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질투, 욕망의 이정표

질투
Photo by Igor Kasalovic / Unsplash

주체 못 하게 불편해하는 것이 느껴지지만,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 억지 웃음을 짓는 사람을 마주한 적 있는가? 혹은 친하다고 믿었던 친구가 질투 섞인 뒷담화를 했다는 소문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적은? 아니면, 그런 감정을 숨기고 애써 무심한 척했던 주체가 바로 나였던 적은 없었을까?

질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감정이다. 심지어 스스로조차 인지하지 못할 만큼 은밀하고 교묘하게 스며든다. 겉으론 쿨한 척, 응원하는 척하지만 마음속에선 비교와 열패감이 들끓는다. 질투는 본능이다. 하지만 본능이라고 해서 무해한 것은 아니다.


질투는 다루지 않으면 점차 마음의 한 부분을 갉아먹는다. 처음엔 내면의 소란으로 시작되지만, 곧 표면으로 번져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수군거림, 비꼼, 냉소, 불필요한 경쟁심 등, 그 대부분은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부산물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왜곡된 감정의 표출을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s)라 부른다. 자존감이 낮거나 감정을 직면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이 방어기제는 더 정교하고 비틀린 방식으로 작동한다.

예컨대 반동 형성(reaction formation)은 자기 욕망과 정반대의 태도를 취함으로써 감정을 억누르는 방식이다. “난 저런 거 부럽지 않아”라는 말은 종종 그 반대를 의미한다.
탈가치화(devaluation)는 상대의 노력이나 성취를 평가절하함으로써 자기 위안을 얻는 전략이다. “쟤는 원래 잘 살잖아”, “속물이야”, “나도 그 환경이면 더 잘했지” 같은 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투사(projection)는 내 안의 불편한 감정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이다. “쟤 왜 저렇게 잘난 척이야?”라는 말은, 실은 ‘나도 인정받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를 외부로 향하게 만든 결과일 수 있다.

이처럼 질투는 개인의 심리적 불균형에서 기인하지만, 그 영향은 관계의 맥락 속에서 사회적으로 확산된다. 때로는 관계를 흐리고, 때로는 공동체 안에서 ‘정서적 미세먼지’처럼 퍼져나간다.


하지만 질투라는 감정에도 존재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질투는 내면의 결핍을 알려주는 신호이자, 때론 성장의 동력이 된다. 누군가를 보며 마음이 찌릿할 때, 그 감정을 덮거나 회피하지 말고 자기성찰을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이 부러운 걸까?”
“그 사람이 가진 어떤 것이 내 안의 어떤 결핍을 건드리는 걸까?”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은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 안에는 당신이 아직 사랑하지 못한 당신의 일부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낄 때, 그 안에는 내가 되고 싶었던 나의 그림자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질투라는 감정에 자주 흔들렸다. 그리고 다양한 질투의 추한 얼굴들을 ‘질투’로 인식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질투의 대상이 된 적도 많았다. (이 어리석은 것들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몰랐던 것이다.)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쟁하는 법은 배웠지만, 감정을 소화하는 법은 배운 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단순한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그저 다른 여정에 있을 뿐이라는 것. 누군가는 안정적인 가정에서 태어나고, 누군가는 혼란 속에서 출발한다. 우리 각자의 삶은 서로 다른 시나리오로 설계된 게임과도 같다. 상대는 다른 레벨의 미션을 수행 중일 뿐이며, 나는 나만의 여정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은 누군가의 냉소적인 발언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언행을 보면, 상대가 아직 자기 자신과 화해하지 못했음을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을 맥락을 이해하려 애쓴다. 진정한 연민과 공감은 이해에서 비롯된다. 이는 도량을 넓게 보이기 위한 몸짓이 아니라, 내 안에 불필요한 감정을 머물게 하지 않기 위한 자기 보호이자 성숙의 방식이다.


그리고 나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을 준, 아주 단순한 사실이 있다. 출신이 어디든, 성격이 얼마나 특이하든 간에, 인간은 누구나 오장육부와 뇌를 가진 생물학적 존재로 태어난다. 본능과 욕구, 한계를 공유한다. 아무리 큰 집에 살아도 한 번에 한 방에서만 잘 수 있고,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져 산해진미를 누려도 하루에 섭취할 수 있는 양은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24시간이 주어진다. 그 시간을 어떻게 통제하고, 어떻게 써내려갈지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질투는 좌표

질투는 사라져야 할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의 좌표를 알려주는 이정표다. 그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정직하게 직면하고, 잘 소화할 수 있다면, 질투는 더 나은 나로 향하는 자극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매일 같은 선택 앞에 놓인다. 내 그림자를 타인에게 투사하며 비난 속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그 그림자를 직면하며 나 자신을 조금씩 성장시켜 나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