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필수 기념품
남아공에 가게 된다면, 아니면 영연방(Commonwealth) 국가를 방문했을 때 남아공 수입품을 발견한다면, 꼭 시도해보면 좋은 품목을 정리했다.
빌통
빌통(Biltong)은 남아공을 방문했을 때 반드시 시도해봐야 하는 식품이다.
빌통은 육포가 아니다. 말린 스테이크다. 남아공 사람 앞에서 빌통을 육포(Jerky)에 비교하는 것은 문화적인 실례에 준하는 것이고, 상대에 따라 기분이 크게 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아공 사람은 이미 수많은 도발을 겪었기에 정중하게 당신의 무지를 정정해줄 것이다. 빌통은 생고기에 절대 열을 가하지 않고 찬 바람으로 건조한다. 그리고 설탕이나 양념을 사용하지 않고 식초, 설탕, 후추로 큐어링하기 때문에 단순 육포에 비해 더 건강하고, 우월한 음식이라고 여겨진다.
‘육포류’라서 안타깝게도 한국 국내 반입이 금지되는데, 심지어는 수입도 안 된다. 대한민국 식품의약품안전청이 허용한 육포 수입 국가 목록에 남아공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접 만드는 과정이 어렵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는 빌통을 먹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다. 그래서 몇 안 되는 국내 빌통 판매자들도 자체 제조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언젠가 영연방 중 한 곳의 빌통이 국내에 들어온다면(왠지 남아공이 수입 허가를 받는 것 보다 더 현실적일 것 같다), 단순 와인 안주 취급을 할 것이 아니라 마트 정육 코너 옆에 작은 판매대를 하나 내어주는 것이 존중을 표하는 마땅한 방법일 것이다. 실제 남아공 마트에서는 정육점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빌통의 국내 생산이 더 어려운 이유는, 한국의 기후가 빌통 제조에 이상적인 조건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필요한 빌통에게 일년 중 습한 날이 꽤 많은 한국은 결코 적합한 장소가 아니다. 국내 빌통 생산자들이 이러한 수고를 들이면서까지 빌통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이익을 위해서라고 하기엔 감수해야하는 번거로움이 너무 크다. 대한민국 국민의 견문을 넓히고, 국내 거주 남아공 사람들의 향수를 달래주려는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잠깐 생각하기도 했다.
드루어보르스
예전에 로날드와 친구였던 시절, 종종 연락을 주고 받곤 했었다. 언젠가 '이게 뭔지 맞춰보라'며 사진을 하나 보내온 적이 있다. 사진 속에는 나뭇가지로 보이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아프리카 부족들이 구강위생 도구로 사용하는 막대기인 치목(齒木)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것이 바로 드루어보르스(Droëwors)였다.

드루어보르스는 말린 소세지라는 뜻이다. 쉽게 건조되도록 얇게 잘라서, 마치 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에게 주던 개껌 같이 생기기도 했다. 실제로는 소금 함량이 좀 높은 편이라 반려견 급여로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빌통을 취급하는 곳이라면 무조건 드루어보르스도 판매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건조 정도에 따라 촉촉하고 부드러운 것도 있고, 문방구에 팔던 ‘숏다리’같이 건조하고 딱딱한 것도 있다.
남아공 사람들의 건강 상식에는 '촉촉한 드루어보르스는 지방 함량이 높고, 건조한 것이 건강에 낫다'라는 내용이 있다. 무엇이 더 맛있을 지 짐작이 갈 것이다.
결론
모든 나라에는 자국만의 육포가 있다. 싱가포르의 비첸향(Bee Cheng Hiang), 달달하고 덜 자극적인 한국식 육포, 이탈리아의 살라미(Salami), 독일의 되르플라이쉬(Dörrfleisch), 그리고 남아공의 빌통. 나는 사실 육포를 자주 먹지 않기 때문에 어느 나라 육포든 전부 비슷비슷하지만, 빌통의 우월성에 대한 남아공인들의 자부심을 이해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선제적으로 존중을 표할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참고로 편의상 드루어보르스를 빌통의 하위 개념으로 배치했지만, 실제 위계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러스크
많은 사람들이 ‘러스크’라고 하면 튀겨서 설탕을 입힌 식빵 조각을 떠올릴 것이다. 아프리칸스어 이름은 Beskuit인데, 17세기에 네덜란드인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오랜 항해를 견딜 수 있도록 두 번 구워 딱딱하게 만든 빵 Beschuit가 아프리카 기후에 맞게 현지화된 것이다. 그리고 버터밀크(Karringmelk)를 넣는다는 특징이 있다. 참고로 버터밀크는 버터 생산의 부산물로, 이름과는 달리 저지방이며 영양적 가치도 높다. 남아공 마트에서는 항상 유제품 칸에서 볼 수 있다.

그냥 먹으면 턱이 나갈 수 있지만, 일부러 딱딱하게 먹는 사람들도 있다(내 이야기다). 공식 레시피가 존재하는 라면을 생으로 부숴서 먹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어쨌든 커피에 적셔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작년 남아공 방문 당시 나는 아직 과잉 절제를 하던 중이었어서, 딱 봐도 설탕과 밀가루가 압축되어 칼로리 밀도도 높고 중독성도 강해보이는 러스크를 먹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참고로 나는 수년간 디저트라는 개념을 외면하며 살았고, 한 때는 그 억압된 식욕이 컬리플라워와 브로콜리로 향했을 정도로 보상 체계가 왜곡된 상태였다.
참고로 러스크는 디저트가 아니라 아침 식사지만, 나는 단맛이 나는 탄수화물은 대체로 디저트 취급을 한다.
디저트는 여성의 3대 본능 중 하나로, 아무리 외면하고 길들이더라도, 수천년간 깊숙이 뿌리 내린 강력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슈퍼마켓에서 무설탕 & 무밀가루 버전을 봤을 때 내가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근위대가 손 흔드는 어린이들을 무시하며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듯, 나 또한 러스크에 대한 본능적인 호기심을 힘겹게 외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건강한' 버전이 존재한다는 것은, 러스크에 대한 나의 호기심과 디저트 욕구를 해소시킬 수 있음을 의미했다. 건강 디저트는 오랫동안 '진짜 디저트'의 망령 취급을 받아 왔지만, 최근에는 퀄리티가 좋아져서 섭취했을 때 만족감이 결코 부족하지 않은 편이다. (물론 스테비아 등 감미료는 화학적 작용에 있어서 설탕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설탕을 오래 안 먹다보면 맛을 까먹는다.)



건조한 편인 시리얼 위트빅스(Weet-bix)를 기준으로 보자면 러스크는 더 촉촉하지만, 커피에 적셔서 먹는 목적으로 생산되었으므로 밀도가 높고 두께 자체가 묵직해서 씹는 데 상당한 노동이 요구된다. 굳이 적셔서 먹지 않더라도 커피와 잘 어울린다.
내가 고른 버전은 밀가루 대신 아마씨, 코코넛 등으로 만들어 섬유소도 훨씬 많고, 영양적으로도 더 밀도 높다. 요새는 키토 제닉(Ketogenic) 식품의 품질이 너무 좋아서 밀가루의 수요탄력성이 많이 높아졌을 거라 예상이 된다. 한국에서도 점점 구하기 쉬워지고 있지만, 아직은 선택지가 제한적이다. 내가 해외 생활을 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다양한 키토 제닉 및 대체 식단 식품에 대한 접근성이다.

혈당 관리를 하시지만 '건강 음식'에 의심이 있으신 로날드 아버지께서도 드렸는데, 먹을만 하다고 놀라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 러스크를 현지에 있는 동안 세 번 정도 사 먹었다. 그렇다면 한국에도 사왔는가? 아니다. 회사에 기념품으로 가져갈 것을 제외하고, 개인 소비용으로는 사오지 않았다.

다 먹고 나면 또 먹고 싶을 것이 분명한데, 한국에서는 와인을 제외하면 남아공 수입품은 구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일회성 소비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아예 가까이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난도스 소스
난도스(Nando's)는 포르투갈인들이 남아공에 넘어와 만든 치킨 브랜드로, 영연방 국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닭을 튀기지 않아 패스트푸드 중에서는 나름 건강식으로 간주된다.

난도스는 식사 메뉴로도 유명하지만, 시그니처 소스도 유명하다. 한국에 사오면 좋은 것이 바로 이 소스다. 페리페리 칠리로 만들었으며, 설탕이 첨가되어 있지 않다.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지만, 현지가 더 저렴하기 때문에 기념품으로서의 정당성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도 작년에 남아공을 방문했을 때 한 병을 사왔는데, 나는 1년이 넘도록 무슨 맛인지 알지 못했다. 사온 직후 닭가슴살과 같이 먹어보려 했지만, 로날드가 굉장히 소중하게 아껴 쓰는 것을 알고는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난도 소스를 제대로 맛 볼 수 있었다. 이번에 싱가포르에 갔을 때 난도스에서 점심을 먹은 것이다. 신맛을 좋아하고 타바스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난도 소스가 정말 잘 맞을 것이다. 출국 전에 소스 세 병을 샀다. 이번에도 나는 로날드에게 전부 양보할 것 같다.
아마룰라
코끼리 열매라고 불리는 마룰라(Marula)와 크림, 설탕으로 만든 남아공 리큐르다. 설탕이 잔뜩 들어가다 보니 화사한 성인용 아이스크림에 가깝다.
남아공 방문 당시에도 설탕을 피하는 중이었지만, 외국을 방문한 손님이 된 입장에서 호스트가 권하는 것을 거절할 수는 없는 법. 아마룰라는 많이 마셨다.

알코올이 함유된 굉장히 달콤하고, 짙은 농도 아이스크림을 녹여서 마시는 맛이다. 아이스크림과도 잘 어울린다. 깔루아 밀크 같이 칵테일을 만들기에도 좋다.
결론
다음 번 남아공을 두 번째로 방문한다면, 더 새로운 것을 많이 경험하면서 이 목록을 더 확장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