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 기침

가래 기침으로 촉발된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

가래 기침
Photo by Leohoho / Unsplash

최근에 겪은 한 가지 특이한 자기 성찰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것을 촉발한 것은 다름 아닌, 누군가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래 끓는 기침 소리였다. 먼저 밝혀두자면, 가래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생리적 현상이며, 그가 목청을 가다듬는 행위 자체에는 어떤 도덕적 문제도 없다. 나 역시 그것을 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온 신경이 곤두섰고, 관자놀이를 타고 아드레날린이 격렬히 솟구쳤다. 그 생체 반응은 거의 ‘캬악’ 하는 소리의 리듬과 완전히 동기화되어, 이성의 개입을 허락하기 전에 이미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출시켰다.

이 반응에는 언어적 요인도 개입되어 있었다. 내가 아는 언어 중 ‘가래가 끓는다’는 표현은 유독 한국어에만 존재한다. 이 말은 혐오스럽도록 감각적이면서 동시에 지나치게 정확하다. 그 탁월한 묘사력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캬악’이라는 소리와 ‘가래가 끓는다’는 이미지가 즉각적으로 연결되었다. 그 조합은 평정심을 회복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욱 절묘했던 것은 소리가 들려오는 간격이었다.

‘캬악’ 하는 소리에 순간적으로 열이 오르면,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진정하려 애쓴다. 그리고 막 마음이 가라앉을 즈음, 다시 들려오는 같은 소리.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내 신경을 건드렸다. 그 자연스러운 불규칙성은 오히려 인간의 인내심을 시험하기에 최적의 리듬이었다. 반복되는 소리는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 서서히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덧씌워갔다.

그렇다면 문제는 단순한 소음일까?

나는 평소 소음에 예민한 편이 아니다. 층간소음 때문에 칼부림이 났다는 뉴스를 볼 때면, 솔직히 그 심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물론 큰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나는 소음 때문에 일상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예컨대 마른기침 소리는 금세 잊어버린다.

그렇다면 원인은 가래의 소리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성을 동원해도 도무지 설명되지 않던 반응은, 진화생물학적으로는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가래 소리가 상징하는 것은 신체 내부의 점액질, 즉 질병과 연약함의 징후다. 생존 경쟁의 관점에서 본다면, 병약함은 회피해야 할 신호다. 인간은 그 신호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견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나의 불쾌감은 진화적 기억의 잔재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자문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예민한 인간이었던가?”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일까? 나는 스스로를 특별히 ‘착한 사람’이라 부르진 않지만, 적어도 고통받는 사람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 능력은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저 사람은 원해서 가래가 끓는 것이 아니고, 몸이 좋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해와 연민이 개입하기도 전에, 뇌의 한 부분이 나를 제치고 먼저 반응해버린 것이다.

답을 얻지 못한 채 퇴근했지만, 이후 나는 자주 생각한다. 인간의 ‘착함’이란 결국 이성의 결과인지, 아니면 본능에 저항하려는 노력의 총합인지. 그 질문은 여전히 나를 조금 더 겸손한 인간으로 만들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