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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피로증후군 벗어나기

새벽 루틴, 그리고 언어 덕후로서의 귀환

내가 코딩으로 이것저것 만들기 시작한 건 바이브 코딩이 아직 본격 유행하기 전이었다. 그리고 코딩 에이전트가 등장한 순간, 진짜 신세계가 펼쳐졌다. 그 열정의 절정은 작년 하반기였다. 매주 새로운 걸 만들며 “이게 진짜 미래구나” 하고 감탄하던 때.

올해 초에는 회사 동료 스무 명에게 1on1으로 ‘바이브 코딩’을 전도하기도 했다.

바이브 코딩 세션에서 사용한 자료 링크

그런데 최근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SaaS 시장은 더 치열해졌고, 비슷한 자동화 도구를 매일 보다 보니 만들고 싶은 욕구 자체가 사라졌다. 무엇보다 AI 슬롭에 대한 극심한 피로가 밀려왔다. AI가 생성한 글만 봐도 강한 반발심이 올라온다. 글을 쓰는 사람이자 언어 덕후인 나는 특히 더 민감했다.

만든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몇 주 만에 조용히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유일하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2년 전 만든 AI 연동도 안 된 번역 트래커뿐이다. 5권 넘는 책을 함께 해왔다.

누군가의 소비로 돌아가는 경제 속에서, 본인조차 소비하지 않을 저품질 콘텐츠를 양산하고 자동 업로드하며 광고 수익을 인증하고, 그 과정까지 또 강의로 파는 끝없는 꼬리물기식 자동화 행태를 보면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래서 과감히 알고리즘을 정리했다. AI 관련 수익화 콘텐츠와 슬롭은 최대한 내 피드에서 사라지게 했다.

AI고 뭐고, 이제 다 꼴 보기 싫어졌다.

지금은 동호회 일정 관리나 영어 뉴스 봇처럼 실제로 편리한 것들만 남겨두고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최소한으로 사용한다.

인간 루틴으로의 회귀

그리고 나는 방향을 틀었다: 인간으로서의 루틴의 고도화.

사실 원래도 루틴에 집착하는 사람이었지만, 한 단계 더 끌어올리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인간은 하루 활동의 상당 부분을 습관으로 처리한다. 최근 번역한 책에서 본 내용인데, 우리 일상의 60% 이상이 습관으로 돌아간다. 그 말인 즉슨, 일상의 중요한 부분들을 습관화시켜 놓으면 뇌의 부담은 줄고, 진짜 가치 있는 일에 에너지를 더 집중시킬 수 있다는 것.

습관을 하나 제대로 만드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흔히 21일이면 된다고들 하지만, 실제 연구에 따르면 평균 66일 정도, 사람과 행동에 따라 18일부터 250일 이상까지도 얘기한다.

그런데 나는 운동, 식단, 수면을 한 번에 최적화한 뒤 습관으로 박제했다. 상여자 다운 “한다면 한다”는 결심 하나로 생각보다 빠르게 자리 잡았다. 뭐든지 마음 먹기에 달렸다.

결국 삶의 질은 하루를 얼마나 잘 최적화하느냐로 결정된다. 그리고 그 핵심은, 올바른 습관을 꾸준히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AI가 절대 대신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바로 하기 싫고, 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 실제로 사람을 만나 조리 있게 말하는 것
  • 값싼 도파민 앞에서 자제력을 발휘하는 것
  •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

이것들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영원히 넘볼 수 없는, 인간 의지와 정신력의 영역이다.

나의 루틴

요즘 해가 일찍 뜨면서 기상 시간도 자연스럽게 앞당겨졌다. 알람 없이 새벽 4시 반~5시 사이에 눈이 떠진다. 주중에 집을 나서는 시간이 6시 20분이니, 이제 새벽 운동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새벽 러닝과 홈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운동을 하지 않는 날에는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는다. 16:8 간헐적 단식도 재개했는데, 몇 년 전보다 몸의 반응이 훨씬 좋다. HRV는 20% 이상 상승했고, 휴식기 심박수는 39까지 내려갔다. 수치가 증명해주니 습관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행복하게 사는 가장 확실한 비결은, 결국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언어 공부

그리고 최근, 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면서 독서 루틴도 제대로 돌아왔다. 취미로 번역을 하면서 읽었고, 흥미 가는 책이 있으면 읽었지만 전체 독서량은 늘 부족하다고 자책해왔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어릴 적 몇 시간씩 책에 빠져들던 그 집중력이 돌아왔다.

특히 내 진짜 관심사인 외국어와 독서를 결합하는 순간, 열정이 폭발했다. AI 때문에 한동안 언어 공부에서 한눈을 팔았지만, 오히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더 강하게 ‘언어 덕후’라는 정체성을 확인했다.

관리해야 할 언어가 많을수록 시간적·정신적 부채가 커진다는 걸 알기에, 오래 해오던 독일어와 프랑스어는 ‘소설이든 뭐든’ 일단 무조건 읽기로 방향을 전환했다. (원래 소설은 잘 읽지 않는 편이었다.)

그 결과, 500 페이지가 넘는 코르넬리아 푼케의 독일어 원서 《Tintenherz》를 일주일 만에 읽어버렸다. 너무 재밌어서 바로 속편으로 넘어갔다. 추천해준 유경아, 고마워.

프랑스어로는 선물 받은《사랑의 역사》로 가볍게 시작 중이다. 원래 리슐리외 이전 시대에는 관심이 없어 미루고 미루던 책이었는데, “무조건 읽는다”는 결심을 하자 거부감이 싹 사라졌다.

샤를마뉴 대제에게 아이가 스무명이 넘게 있었다는 사실도 이 책에서 알게 됐다. 독서 자체가 다시 즐거워졌다. 선물해준 혜민아, 고마워.

예전 같이 태국어, 이탈리아어도 집중해서 공부하고 있다. 태국어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언어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쓸 예정이다.

태국 초등학생이 이런 언어를 배운다니. 상상할 수 없다.

더 단단한 인간이 되어

진짜 언어를 느끼고,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그 순간은 실제 경험을 대체할 수 없다.

자제력을 발휘하며, 내 강점을 하나씩 확인하고, 스스로를 조금씩 최적화해 나갈 때, 진짜 행복이 조용히 스며든다는 걸 요즘 들어 깊이 느끼고 있다.

AI 피로를 통해 정신을 크게 차린 기분이다. 모든 선택을 더 의도적으로 하고, 더 단단하고 더 인간적인 내가 되어가는 이 과정이 생각보다 참 즐겁다.