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보편화될수록, 글쓰기 실력의 격차는 더 잔인하게 벌어집니다.

저는 현업에서 타인의 글을 번역, 편집, 재작성하는 일을 오래 해왔습니다. 최근 AI를 활용한 글들을 마주하며 내린 결론이 하나 있습니다.

LLM(거대언어모델)은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어줄 수는 있어도, 인간의 '내러티브 구성 능력'과 '메타인지'까지는 대체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가 결여된 상태에서 AI를 활용해 글을 쓰면, 결과물은 필연적으로 ‘속 빈 강정’이 됩니다.

1. 표면적 신호(Surface Signals)의 가치 하락

과거에는 세련된 어휘와 전문 용어가 작문 실력의 중요한 지표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AI가 몇 초 만에 휘황찬란한 비유와 유창한 표현을 생성해냅니다. 누구나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피상적인 작문 신호들은 급격히 가치를 잃었습니다.

2. 내러티브라는 새로운 격차

이제 진짜 실력은 '글의 흐름과 맥락을 설계하는 능력'에서 갈립니다. 사용자는 자신이 담을 수 있는 그릇만큼 AI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용자의 '내러티브 구성 능력' 및 '메타인지'가 AI의 성능을 결정짓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지난 주 흥미롭게 본 연쇄 살인마 제프리 다머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감상문을 쓴다고 해보겠습니다.

  • 일반적인 접근: "그는 잔혹했다, 정신 이상자였다"는 식의 단편적 감상 나열.
  • 설계된 내러티브: 재판의 핵심 쟁점인 '법적 정신 이상'의 정의를 화두로 잡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을 통해 법적 용어와 일상 용어의 괴리를 짚고, 미셸 푸코의 광기 담론을 빌려 사회적 맥락을 분석합니다.

당장 생각나는 예를 든 것이지만, 머릿속에 뼈대가 잡혀 있는 사람은 AI에게 던지는 프롬프트의 수준부터 다릅니다. 결과물의 진정성과 몰입력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3. AI 시대의 편집자(Editor)가 되는 법

AI가 뱉어내는 장식적 문장에 현혹되지 않으면서, 내용을 어떻게 조합하고 무엇을 살릴지 결정하는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개념의 차이와 맥락을 읽어내는 비판적 사고 능력,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연결하는 학제간 지식(Interdisciplinary Knowledge),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한 자각, 즉 메타인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문장력이 '공짜'가 된 AI 시대의 글쓰기는 오히려 더 본질적인 역량을 요구합니다. 도구에 의존하기 전에, 나만의 지식 지평을 넓히는 독서와 사고의 훈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