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도 공부에 몰입할 수 있을까

집중력 소멸의 시대, 몰입을 그리워하다

직장인도 공부에 몰입할 수 있을까
Photo by Maksym Tymchyk 🇺🇦 / Unsplash

지금 생각하면 대학생 때 프랑스어 시험 합격을 하면 프랑스에 보내주겠다던 부모님께 너무 감사하다. 나는 당시 2개월 정도만에 B1에 합격하여 리옹에 다녀왔고, 그 덕분에 프랑스어 공부의 초석을 쌓을 수 있었다. (물론 부모님이 "외국어를 배우면 효자동의 집을 주겠다"고 했던 친구도 있었지만, 그녀는 큰 관심이 없어보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문법책과 단어장을 오가며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던 시절. 내가 가장 행복한 ‘몰입’의 상태에 들어갔던 순간은 언어 공부를 할 때였다. 고등학생 때는 입시라는 동기가 있었고, 대학원 때는 “최고의 통번역사”라는 목표가 있었다. 거창하진 않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도전과 능력이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 시간 감각은 사라지고 활동 자체가 보상이 된다. 문법 문제를 풀어내고, 새로운 단어를 익힐 때마다 뇌가 보상회로를 활성화하며 자연스럽게 더 깊이 빠져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장기 집중력은 끊임없이 방해받고, 예전처럼 긴 몰입의 순간이 오지 않는다. 새벽 1 시간, 퇴근 후 1-2시간, 주말. 그 한정된 시간 속에서 언어 공부를 하려니, 몰입은커녕 늘 피로와의 싸움이다.

성인이 된 나에게 지금 누군가 보상을 제안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나는 유인 설정과 동기부여를 스스로해야 하는 상태에 놓여있다.

동기의 두 축

동기부여는 ‘유인’에서 비롯되며,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외부적 유인

어릴 때는 부모님이 제공해주는 보상이나, 학교에서 주는 상·장학금 같은 제도적 유인이 존재한다. 그러나 평범한 직장인이 된 이후에는 이런 외부적 유인은 거의 사라지고, 일단 높아진 생활 수준으로 인해 반응하는 보상의 기준이 훨씬 높아진다.

외국어를 잘해서 열리는 새로운 기회가 외부적 유인이 될 수도 있지만, 학습 곡선 초반에 있는 사람에게 그 가능성은 여전히 막연하고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비전공자임에도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책을 번역한 경험이 있다. 기회는 예상치 못하게 찾아왔다.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성사될 수 있었다.

  1. 내부적 유인
    • 낭만화: "공부하는 나", "외국어를 잘 하는 나"를 대상화하거나, 감성 공부 사진을 찍거나, 유창하게 말하는 미래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극을 받는다.
    • 탁월함 자체 추구하기: 보상이나 성과가 없어도 무언가에 몰두해 ‘잘하게 되는 것’ 그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기는 고차원적인 유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탁월성(areté)’처럼, 그것은 그 자체로 빛난다.

나는 자기 절제를 꽤 잘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몰입이 잘 오지 않는 상태에서의 언어 공부는 더 큰 자기 규율과 정신력을 요구한다. 유인 기제를 잘 활용하면 공부 과정이 약간이나마 수월해질 수 있다.

루틴과 습관의 힘

보상만큼 중요한 것이 습관과 루틴이다. 인간은 의식적인 자기 통제보다 자동화된 행동에 훨씬 더 오래 의존한다. 습관으로 만들어 두면 ‘오토파일럿 모드’에 맡겨 버릴 수 있다. 매번 결심과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공부가 자연스럽게 생활에 녹아드는 것이다.

이것은 의지력 보존(willpower conservation) 전략이다. 사람의 의지는 유한한 자원이기 때문에, 매번 결정을 내리는 대신 습관이 대신 작동하면 피로가 크게 줄어든다. 지금 나에게는 기상 직후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가는 루틴이 있다. 덕분에 새벽에는 무조건, 조금이라도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게 된다.

퇴근 후에는 또 다르다. 하루 종일 기가 빨린 상태에서 바로 딱딱한 텍스트를 읽으려 하면 집중이 잘 안 된다. 이럴 때는 외국어 뇌를 ‘예열’하는 루틴을 쓴다. 흥미 있는 콘텐츠로 접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현지 유튜버 영상을 분석하거나, 외국어 밈을 찾아보거나, 내 당장의 관심 정보를 검색하거나(예: 여성 호르몬 주기에 따른 열량 소모 차이), 구글 지도에서 현지 식당의 저평가 리뷰를 읽는 식이다. 이런 가벼운 몰입 지점은 언어 습득의 도화선이 된다.


"몰입" 상태 되찾기는 최근 나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다. 어떻게 다시 몰입 상태를 만들 수 있을까? 지금은 예전처럼 몇 시간을 통째로 잊는 몰입은 잘 안 온다. 하지만 짧게 찾아오는 몰입의 순간들을 파악하고, 그 패턴을 찾아 극대화하려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