
Photo by Romain Girot / Unsplash

내가 아끼는 동생이 강남 한복판에서 낯선 남성에게 번호를 물어봐 차갑게 거절했다는 무용담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아마도 쿨하고 당당한 여성처럼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잠시 멈춰서, 진정한 멋진 여성이라면 상황을 종결하고 불필요한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어떻게 접근할지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남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데에서 오는 이점은 웬만한 손해를 상회한다.

이 문장은 심리학적으로 접근할 때, 단순히 도덕적인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제3자로서 관찰자의 시선으로 한 발짝 물러서서 이런 상황을 지켜볼 때면, 불필요한 마찰을 회피하는 것이 가장 실용적이고 영리한 생존 전략임을 깨닫게 된다.


자기 인식: 도파민의 미세한 파동을 인지하라

일단 스스로에게 정직해야 한다. 모르는 사람이 내 번호를 물어봤다. 나는 지금 얼마나 들떴는가? 이를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소크라테스도 자신을 알라고 하였다. 감정이 얽히다보면 결국 상대의 페이스에 말리기 때문이다. 남의 인정에 동요하지 않으면 정서적 안정감을 유지하며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처신할 수 있다.

도파민이 분비되며 순간적으로 기분이 고양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특히 진화심리학적으로, 이성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기에 약간의 쾌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도파민의 파동을 인지하되, 그것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 된다.

문제는 감정의 잔여가 오래 남아 자기 통제력을 흐리게 만들 때다. 평소 자존감을 높이는 행동들을 꾸준히 쌓아두면, 남의 평가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기반이 생긴다.

과도하게 ‘싫은’ 반응을 하는 것도 본질적으로 비슷한 메커니즘이다. 기분이 좋아진 사실이 스스로 의식되어 불편해질 때, 일부러 더 차갑게 구는 방어적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반동 형성(Reaction Formation)’이다. 내면의 긍정적 감정이나 인정 욕구를 부인하기 위해 오히려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이조차도 “아, 지금 내가 인정 욕구를 부인하는 중이구나”라고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진심으로 불쾌할 때

반면, 상대가 정말 취향에 정반대이고 본인의 기준에 ‘완전 미달’인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 순간적으로 “내가 우스워 보이나?”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욱하는 감정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모욕을 주는 것이 현명할까?

여기서 우리는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잠재적 위험성을 따져봐야 한다. 생판 모르는 상대에 대한 정보가 '제로'라는 것은, 그가 분노 조절 장애를 갖고 있는지, 열등감 컴플렉스로 가득한지, 아니면 더 극단적으로 위험한 것–장기 밀매 등–에 연루되었는지 등의 여부도 전혀 모른다는 뜻이다. 정보가 비대칭적인 상황에서, 상대를 자극하는 것은 불필요한 '돌발 위험(Idiosyncratic Risk)'을 감수하는 행위가 된다.


긴장 완화를 위한 전략

우리가 결국 이루고자 하는 것은 '최대한 빨리, 상호 기분 좋은 상태로 각자 갈 길을 가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정보가 없는 이 전형적인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돌발 상황을 방지하려면, 일단 무조건 긴장의 기류를 없애는 것이 우선이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감사나 칭찬과 같은 '긍정적 쿠션어'는 상대방의 수용 의사를 높이는 기능을 한다.

경계성 인격 장애, 나르시시스트 모두 거절에 격하게 반응한다는 특징이 있다. 모두를 이렇게 취급하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친절은 인류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인 동시에, 위험을 현저히 낮춰주는 기술이기도 하다. 거의 잃을 것이 없는 접근이다.

"싫은데요?"라는 직설적인 거절 대신, 처음에는 감사의 말을 담아 긴장도를 낮출 수있다. 쿠션어는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긴장을 낮추는 가장 쉬운 기술이다.

그 뒤에는 상대가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외부 귀인(External Attribution)'이 가능한 사유를 하나 추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 좋으신 분이라 확신하지만, 제가 지금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은 혼자 다닐 일이 없지만, 작년에만 나는 실제 두번 이렇게 말 했다.  “좋으신 분”이라는 말이 도저히 안 나오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는 최소한 거절의 이유를 ‘상대방의 가치 부족’이 아니라, ‘나의 현재 상황(마음의 여유 없음)’에 귀인시켜, 상대의 자존감 손상을 줄일 수 있다.


긍정 신호의 미끼를 던지지 않는 외줄타기

상대가 넉살 좋게 “제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같은 질문을 던질 때가 가장 곤란한 순간이다. 거짓말을 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긍정 신호를 줘서 착각을 유발해도 안 되며, 동시에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싶지도 않다. 말 그대로 ‘사회적 외줄타기(Social Tightrope Walk)’에 가깝다.

상대가 착각을 해버리면 상호작용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진다. 끝까지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되, ‘시간적 제약’이라는 명백한 외부 요인을 근거로 재빨리 자리를 뜨는 것이 최선이다. 이는 대화의 맥락을 급하게 종료시키고, 여운을 남기지 않으며, 상대에게 더 이상 ‘사회적 단서(Social Cues)’를 해석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다.

여운은 해석을 부른다. 해석은 착각을 부른다. 착각은 리스크다.


무관심으로 상대의 흥미를 소멸시키다

20대 초반, 프랑스의 리옹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중년 남성이 오토바이를 타고 끈질기게 쫓아왔다. 처음엔 긴가민가했지만, 내가 멈추자 그도 멈춰섰다. 배가 볼록 나왔고, 뾰족한 요정 구두를 신고 있던 그는 마침내 나를 붙잡고 난데없이 청혼을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집도 있고 돈도 많다고 했다.

다들 바캉스를 떠나 여름 리옹의 거리는 한산하다. 이에 위기감과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나는 철저한 포커 페이스를 유지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공포의 에너지를 읽을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단 한 치의 '역겨움'이나 '불쾌함'의 감정도 전달하지 않았다.

일부러 생각 자체를 깊게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눈만 더럽게 높네?와 같은 생각에 빠지게 되면 불쾌함이 얼굴에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절함의 가면을 쓴 채 시종일관 미지근한 태도로 시간을 끌었다.

이것이 심리학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인간의 '추구 행동(Pursuit Behavior)'은 상대의 반응, 즉 '강화물(Reinforcer)'에 의해 유지된다. 상대방이 거부하면 '정복욕'이 자극되어 추구가 강화되고, 상대방이 호응하면 '긍정적 만족감'이 충족되어 추구가 지속된다.

하지만 나의 전략은 둘 다 아니었다. 거부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흥미를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상황에 대한 ‘지루한 중립’을 유지하며 몇 시간을 끌었다. 일종의 '소거(Extinction)' 과정이다. 흥미를 잃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상대의 노력이 아무런 감정적 보상도 가져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그 남성은 지쳤다. 그가 내게 던진 마지막 말은 "Tu es difficile (너 정말 까다롭구나)."였다.

'까다롭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내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태워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쾌함이 아닌 '지루한 까다로움'으로 인식되자, 그의 추구 동기는 소멸되었고, 그는 폭발이나 원한 없이 스스로 흥미를 잃고 돌아갔다. 결과적으로 최소한의 감정적 손실로 상황을 종결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건 고매한 인품의 문제가 아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불필요한 사회적 마찰과 잠재적 위험을 줄이는, 가장 비용 대비 효율 좋은 전략에 가깝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냉정한 전략이 결국 서로의 평화를 지키는 가장 온건한 방식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