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일본어는 못해?”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물론 두 언어 모두 시도해본 적 있다.

일본어: 귀여움의 덫

일본어에 강한 인상을 받은 계기는 한 정치인의 뉴스 인터뷰였다. 어떤 생선을 먹고 나서 “なかなかおいしいです(꽤 맛있네요)”라고 말했는데, 중년 남성 정치인의 입에서 나온 그 한마디가 너무 귀여웠다. (아마 방사능 생선 관련 뉴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새로운 언어를 접할 때, 여성들이 말하는 영상을 찾아본다. 웬만하면 언어별로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면서 다 매력적으로 들린다. 아랍어의 강한 목구멍 소리, 비음 섞인 태국어, 관능적인 러시아어. 전세계 자매들이 본인의 언어로 말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웅장해지고 다양성이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이로운 것임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일본어는 달랐다. 남녀노소 불문, 언어 자체가 귀여움의 잠재력을 증폭시켜주는 힘이 있었다. 귀여움의 민주화를 실현한 언어랄까. 

일본어를 정말 배우고 싶었다.

대학원 첫 학기, 매일 아침 한 시간을 투자해 일본어를 공부했고, 같은 해 여름 결국 N3 시험에도 합격했다. 하지만 그 자격증은, 어느 시험관의 자비로 취득한 내 운전면허증처럼, 내 실제 실력을 반영하지 않았다.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는 문제가 없었고, 문법도 꽤 말이 되는 규칙이라 재미있었는데, 한자만큼은 끝내 친해질 수 없었다.

한문 과목이 있었던 중학생때까지는 늘 10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내 뇌는 그것을 휘발성 정보로 취급했는지 시험이 끝나면 바로 증발했다.

마지막 수단으로 일본 문화를 매개로 애착을 쌓아보려 했다. 초등학생 때, 친구가 이누야샤에 나오는 인물과 결혼하겠다고 진지하게 말하며 일본어에 능통해졌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루는 내가 “그런데 소진아, 셋쇼마루는 만화 캐릭터잖아. 어떻게 결혼을 해?”라고 묻자, 친구는 나에게 조용히 하라며 화를 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한동안 노래, 애니, 예능, 드라마 등을 찾아봤다. 하지만 덕질은 자생적으로 이루어지는 법. 억지로는 몰입할 수 없었다.

코드만 맞는다면 문화는 훌륭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BTS를 계기로 한국어를 배운 친구도 있고, 나는 유럽 언어별로 운동, 뷰티, 건강 인플루언서 영상을 자주 본다. 그런데 일본만은 이상하게도 코드가 맞지 않았다.

중국어: 시지푸스의 바위

중국어는 “배워두면 좋다”라는 주변의 권유는 대학생 때부터 끊이지 않았다. 이미 일본어에 데인 경험이 있었지만, 대학원 졸업 후 시간이 있어서 다시 도전해봤다. 중국어의 장점은 학습 자료가 방대하다는 것이다. 크게 고민할 것 없이 유명한 학습지를 신청해 매주 선생님과 온라인으로 공부했다.

사실 꾸준히 한다면 할 수는 있다. 다만 나는 원래 초급 과정을 지루해하기 때문에, 다른 언어는 문법 기초를 5배속으로 공부한 뒤 바로 중급 공부로 넘어가는데, 중국어 같은 경우는 한자, 내 페이스 대로 공부를 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것은 바로 한자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힘들게 한 건 표의문자가 주는 근본적인 거부감이었다. 알파벳은 갯수가 한정되어 있어 익히기만 하면 곧장 문법과 어휘로 넘어갈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는 아랍어와 러시아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자는 모양에 의미와 규칙이 있건 말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추상적 개념에 대응하는 문자가 따로 있다는 사실 아닌가. 그 생각만으로도 무기력해졌고, 의욕이 꺾였다. 비교적 단순한 문법 체계조차 내 흥미를 붙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나는 이미 이름을 중국어로 불렸을 때, 첫 번째 큰 타격을 받은 뒤였다.

“꿔쮜옌.”

“…..?”

그쪽 여배우들은 ‘빙빙’, ‘링링’ 같은 귀여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 사이에서 내 이름은 Lost에 나오는 ‘권진수’의 여자 버전 같기도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름을 들을 때마다 자아가 움츠러들었다. 물론 선생님의 중국어는 정말 듣기 좋았지만 말이다.

나의 일본어와 중국어 학습은 아쉽게도 안착하지 못했지만, 아직도 책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본어에 대한 미련이 강하게 있다. 민주화된 귀여움의 수혜자가 되고 싶다. 아직도 종종 “2주 정도 초집중하면 한자를 외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하지만, 하지만 지금은 돌봐야 할 다른 언어들이 많아 시간을 낼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중단한 사연

끝까지 붙잡을 수는 없었던 두 언어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