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판 번역 데뷔기
통번역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출판 번역에 대한 은밀한 로망이 있다. 수익으로 따지면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출판 업계는 늘 빠듯하고, 번역료는 고생에 비해 가볍다. 책 표지에 저자 이름 옆 내 이름을 보면 느껴지는 뿌듯함이 있다. 실속보다 감정의 서사에 가깝다.
테크니컬 라이터로 커리어 전환하기 전, 2020년 졸업 직후의 나는 그 흔한 실무 경험이 거의 없는, “학생은 공부나 잘하라”는 낡은 덕목을 충실히 수행한, 말끔히 고립된 학구파였다. 마침 코로나 창궐과 시기가 겹쳐, 베를린에서 메르켈 총리 통역을 하겠다는 야심찬 꿈은 흐릿해져 가고 있었고, 일단 경험을 쌓자고 마음 먹었다. 일감이란 일감은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출판 번역은 늘 마음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 나는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네덜란드어까지 포함해 출판 경험이 10권 가까이 된다.
테크라이터로 전향한 지금도 “출판 번역은 어떻게 시작했어요?”라는 메시지를 종종 받는데, 나의 중요한 인생 모토 중 하나가 Pretty girls don’t gatekeep이기 때문에, 항상 상세히 대답해왔던 내용을 글로 정리해보려 한다.
마음 가짐
실력과 기회는 이론상 비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은 다르다. 나는 대학원에서 뼈를 갈았고, 졸업 후에는 “걔 잘하잖아”라는 말로 일이 몇 건 들어오기도 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런 평판 이전에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건 내 허슬링(hustling)하는 자세였다. 일이 작든 크든 최선을 다했고, 경험과 배움을 위해 조건을 붙이지 않고 뛰어들었다.
통번역대학원 졸업생 특유의 “내가 어디 나온 사람인데…” 하는 그 특유의 자의식이 있다. 물론 들인 시간과 실제 실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타고나길 경험과 현실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자다. 나는 내 부족함을 항상 냉정하게 들여다 보았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면서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덮쳤던 시기 전 세계가 멈춰 있었지만, 번역 일이 없는 날에는 아랍어를 4-5 시간씩 공부했다. 언어에 대한 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당시 독일어 수요가 예측보다 줄어들 것 같아, 만약을 대비해 통대를 한 번 더 다니는 시나리오까지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나중에는 입시 스터디에도 참여했다. “이걸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머릿속에서 수백 번쯤 굴려가며 공부했던 것 같다.
우연처럼 오는 타이밍
당시 나의 하루는 일감 찾기로 시작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공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제2차 세계대전의 독일 전차에 대한 독일어 책 번역자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국제정치 전공에 전쟁사와 독일어 덕후였던 나는 즉시 심박수가 증가했고, 주저 없이 이력서를 보냈다. 결과는 이미 마감이었다. 다만 “나중에 기회 있으면 연락드릴게요”라는, 가능성은 희박하되 친절한 사족이 달려 있었다.
그런데 그 미미한 가능성의 씨앗이 실제로 발화했다. 다 잊고 지낼 즈음, 몇달 후 연락이 왔다. 그런데 독일어가 아니라 프랑스어 번역자를 구하는데, 혹시 주변에 적임자가 있느냐는 문의였다. 책 제목은 『원자폭탄 』.
오펜하이머, 트루먼, 맨해튼 프로젝트, 리틀 보이, 나가사키…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것은 2차 대전의 절정부이며, 수십번 바온 다큐멘터리의 그 주제였다.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힌 뒤 답장을 보냈다. “당연히 찾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샘플 번역을 우선 제가 해보면 안 될까요?”
프랑스어는 대학 시절의 유산이었다. 감사하게도 언어 재능을 알아보신 부모님은 B1 자격증을 두 달 안에 따면 리옹으로 한 달 연수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프랑스를 위해 공부했고, 결국 단기간에 자격증을 땄다. 그 뒤로는 머리를 식히는 수준으로 공부를 해왔는데, 어디까지나 취미였고, 전공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행히 담당자분이 샘플 번역 기회를 주셨고, 나는 통과했다.
준비된 상태였고 손을 뻗었기에 가능했다. 무조건 “저 잘 할 수 있습니다”라는 근거 없는 자기확신으로 막 던진 것이 아니다. “나와 계약하지 않으셔도 좋으니, 일단 판단하실 수 있게 보여드릴 기회를 달라”는 제안은 충분히 프로페셔널하다. 그렇게 내 번역 데뷔작은, 예상 밖으로 프랑스어 그래픽 노블이 되었다.
신뢰
특히나 직업을 바꾼 탓에 나는 다른 번역사들과 교류가 거의 없다. 내 기준은 그래서 더더욱 개인적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신뢰다.
특히 졸업장에 찍힌 전공 언어가 아닌 경우, 아무리 번역을 잘 해도 출판사 입장에서는 나라는 사람의 실력, 태도, 성실성을 가늠할 길이 없다. 답답한 정보 비대칭 상태를 완화하기 위해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상대가 나를 모르기 때문에, 내가 더 신경 써야 했다.
가장 기본은 일정이다. 그건 ‘잘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번역사로서 갖춰야 할 최소 조건이다. 그런데도 출판사에서 “일정을 잘 맞춰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그 말인즉, 생각보다 그 기본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흔한 모양이다.
다음은 커뮤니케이션이다. 한 번 생각해보자. 담당자 입장에서는 내가 지금 막 처음 함께 일해보는 번역사고,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확신도 없고, 일단 믿고 맡기는 상황이다. 그리고 번역에 차질이 생긴다면 이후 교정, 인쇄, 홍보 등 의존성이 겹겹이 쌓인 작업 흐름 전체가 휘청일 수 있고, 그 분의 상황도 곤란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연락에 빠르게 응답했고, 진척 상황도 성실히 공유했다. 출간이 임박했을 때는 책 띠지에 들어갈 추천 문구 리서치를 요청받았는데, 몇 시간 동안 적절한 표현과 문장을 직접 발췌해 정리해서 전달했다. 그런다고 내 요율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 책에 대한 주인의식을 공유했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자리잡았다.
출판사와 인연을 만들면 서로 득을 보는 구조가 형성된다.
대부분의 번역은 에이전시를 통해 이뤄지고, 그 구조 속에서 번역자의 몫은 눈에 띄게 축소된다. 요율도 그렇고, 커뮤니케이션의 흐름도 그렇다. 하지만 출판사와 직접 일하면, 중간 단계가 사라진 만큼 ‘책임’과 ‘보상’도 직선으로 맞닿는다. 전제는 하나다. 신뢰. 상대 입장을 헤아려서 신뢰를 쌓아야 이 구조가 작동한다.
기회는 기회를 증식시킨다
『원자폭탄 』 이후, 어느 날 예고 없이 연락이 왔다. 이전 팀장님과 팀원분이 다른 출판사로 이직했는데, “그때 너무 잘해주셔서요”라며 다시 연락을 주신 것이었다. 이번엔 전쟁사가 아니라 아동 서적 팀이었다. 그렇게 프랑스어 어린이 책 3권, 영어 1권을 연달아 번역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또 다른 연결이 찾아왔다. 그 팀장님이 나를 추천해 주신 덕에, 전쟁기념관 사업 입찰이라는 무게감 있는 프로젝트, 6.25 기념 서적의 번역을 맡게 되었다. 이 시점부터는 번역 에이전시에서도 내 이름이 돌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독일어 샘플 번역 요청이 꾸준히 들어왔다.
물론 이 생태계는 만만하지 않다. 수십 권의 경력을 가진 선배 번역자들이 여전히 현역이시다. 개인적으로 은퇴가 없다는 것이 프리랜서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인이 들어설 자리는 유감스럽도록 협소하다. 그런데 가끔, 제목만 보고도 “이건 내 책이다”라는 직감이 오는 순간이 있다. 그런 책을 만났고, 결과적으로 전공 언어인 독일어 번역 계약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전공어다 보니 번역 속도는 취미 언어에 비해 비약적으로 빠른데, 이것은 큰 쾌감이다.
가능성은 스스로 만드는 것
나의 첫 네덜란드어 책 번역은, 한 단톡방에 흘러든 공고에서 시작됐다. ‘내용이 어렵지 않은 교양서, 네덜란드어 출판 번역 가능자’ 문장을 읽는 순간 멈췄고, 심장이 요동쳤다.
게르만어계 언어들 간의 유사성, 대학 시절 듣던 네덜란드어 수업, 게다가 교양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문제는 출판사 입장에선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네덜란드어 경력도, 전공자 타이틀도 없었다. 그래서 장문의 메시지를 썼다. 내 이력, 내 동기, 실행력, 그리고 당연히 신뢰가 없는 상황이니 샘플 번역에 임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약 한 달 후, 출판사 대표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공자를 끝내 구하지 못했고, 내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온라인 소통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례적으로 사무실 방문을 요청하셨고, 나는 직접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말했다. “샘플 보시고 판단해 주세요.” 샘플은 마감 하루 전에 제출했고, 제출 후 1시간 만에 계약 확정 통보가 왔다.
내가 아무리 스스로를 신뢰해도, 타인에겐 ‘미지의 변수’일 뿐이다. 그렇다면 말보다 결과물을 먼저 내야 한다. 기회는 언변이 아닌 실행에서 시작된다. 그 대표님과는 깊은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다. 시작은 모호했지만, 끝은 분명했다.
끝으로, 개인적인 단상
겨우 몇 권 번역한 주제에 과몰입한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건 내 인생 전반에 작동하는 사고방식이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나아지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고, 늘 다음 기회를 만들기 위해 움직인다.
정리하자면, 아주 간단하다.
- 언어를 공부하든, 출판사에 제안서를 써보든 기회를 계속 만들어 가자.
- 말로 끝내지 말고, 보여주자. 상대가 신뢰할 수 있도록 샘플 번역을 먼저 제안하자.
- 기회가 주어지면, 신뢰를 줌으로써 상대를 안심시키자
- 그리고 무엇보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실력을 갈고 또 갈아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