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때문에 심난한 이야기

나는 남아공을 좋아한다. 아프리카너(Afrikaner) 특유의 투박한 억양과, 불과 백 년 만에 아프리칸스어를 학문적 수준으로 격상시킨 그 광기 어린 의지력에 경외감을 느낀다. 육식에 진심인 성향과 은근히 보수적인 면모도 내 취향에 닿아 있다.

한편으론 지독한 현실 속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흑인 여성들의 지적 잠재력과 회복탄력성에서 이 나라의 희망을 엿보기도 한다. 먹방을 보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남아공 흑인 여성의 먹방이다. 그녀의 성공이 다른 여학생들에게 희망이 되면 좋겠다.

하지만 개별 존재의 반짝임과는 별개로, 이 국가의 시스템은 형용할 수 없는 괴사 상태에 놓여 있다. 내가 목격한 남아공은 인적 자원의 풍요와 구조적 파멸이 공존하는 기묘한 공간이다.

강제된 평등: B-BBEE와 고용 쿼터제의 역설

남아공에는 B-BBEE(Broad-Based Black Economic Empowerment)라 불리는 흑인 경제 육성법이 존재한다. 단순히 권장하는 수준이 아니다. 기업의 소유권, 경영진 구성, 심지어 공급망까지 흑인 비율에 따라 '점수(Scorecard)'를 매긴다. 점수가 낮으면 정부 사업 입찰은 물론, 민간 기업 간의 거래에서도 후순위로 밀려난다.

2024년부터 강화된 고용 평등법(EEA)은 숙련직군에서 흑인 비율을 최대 90%까지 요구하며, 위반 시 매출의 10%를 벌금으로 부과한다. 의도는 선했으나 결과는 냉혹하다. 숙련된 기술자나 경영진이 인종 쿼터에 밀려 현장을 떠나고, 그 자리를 충분한 훈련을 받지 못한 이들이 채우면서 국가 기간망이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개노답 사례 1: 힐브로우

70-80년대 요하네스버그의 중심이었던 힐브로우(Hillbrow)는 이제 범죄와 오물의 상징이 되었다.

아파르트하이트가 끝나고 부유한 사람들은 샌튼(Sandton)으로 넘어갔고, 힐브로우는 점점 황폐화되었다.

갱단이 점거한 고층 빌딩에는 상하수도가 끊겼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변기를 사용한다. 지하실에 수백 명분의 인분이 쌓여가는 풍경을 상상할 수 있는가?

말티즈 한 마리가 사용하는 배변 패드도 악취가 생기는데, 수백명 사람들에게서 나온 오물이 지하실 전체를 덮고 있는 사실은 말문이 막힌다.

힐브로우 전과 후

화려했던 근대 건축의 껍데기 속에서 도시의 기능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개노답 사례 2: 전기 국영화

남아공에 있다보면 종종 전기가 끊기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Load Shedding이다. 그래서 태양열 발전기가 있는 집이 많다.

이 전력난은 단순한 에너지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 효율적이었던 전력사 에스콤(Eskom)이 국영화 이후 부실 경영, 부정부패의 온상이되어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게 된 결과이다.

이를 개혁하려던 전 CEO 안드레 드 루이터(André de Ruyter)는 커피에 청산가리 투척을 당해 결국 사임하고 잠깐 나라를 떠나야 했다.

정의를 바로잡으려는 지식인은 목숨을 걸고 개인 경호원에 의지하거나 망명을 택해야 하는 것이 남아공의 문법이다.

실제 현지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Snitches get stitches, and end up in ditches." (밀고자는 꿰맬 상처를 입고, 결국 도랑에 처박힌다.)

개노답 사례 3: 택시 조폭

남아공의 택시 산업은 태생부터 비극적이다. 70~80년대 아파르트하이트 시절, 인종차별 정권은 흑인들을 일터에서 먼 변두리로 몰아넣고도 어떠한 이동 수단도 제공하지 않았다. 국가가 외면한 이 거대한 공백을 메운 것이 바로 민간 미니버스 택시였다.

초기엔 불법이었으나 생존을 위해 자생했던 이 산업은 1987년 규제 완화와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버스와 기차를 불태우고, 전문 킬러(Izinkabi)를 고용해 정적을 제거한다. 택시에서 총을 쏘고 유유히 사라지는 청부 살인 장면은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다.

택시 기사들과 우버 기사들 간의 폭력 사태

과거 흑인 인권을 위한 유일한 발이었던 조직이, 이제는 대낮에 정적을 제거하고 국가 인프라를 불태우는 '그림자 국가'가 된 것이다.

개노답 4: 경호 업체도 연루된 농장 서리

남아공 길거리에서 타조알 만한 아보카도 5개를 3천 원에 샀을 때, 나는 그것이 아프리카 대지의 축복인 줄로만 알았다. 순진한 오판이었다.

수확까지 8년이 걸리는 아보카도 나무를 뿌리째 뽑아가거나, 농장 보안 업체와 결탁해 조직적으로 훔친 장물이었다. 무지한 소비자가 누린 저렴한 가격의 배후에는 생산자의 절망이 깔려 있었다.

물어보는 사람마다 '축복받은 남아공의 아보카도' 얘기를 하고 다녔는데, 알고보니 마트에서 사면 한국과 크게 다른 가격은 아니다.

결론

개개인을 보면 여전히 이 나라의 미래를 믿고 싶어진다. 어떻게 해야 이 비극이 멈출 수 있을지 혼자 머리를 싸매며 고민에 잠기기도 한다. 오프라 윈프리처럼 사재를 털어 학교를 지으면 해결될까? 하지만 문제는 파편화된 시설이 아니라 붕괴된 공교육 시스템 그 자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백을 메운 사교육 시장은 기형적일 만큼 비대해졌다.)

개인이 시스템 차원의 개혁을 시도하기엔 대가가 너무나 가혹하다. 부패를 척결하려 하면 지나가던 택시에서 날아오는 총탄에 맞거나, 아침 커피에 든 청산가리를 마주해야 할 것이다. 정의감은 목숨과 맞바꿔야 한다.

위와 같은 사례를 접할 때마다 짙은 무력감이 든다. 개노답 사례는 언급한 것 외에도 더 많다.

시스템이 머리부터 부패한 이 곳에서, 축복 받은 자연과 자원이 구조적 어둠에 먹혀버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몹시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