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여행기 1: 음식에 대하여
이미 태국 여행을 가기 전부터 ‘태국은 음식이 맛있다’는 말은 살면서 지겹도록 들어왔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결과 '태국 음식이 맛있다'는 발언은 '한국은 김치가 맛있다'는 말만큼이나 그 의미가 퇴색되어 버렸다.
언어를 연구하던 비트겐슈타인은 결국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태국 음식에 대해 고작 '맛있다'고 평할 거라면, 그냥 말을 아끼는 편이 낫다.
그것은 누군가 수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 소설을 보고 겨우 '재밌다'고 갈음하거나,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을 누군가 ‘착하다’고 정의해 버리는 것과 같다. 이토록 쉽게 뱉은 안일한 가치 판단은 실상에 대한 중대한 모욕이다.
사실 어느 나라든 음식을 잘 찾아보면 맛은 있다. 식욕은 인류 보편적인 욕망이기에, 인간은 어떤 기후와 풍토 속에서든 기어코 미식을 구현해낸다. 그러니 '맛있다'는 말은 특정 식문화의 개성을 표현하기에 지나치게 진부화trivialize된 표현이다.
특히 '태국 과일이 맛있다'는 말에는 속이 뒤집어진다. 과일은 본래 자연이 선사한 선물이자 그 자체로 완성된 맛이다.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태국의 식재료와 음식의 실체는 단순히 ‘맛있다’는 일차원적인 언어적 프리즘을 통해 전달될 수도, 전달되어서도 안 된다.
잠깐 태국에서 시선을 돌려보자. 남아공에서 먹은 것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다름 아닌 아보카도였다. 아보카도 이야기를 꺼내면 다들 흘려듣곤 하지만, 한국에서 유통되는 것과는 질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한 손에 기분 좋게 쥐어지는 넉넉한 크기, 돌기 없이 매끄러운 표면. 저항 없이 미끄러지며 들어가는 칼날과 한 치의 미련도 없이 껍질에서 분리되는 과육. 게다가 이런 아보카도 한 바구니가 고작 3,000원(비록 농장에서 도난된 장물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지만)이었다는 사실은, 그것을 단순히 ‘맛있다’고 평하기엔 질적인 우월함이 너무나 압도적이었음을 방증한다.
다시 태국 얘기로 돌아와 보자면, 팟타이든 카오팟무쌉이든 특정 메뉴의 맛을 따지는 것은 본질이 아니다. 태국 음식을 다른 세계와 구분 짓는 진정한 요소는 다름 아닌 작지만 농축된 생명력, 그리고 무자비한 풍요다.
생명력
한 주먹에 꼭 쥐어지는 아담하고 매끄러운 사과. 유럽에서 운 나쁘게 마주치던 퍼석한 사과에 대한 우려를 단숨에 불식시킬 만큼, 과육은 아삭하고 달콤했다. 얇은 초록 껍질 속에 단단히 응축된 귤은 입안에서 터지는 순간 새콤달콤함의 파편을 흩뿌렸다. 반으로 갈린 패션프루트는 한 방울의 잔여물도 허락지 않겠다는 듯 스푼 위로 소복이 올라앉았고, 씨앗 사이사이 맺힌 과즙의 농도 짙은 상큼함을 수류탄처럼 터뜨리며 미뢰 위에서 화려한 난장을 벌였다. 그리고 태국의 작은 고추들. 그것들은 고농축 우라늄과 같은 폭발력을 품고 혀끝을 강타한 뒤 깔끔한 감칠맛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작지만 농축되어 있다는 것. 그것은 비단 식재료에만 국한된 형용이 아니다. 이곳의 모든 생명은 작고 알차며, 어떤 자의식의 제약도 없이 모든 가능성을 펼치며 자유롭게 존재한다.
심지어는 쥐와 바퀴벌레까지도 말이다.
잠시 주제를 이탈하자면, 야간 비행 일정으로 인해 새벽 2시경 음료를 사기 위해 방콕 시내를 배회하던 날의 일이다. 나는 살면서 그렇게 건강미 넘치는 해충을 본 적이 없었다. 나의 모국인 한국은 내가 아는 가장 결벽에 가까운 위생을 지닌 민족의 나라다. 그 사이에 있을 때 나는 지극히 평균적 지위를 유지했으나, 그날 밤 방콕의 만난 어둠의 생물들이 방출하는 활력vitality과 생명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유난히 습했던 하수구 증기와 뒤섞인 그 생경한 에너지는 역류하는 구역질을 동반했고, 숙소로 돌아온 뒤에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까지 흘려야 했다. '자연'에 익숙한 로날드 조차, 꽉 잡은 손에서 본능적인visceral 혐오를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풍요
어쨌든 이렇게 식재료와 생태계에서 빛을 발하는 농축된 생명력에 더해, 오감에 쏟아져 들어오는 풍요로움은 나를 또 한번 감탄시켰다. (환율 하락으로 인해 더이상 크게 저렴하진 않다) 비슷한 가격으로 한국 기준 2인분 같은 1인분을 받는 것에 느끼는 감동은 사그러들지 않았고, 시각적 풍족함 또한 문화 충격을 줄 정도의 자극이었다. 한국에서 타코야키란 모름지기 인내하며 기다려 얻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곳엔 언제든 취할 수 있도록 산더미처럼 쌓인 채, 완벽한 온도로 준비되어 있었다. 자제력을 상실한 방문객이라면 필연적으로 탐식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무자비한 풍요였다.
그럼에도 태국 사람들은 외적인 관리와 정체성 구현에 거국적인 정성을 쏟는 듯했다.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 사실은 남성의 것이었음을 깨닫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화에 이어서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