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 나이

Whoop의 세 달 사용 후기

생체 나이
Photo by Joshua Chehov / Unsplash

일주일에 한 번, 웨어러블 Whoop이 나의 생체 나이를 갱신해준다. 한 주간의 운동량, VO₂max, 수면 점수 등을 종합해 “당신은 지금 몇 살의 신체를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판정을 내려주는 것이다.

제 아무리 정교한 공식이라 해도 인간 신체의 복잡성을 완전히 반영할 수는 없다. 그러니 수치 하나하나에 집착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추세를 관찰하는 용도로 봐야 한다. 머리로는 이렇게 잘 안다. 

하지만 막상 그 숫자가 내 일상의 좌표가 되기 시작하면, 인간인 내가 기계의 인정을 구하는 묘한 전도 현상이 일어난다. ‘좋아요’ 대신 ‘낮은 생체 나이’를 받기 위해 분투하는 30대가 된 것이다.

나의 성실함 덕분에 생체 나이는 매주 하락세를 보이는 중이고, 가장 최근에는 24.1세까지 내려갔다. 현실의 나이보다 10살 가까이 젊은 것이다. (과연 몇 살까지 내려가는 걸까?) 숫자상으론 자랑스러워야 할 일인데, 이상하게도 “24”라는 숫자가 나를 조롱하는 기분이라 달갑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생체 나이를 낮추기 위해 지속해서 Whoop의 장단에 맞추었고, 점점 나는 주체성을 잃어갔다.

Whoop의 생체 나이와 실제 피로는 명확한 반비례 관계에 있다. 수치적 젊음을 얻는 대가로, 실제의 인간은 웨어러블에게 자유가 위탁되는 과정에서 점점 생기를 잃게된다. 매일 주어지는 ‘권장 Strain’은 칭찬 결핍형 현대인의 비뚤어진 성취욕을 교묘히 자극한다. 러닝을 마친 지친 상태에서도 부족한 강도를 채우기 위해 추가 운동을 하고, “잘 했다”는 AI 코치의 칭찬을 듣기 위해 매일매일 신체 활동을 했다. 목표 걸음 수를 맞추기 위해 새벽 5시 반에 산책을 했고, 산책을 하면서도 심박수를 높이기 위해 폴짝거려야 했다.

이런 상태는 일종의 몹쓸 강박이다. 긍적적으로 활용된다면 무언가를 완수할 끈기가 될 수도 있지만, 다스리지 못한다면 신경증으로 번진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의도적으로 기기를 며칠 씩 무시하면서 주체성을 회복하는 시기를 갖기로 결정했다.

강박이나 완벽주의를 지닌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모 아니면 도. All or Nothing. 사실 인간의 지속 가능성과는 가장 먼 태도다. 

운동을 하루 빼먹는다고 해서 근육이 녹는 것이 아니고, 다이어리 한 장 글씨를 못 썼다고 해서 인생의 계획이 망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완벽주의자는 늘 작은 실패를 전체의 붕괴로 해석한다. 이 얼마나 비생산적인 비극인가.

같은 시기에 Whoop을 착용하기 시작한 로날드를 보면 배울 점이 많다. (모순적이게도 이것은 사실 내가 사준 생일선물이었다) 목표 활동량에 신경쓰지 않고, 심지어는 하루쯤 착용하지 않은 채 외출하기도 하며, 수면 점수가 낮게 나와도 심박변이도나 산소포화도 등의 세부 메트릭에 관심이 없다. Whoop의 체계에 큰 가치를 두지 않다 보니, 매트릭스 속에서 충실한 하수인이었던 나보다 생체 나이가 네 살이다 높다.

그런데 현실에서 등산 후 쓰러져 누워 있는 쪽은 항상 나다. 생체 나이가 더 젊은 나는 실제로는 더 피로한 인간이다. 그 공허함에 있어서는 아바타의 디지털 나이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은 불안이 나의 기본값이라면, 로날드는 정반대의 느긋함을 지녔다. 대한민국식 성취 서사에서는 감히 누릴 수 없는 종류의 여유다.

덕분에 나도 이제는 조금씩 균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