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와 강박 사이

일찍 일어나는 것 자체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일찍 잠들게 마련이고, 하루의 가용 시간은 결국 비슷하게 맞춰지기 때문이다.

절제와 강박 사이
Photo by dominik hofbauer / Unsplash

나는 매일 새벽 4시 반에서 5시 사이에 일어난다. 알람 없이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는 걸 보면, 일간주기 생체 리듬이 이렇게 자리 잡힌 것 같다. 20대 초반엔 며칠 연속 밤새 놀다 첫차를 타고 집에 가기도 했으니, 결코 타고난 성향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루틴이다.

하지만 이른 기상에 대한 우월감은 없다. 일찍 일어나는 것 자체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일찍 잠들게 마련이고, 하루의 가용 시간은 결국 비슷하게 맞춰지기 때문이다. 결국 진짜 중요한 건 깨어 있는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아닌가. 새벽 4시에 일어나 핸드폰만 본다면, 그건 단지 새벽부터 부지런히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상, 이른 기상이 의미를 갖는 순간은 분명한 목표가 있을 때다. 슬럼프가 찾아올 때는 새벽에 눈을 떠도 무기력하고 우울할 뿐이다. 그런 시기엔 저널링을 하며 버텼다. 예쁜 글씨로 감성적으로 채우고 싶었지만, 지금 꺼내 보면 다양한 언어로 쏟아낸 욕설과,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분석, 삶에 대한 의지를 회복하기 위한 생경한 문장들로 가득하다. 내다 버리고 싶지만, 종종 꺼내보면 힘들었던 시기가 결국 전부 나아진 것을 보고 힘을 얻기에 두고 있다.

나는 지금도 새벽 기상 자체가 목표가 되는 삶에는 회의적이다. 그 시간 동안 삶의 방향을 정비하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위해 집중하는 것이 본질이다. 그리고 목표가 분명할수록 삶의 다른 요소들도 자연스럽게 그에 맞춰 정렬된다. 원하는 것이 분명할 때는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지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위해 식욕을 억지로 참을 필요도 없다. 내 식사는 최대한 간단하게 닭가슴살, 브로콜리, 단호박, 프로틴으로 구성되고, 나는 이에 만족하고 있다.

기상 시간이든, 식단이든, 목표에 몰입한 삶의 리듬이 정렬되는 순간이 가장 이상적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나를 지적으로 자극해주는 것들, 영감을 주는 것들과 가까이 있으려 노력한다.

수면의 중요성

공부를 본격 시작했던 20대 중반, 수면 시간을 줄여가며 공부하는 걸 미덕이라 믿었다. 많이 자는 것을 수치스러워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도 나폴레옹의 말을 어딘가에서 주워 들은 영향이었을 것이다.

“남자는 6시간, 여자는 7시간, 바보들은 8시간 잔다.”

그가 자기 분야에선 탁월한 인물인 건 맞지만, 수면 과학자도 아닌데 그 말을 그토록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것이 다소 어이가 없다. 하지만 나는 바보에 근접하기 싫었고, 잠을 줄였다. 어딘가에서 메르켈 총리가 5시간 잔다고 읽었던 것도 영향을 주었는데,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한 것을 보고 안도했다.

대학원생 시절 숨이 가쁘고 기절할 것 같은 날이 많았는데, 지금보면 당시 수면을 도외시하면서 운동까지 한 것이 원인이었다.

수면 부족은 전전두엽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피부를 망가뜨리며, 식욕 호르몬인 그렐린(ghrelin)을 증가시키고,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렙틴(leptin)은 감소시켜 체중 증가에 취약하게 만든다. 게다가 수면 부족 상태에서는 어떤 일을 하든 질적으로 타격을 입게 된다.

지금은 지, 덕, 체를 유지하기 위한 엄격한 자기규율 속에서 수면은 타협 불가한 요소가 되었다. 그렇게 30대에 접어들면서 나의 나이트라이프는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가까이 하는 사람들도 물갈이되었으며, 가용 시간은 늘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가끔은 문득,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치킨이나 피자, 라면, 떡볶이, 튀김, 아이스크림 같은 음식은 너무 오랫동안 먹지 않아서 맛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동족들과의 거리감에서 오는 묘한 소외감이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의 인생에서 통제할 수 있는 부분만큼은 내가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울 속 육덕진 모습은 나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이 없으면 대상도 불명확하게 막연한 원망감과 억울함이 생기고 화가 쌓인다. 내가 최적의 상태에 있어야 사람들에게 친절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일들을 해 나갈 수 있다. 지금 나는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체형과, 정신 상태와, 루틴의 최적점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극단으로 치닫기 쉬운 시간 강박과 소소한 일상의 만족 사이에서 매일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으며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